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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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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맹이 청꿈직원

https://n.news.naver.com/article/053/0000035634?sid=102

 

서울시 송파구 한 고등학교의 빈 교실. photo 뉴시스


"한 선생님은 손들고 화장실 가랬다고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했어요. 휴대전화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못 걷고요. 그걸로 온종일 녹음하다가 꼬투리 잡아서 신고를 해요. 문제 학생들에 대해서는 교사가 뭘 할 수 있나요? 이러니 지금 우리 학교는 '일진'들만 재밌는 학교가 돼 버렸어요." (전북의 한 초등교사 

J씨)

"(지난해 8월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교단에 누워 수업 중인 여교사 옆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돌았을 때) 제 눈에 뭐가 보였는지 아세요? 수업을 듣고 있는 다른 애들이요. 얘들은 피해자예요. 교단에 누운 학생, 이걸 촬영하는 학생, 웃통을 벗고 있는 학생들은 어떻게 보면 가해자죠. 이런 아이들 때문에 진짜 학습권을 보호받아야 할 다수의 아이가 무력하게 그냥 피해를 보고 있는 거예요."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

지금 우리 학교를 '교권 추락'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위기가 훨씬 심각하다는 현장 교육인들의 목소리다. 이른바 학교와 교실의 붕괴다. 복합적 원인이 있지만, 그 대표적 배경 중 하나로 10여년 전 제정된 학생인권조례가 지목된다. 나와 다른 학생들,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하는 교육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학생으로서의 내 권리'만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가 지금의 학교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일진들만 재밌다"

최근 학생인권조례를 시행 중인 전국 6개 시도 중 4곳에서 개정 혹은 폐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시의회에서 이미 폐지를 입법예고한 상태다. 지난해 여름부터 조례안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가 학부모 및 시민 6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 청구를 제출했고, 이를 시의회가 받아들여 지난 3월 18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충남도의회도 폐지조례안을 검토 중이다. 경기와 전북교육청은 학생을 비롯한 교직원 등 학교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 시도를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외 '교육인권조례안'을 신설하는 식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현재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경기·광주·전북·충남·제주 등 6곳에서만 시행 중이다. 2010년 10월 김상곤 경기교육감 재임 때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됐다. 당시 김 교육감이 제시한 안을 경기도의회가 통과시키면서다. 이어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당시 곽노현 교육감·박원순 시장)에서 주민 발의로 제정되고 전북(2013년), 충남(2020년), 제주(2021년)에서도 잇따라 조례안을 만들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요는 비슷하다. 체벌과 학생 의사에 반하는 두발 및 복장 규제 등 학생의 기본적 인권 침해를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제주와 광주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성별과 종교, 정치적·성(性)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도 금지한다. 특히 서울시는 "학칙 등 학교 규정은 학생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제한할 수 없다"며 학칙보다 조례안이 우선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서울시의회의 조례안 폐지 입법예고에 교육청은 강력한 '맞불' 작전을 펼쳤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월 UN에 서한을 보내 조례안 폐지와 관련된 국가기관인 교육부·국가인권위원회·서울시의회의 전반적 상황을 조사하고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UN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은 차별 보호를 약하게 만든다"며 "서울시에서의 조례 폐지가 다른 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길을 열어줄 수 있어 두렵다"고 답했다. 교육청은 인권조례 폐지가 헌법과 국제 인권 기준에 불합치한다는 의견을 시의회에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경기 및 충남 등 다른 지역 시민단체와 서울·충남 지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폐지 시도는 반헌법적"이라며 폐지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조례안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학생인권조례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헌법과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기본적 학생의 권리와 가치는 명백히 보장된다. 생활 및 학습 태도와 크게 상관없는 두발 규정이나 속옷 색깔까지 관여하는 복장 규제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크게 개선된 측면도 있다. 서울학생인권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학생의 비율은 2015년 22.7%에서 2019년 6.3%로 줄었다. 두발 길이 자유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응답한 학생들도 2019년 기준으로 중학생 96.6%, 고등학생 92.5%였다.

