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목요일... 이틀만 더 버티면 주말이다. 주말에는 학교도 알바도 쉰다. 이 다사다난했던 한 주가 끝나는 것이다. 단은비가 전학 온 후 정말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평범하게 시간에 맞춰서 갔다. 오늘은 늦잠을 자서 아침조회시간이 되기 전 간신히 교실에 도착하였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주인아였다. 대체 어제부터 왜 그러는 걸까? 순간 내 머릿속에 어제 일이 스쳐지나갔다. 주인아가 어제 아침에 내가 알바를 하는 것에 대해 물어봤었지. 그렇다면 단은비에게 내가 일하는 식당에 대해 알려준 사람은 주인아일 것이다. 마치 스파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응, 안녕. 무슨 볼일이야?”
“별 일 아니야! 오늘도 알바해?
주인아는 또 알바 이야기를 꺼냈다. 나에게 이런 식으로 정보를 캐내서 계속 단은비에게 전달해주는 것인가? 주인아와 단은비는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친해진걸까... 특히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조용하던 애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것은 굉장히 의아했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주인아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응 오늘도 똑같은 시간에 알바해! 혹시 단은비가 물어보래?”
나는 피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확신이 있었기에 얼버무릴 필요도 없었고 피할 이유도 없었다. 주인아는 살짝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그건 내가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그러다가 나중에 은비랑 네 이야기를 하다가 그걸 말해준거야! 은비가 먼저 물어본건 아니야”
뻔한 거짓말이었다. 주인아가 사적으로 나에게 말을 건 것부터가 말이 안됐다. 하지만 굳이 그걸 꼬투리를 잡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나는 앞으로 단은비를 그냥 무시하기로 굳게 결심을 한 상태였다.
“그래, 뭐가 사실이든 상관없어. 단은비가 너한테 무슨 얘기를 한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네가 단은비를 돕고 있는 거라면 그만두는게 좋을 거야. 너처럼 똑똑한 애가 왜 굳이 저런애가 하는 말을 듣는지 모르겠어”
“그런게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줘! 네가 은비랑 이전부터 아는 사이고 지금 관계가 좋지 못하다는 말은 들었어. 하지만 나는 나고 은비는 은비야, 둘이 같이 다닌다고 같은 사람이 아니란 말야! 제발 나한테까지 그렇게 차갑게 굴진 말아줘!”
주인아는 난생 처음보는 당황한 표정을 하며 말하고 있었다. 흥, 어림도 없다. 절대 말려들지 않을거다.
‘쿵’
“반장! 아침조회시간인데 왜 거기 있노!”
문이 열리며 담임이 들어왔다. 주인아는 더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급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아침조회 인사를 했다.
그렇게 아침조회가 끝나고 오전일과가 흘러갔지만 주인아와 단은비, 둘 중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이 계속해서 나를 한 번씩 쳐다보며 눈이 마주치긴 했으나 나는 그때마다 차갑게 시선을 외면하였다. 덕배는 의아해하며 옆에서 계속 말을 걸었다.
“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너 요즘 반장이랑 전학생이랑 대화하고 다니는 거 같더라. 오우! 우리 불쌍한 한썬에게도 봄날이!”
“오바하지 마라! 단은비는 중학생때 아는 사이였고 그게 연결고리가 돼서 주인아도 말을 거는 거다.”
“임마! 그게 뭐가 중요하냐! 네가 여자랑 말을 하고 다닌다는게 중요하지 흐흐흐... 야 주인아는 내가 말 걸면 맨날 정색하면서 단답만 하던데 너한텐 아예 먼저 말을 거네. 완전 대박 크큭!”
덕배는 쉬는 시간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귀찮았지만 사실 덕배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는 평소에 학교에서 여자애들은 물론이고 남자애들과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런 애가 갑자기 반에서 제일 차가운 성격의 반장과 대화하고 전학생과 대화하고... 내가 생각해도 특종이다.
...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오늘 학교수업도 모두 끝났다. 나는 평소와 같이 집으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잠깐 휴식한 뒤 알바를 하러 향할 예정이었다.
“야 한썬! 저녁먹기 전에 딱 출출한데 너네 집에 라면이나 먹으러 가도 되지?”
“뭔 라면이냐, 난 쉬고 싶은데...”
“그냥 먹고 갈게, 네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흐흐.”
“...”
덕배는 내 의사를 묻지 않고 우리 집으로 따라왔다. 사실 튕기긴 했지만 오는 길에 라면 한 묶음을 덕배가 샀기 때문에 나로서도 괜찮은 장사였고 집에서 혼자 쉬면 우울한 기분이 들 것도 같았기 때문에 덕배와 잠깐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니 신발이 한 켤레 놓여 있었다. 오늘은 선영이가 나보다 일찍 집에 와 있었다.
“오빠 왔어? 응? 덕배 오빠도 왔네?”
“오 한썬우랑 극과극인 천사 한선영 하이!”
“뭐래..? 오빠는 여전하네!”
덕배는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왔었기 때문에 선영이 와도 정말 친했다. 선영이와 덕배 모두 정말 좋은 성격이었기 때문에 둘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중학생 때 단은비가 선영이를 챙겨줬던 그 빈자리를 덕배가 메워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라면 먹을 건데 너도 같이 먹을래?”
“응! 감자라면 먹자! 감자라면!”
“응 안사왔어, 오늘은 신라면이야”
“아오, 이 아저씨들...”
우리는 그렇게 셋이서 라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은 금방 갔다. 선영이와 덕배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나는 알바 갈 시간이 되었다.
“덕배야, 가자! 나 알바 가야돼!”
“우씨, 배도 안 꺼졌는데 재미없게 벌써 가야돼?”
“오빠, 자주 놀러와! 우리 오빠는 너무 재미 없는데 덕배 오빠 있으니깐 활기가 돈다.”
설거지를 해주고 좀 더 있다 간다는 덕배를 겨우 설득해서 나와 덕배는 집을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덕배와 선영이를 단둘이 두다니, 그림이 이상하다. 아무튼 덕배는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알바를 하러 식당으로 갔다. 오늘은 이미 선미 누나가 일찍 와 있었다.
“어 선우왔니? 야 새 알바생 왔어! 완전 이뻐! 대박!”
아차... 오늘 새 알바생 온댔지, 깜빡 잊고 있었다. 나는 사장님과 식당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새로온 알바생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뒷모습이 왠지 익숙하다... 나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새 알바생이 뒤를 돌았다. 맙소사... 왜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ㅊㅊ
ㅊㅊ
왜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오늘도 눈에 들어온 단어
세상이치가 그런것 아니겠소 ㅠ.ㅠ
인생은 때로는 너무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