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또 단은비였다. 오늘 아침의 만남은 우연이었겠지만 지금 이 상황은 우연일 수가 없다. 어느 정신나간 여고생이 이 시간에 혼자 감자탕을 먹으러 오겠는가? 나는 물을 놓고 꾸짖듯이 말했다.
“일부러 찾아온거 다 알아. 용건이 뭐야?”
“용건은 없어, 그냥 밥 먹으러 온거야.”
너무도 태연한 말투였다.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한치의 당황스러움도 없이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 걸까?
“네가 밥을 먹든 말든 내 알바는 아닌데 왜 굳이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먹는거야!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잖아! 대체 왜 자꾸 내 눈에 띄는건데?”
“네가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만 난 알았다고 한 적 없어. 난 내 마음대로 할거야. 그리고 너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와서 조용히 밥을 먹는 건데 뭐가 문제야?”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걸까? 더 대화를 하다가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짜증이 잔뜩 섞인 말투로 말했지만 단은비는 굉장히 차분한 말투로 말을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머리가 부글부글 끓던 차에 마침 선미누나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을 하러 갔다.
“아는 애야?”
선미 누나가 물었다. 이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아주 잘 아는 애에요... 너무 잘 알아서 증오하게 된 애...
“그냥, 같은 반 친구에요. 별로 친하지는 않아요.”
“그래? 분위기가 뭔가 그런 거 같지는 않던데? 뭔가 둘 사이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
선미누나는 감이 너무 좋아서 탈이다... 나는 더 얘기가 나오기 전에 대충 얼버무리고 열심히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다 뼈해장국 한 그릇이 나왔다. 18번 테이블... 나는 뼈해장국 하나를 들고 18번 테이블에 세팅했다.
“고마워!”
단은비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혼자 곰곰이 생각하며 낸 결론이 있었다. 단은비를 아예 무시하는 것이다. 계속 무시하고 반응해주지 않으면 제풀에 지치지 않을까?
“와 정말 맛있겠다! 너는 저녁은 먹고 일하는 거야? 너도 뼈해장국 엄청 좋아하잖아!”
계속해서 단은비가 나에게 말을 했지만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단은비의 표정이 시무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작전이 성공적인가?
그렇게 식사 세팅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려던 찰나, 나는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내 눈에 또다시 단은비의 별 목걸이가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결국 또 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 목걸이는 이제 제발 좀 빼! 우리 헤어진지가 언젠데 아직도 걸고 다니는 거야”
“선물을 받은 뒤부터 그 선물은 받은 사람의 물건이잖아? 빼든 말든 내 자유야!”
정말 혈압이 올라 죽을 것 같다. 계속 저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근데 나는 네가 준 시계 버렸어! 창밖으로 던져서 박살을 내버렸어!”
이 말을 남기고 나는 다시 자리를 떠났다. 이번에는 단은비의 표정이 시무룩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투명하고 맑은 눈이 초점을 잃고 혼탁해지는 것 같았고 밝은 미소가 사라진 표정을 보았다. 내가 한 말이 상당히 충격이었나 보다.
사실 퍼플 시계는 버리지 않았다. 아직 내 방에 먼지가 쌓인 채로 있다. 아까 말한대로 진작 창밖으로 던져서 박살을 내고 싶었지만 그런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길 때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언가 신비스런 힘이 나를 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아이, 뭔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다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선미 누나가 말을 걸어왔다. 선미 누나는 단은비에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어떤 부분이요?”
“그냥 애가 되게 다부져 보여. 체구는 작은데 정말 강한 아이 같아!”
선미 누나는 저렇게 사람을 보는 신비한 재주가 있었다. 선미 누나의 말은 정확하다. 단은비는 작은 체구를 가진 약해보이는 아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할 말은 또박또박 잘하는 강한 아이이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누나 말이 맞아요. 근데 대신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요. 쟤는 나쁜애에요. 겉보기에는 착하고 좋은 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넌 별로 친하지도 않다면서 그런건 어떻게 아는데?”
예리한 지적이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킥킥 괜찮아, 사실 둘이 얘기하는 분위기 봐서 예사로운 사이는 아닐 꺼라 생각했어. 나중에 뭐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니중에 말씀드릴게요...”
언젠가는 선미 누나에게도 이 문제를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선미누나의 조언을 들으면 대부분 일이 잘 풀렸다. 덕배의 얘기를 듣고 친하게 지내라고 조언을 해 준 것도 선미누나였었다.
“그래, 근데 있잖아 선우야, 내가 보기에 저 아이는 네가 말하는 것처럼 나쁜 애가 아닌 거 같아. 저 아이한테서 뭔가 말 못할 슬픔이 느껴져.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아이는 자신이 원치 않는 일로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슬픔이라고? 단은비의 불치병을 말하는 걸까? 아차... 내가 왜 선미누나 말을 맹신하고 있는거지... 선미누나가 사람 보는 눈이 있고 용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성격 정도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것뿐이다. 저렇게 디테일한 부분을 다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돗자리를 펴고 장사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나는 혼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말 못할 슬픔이라는 그 단어가 계속 생각났다.
ㅊㅊ
ㅊㅊ
무야홍
무대홍
1.오후반차인데 일 하러간 나는 화가 났다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걸까?
2.도리도리는 백날 알려줘도 모른척한다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걸까?
아 오늘 드럽게 바쁘네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직장애서나 연애할때나 결국 원리는 똑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