인권조례안 폐지로 인한 학생인권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대표는 "아직도 일부 학교에는 이상한 규정들이 남아있다"며 "속옷 색깔, 신발 모양, 귀밑머리 몇 센티미터 등 시대착오적인 학교 규정이나 차별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로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이 대표는 "청소년도 사회의 주체적인 민주 시민으로서 이러한 권리를 일찍이 인식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며 "일부 문제 있는 학생들 때문에 인권조례안에 손을 대는 건 근본적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20일 서울 중구 시의회 앞에서 시위하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지키기 대책위원회. photo 뉴시스


교사의 징계권, 생활지도권 박탈

이 대표의 말처럼 조례안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현장에서는 여러 부작용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다른 학생이나 교직원이 누려야 할 권리나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빠진 채 '내 권리'만 명문화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6곳 조례안 전부 학생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 항목만 있을 뿐 학생이 지켜야 할 의무나 타인의 권리 존중에 대한 항목은 없다. 이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왜곡된 인권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전에 경기도에 '오장풍' 교사 사건이라는 게 있었다.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가한 교사였는데, 이를 비롯해 학교 현장에서 인권 침해가 너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경기도를 시작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시 진보 교육감이 있던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좀 강하게 밀어붙인 경향도 있었다. 학부모나 사회 일반과 충분한 협의 없이 제정된 측면이 있다. 그래도 처음에 그렇게 조례를 만들 때 우리가 기대한 건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교사의 인권도 인식하며 내 권리도 주장할 줄 아는, 즉 종합적 인권의식 향상이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내 권리만 주장하는 식으로 되다 보니 반대로 사회 전반적인 인권의식이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조례안의 가장 큰 문제는 교사의 '즉각적인' 징계권, 생활지도권을 박탈했다는 것으로 꼽힌다. 교실에서 학생이 대놓고 잠을 자거나 큰소리를 내 수업방해를 하거나 폭력 행사를 해도 교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벌을 줄 수 없다. 학생인권 보호 차원에서다. 6곳의 조례안 모두 같은 내용으로 '학생의 징계절차에서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데, "학생에 대한 징계는 징계사유에 대한 사전 통지, 공정한 심의기구의 구성, 소명기회의 보장, 대리인 선임권 보장, 재심요청권의 보장 등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정당한 규정과 적법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되어 있다. 사실상 문제학생을 말로 타이르고 설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자는 학생을 흔들어 깨운 교사를 아동학대 및 성추행으로 신고한 사례도 교총에 접수된 바 있다.

실제로 이 지점에서 현장 교사들의 무력함이 절정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인권의 영역이 너무 넓어 교사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포스(분위기)로 누르는 것 외에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2021년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교원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심각하다는 첫 번째 이유로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36.2%)가 꼽혔다. 이어 '학교 교육이나 교원에 대한 학생 및 보호자의 불신'(26.2%) 응답률이 높았다.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과제로 가장 응답이 많았던 답은 '침해 행위자에 대한 엄정한 조치 강화'(36.9%)와 '교육활동 보호에 대한 전사회적 인식 제고'(23.8%)였다.

학생의 어떤 행동이 문제가 된다는 조항도 학생인권조례안에는 전혀 없다. 학교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은 전혀 없고 권리만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수업 중 잠자기' '수업 방해 행위' 등은 지난 3월 23일 교육부에서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를 시행하기 전까지는 교권침해 행위로 구분되지 않았다.
 

지난 2월 22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연대가 서울 중구 시의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의무와 책임도 명기한 뉴욕시 학생 장전

이 지점에서 한국의 학생인권조례안은 여타 '인권 선진국'들의 학생인권 의식 교육과도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례로 경기도가 10여년 전 학생인권조례안을 처음 제정할 때 참고했다는 미국 뉴욕시의 'K-12 학생 권리 및 책임 장전'을 살펴보면, 학생의 권리와 자유만큼이나 학교에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학교에 정기적으로 제 시간에 출석하기' '학생, 교사 및 교직원에게 예의 바르고 진솔하며 협조적으로 행동할 의무' '연령과 인종, 종교, 출신 국가, 성적 성향, 정치적 신념에 관계없이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타인을 대할 의무' 등 24가지다. 특히 그중 굵은 글씨로 강조된 항목은 '학교 징계 규정을 숙지하고, 학교 규칙과 규범을 준수할 의무'이다.

뉴욕시의 '권리 및 책임 장전'은 즉각적인 교사의 징계도 가능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교사는 문제학생을 즉각적으로 교실 및 학교에서 나가게 하거나, 다른 장소에서 수업을 받지 않게 하면서 처벌을 하는 퇴실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학부모 면담이나 20일이 넘는 법적 정학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 모든 내용이 학생기록부에 기재된다는 것까지도 명시됐다.

한국에서의 과도한 학생인권 의식을 보여주는 다른 예시는 휴대폰이다. 한국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학교에서 휴대전화 소지 제한은 인권 침해'라고 규정한다. 2020년 이러한 판결을 냈고, 지난 3월 22일 휴대전화 소지 제한이 학생의 개성 발현을 침해한다고 재차 판단했다. 이에 학교에서는 사실상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을 학칙으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수업 중에 딴짓 하는 건 못 본 척한다 해도 휴대폰 때문에 생기는 심각한 문제가 너무 많다. 불법 촬영이나 불법 녹음, 사이버 괴롭힘 등이다. 진짜 날마다 '휴대폰과의 전쟁'이다"라고 호소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 일본 등은 국가 차원에서 일정 연령 이하 학생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학습에 도움을 주고 정신건강 등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줄인다는 측면에서다. 미국은 2020년 기준 77% 학교가 비학술적 용도의 휴대전화를 금지한다는 연방 국립교육통계센터의 조사 결과가 있었다.
 


'학생인권'에서 '교육인권'으로 가자

이러한 왜곡된 학생의 인권의식이 학교와 교실의 기본적인 상호관계, 다른 학생들과의 관계와 교사와 학생 간 관계를 무너뜨리면서 '교실 붕괴'에 일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이를 "학교와 교사 요인이 점점 약해지며 학력 저하가 나타난 측면이 있다"며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 중에는 학교만큼 잘 갖춰진 환경에서 공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야간자율학습이나 나머지 공부도 교사가 권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꼬집었다.

'학생인권'이 아닌 '교육인권'으로 종합적인 인권 의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보인다. 전북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안에 더해 '교육인권조례안'을 신설하는 내용의 안을 4월 중 도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 안이 통과되면 학생인권조례는 전북교육인권조례로 확대 개정되고 학생인권센터는 '전북교육인권센터'로 확대 설립된다. 전북교사노조의 정재석 위원장은 "그간 학생인권에만 비중이 많이 쏠려 있었다면 상징적으로라도 균형을 맞춰주자는 데 의미가 있다. 이름만 바뀐다 해도 큰 의미가 있다"며 "내가 '학생인권' 옹호관이라고 하면 당연히 학생 입장에서 많이 사안을 볼 것 같다. 그동안 연간 100명씩 전북 교사들이 그런 인권조례 위반으로 신고당해 왔고…. 하지만 인권조사관이라고 하면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교조 전북지부를 비롯한 전북 교육시민사회단체는 "졸속"이라는 이유로 전북교육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조례의 핵심적 내용이 대폭 삭제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했고, 전교조 전북지부는 "정체 모를 교육인권조례를 입법예고하면서 '교육인권'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러한 조례안 개정 및 폐지 과정에서 다양한 교육 참여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여년 전 학생인권조례안을 졸속 제정할 때처럼 의견 수렴 없이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목소리다. "진보들이 (조례안을) 강하게 밀어붙여서 통과시켰듯 보수가 또 강하게 밀어붙여서 폐지하는 모양새로 가면 안 된다. 학생인권조례안을 근 10년 시행했는데 아직도 그 결과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보완책이 없다. 조례가 있는 지역과 아닌 지역에서 학생들의 인권 의식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등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어떻게 학생들이 변했고 현장은 어땠고 장점과 문제점이 어땠는지를 봐야 하는데, 막연하게 '이럴 것이다' 하거나 정치 철학에 따라서 가는 건 타당하지 않다"(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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