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의 일기: 1. 동물들의 비극

세상에서 가장 귀한 친구인 의사 존 왓슨이 세상을 떠난 지 이제 13년이 지났다.

왓슨은 내게 있어서 제일 훌륭한 조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세상에서 둘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친구였다. 지난 세월 동안 왓슨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지나쳐 가는 듯했다. 우리 두 사람이 겪었던 모험들을 전에는 왓슨이 기록했지만, 이제 왓슨이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이제는 내가 글을 남겨야 한다.

사실 왓슨은 의사로서의 본업은 물론 글을 짓는 실력도 좋아 훌륭하게 꽤 많은 우리 둘의 모험담들을 남겨왔다. 다만, 의뢰인의 명예나 당시 상황 등을 고려해 지금까지 미처 공개하지 못한 글들도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제는 내가 펜을 들어, 그때 왓슨이 공개하지 않았던 모험담들을 글로 남겨 아는 은행의 금고에 맡긴 다음, 후세 사람들은 여기 나온 글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면역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르니 지금부터 앞으로 80년 뒤에 개봉을 하도록 당부할 것이다.

나도 2년 뒤면 90세가 될 테고, 그러면 이제 얼마나 기력이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더이상 미루지 않고 이제 글을 적도록 하겠다.

 

1903년 10월 4일

아침을 먹은 나는 오전 내내 베이커가의 편안한 소파에 앉아 말없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왓슨이 옆에 다가와서 물었다.

"홈즈, 괜찮은가?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군."

나는 왓슨에게 신문을 건넸다. 신문 1면에 아이린 애들러의 사망 소식이 나와 있는 것을 본 왓슨은 놀라고도 슬픈 표정을 지은 채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 법이네. 뭐 크게 신경을 쓰고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슬픈 마음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창가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마차들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아이린 애들러. 나를 한 방 먹인 훌륭한 그 여자였지."

"그래도 자네가 더 훌륭하다는 것은 그 여자도 부인할 수 없을거야.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이고."

이에 살짝 미소를 지은 내가 말했다.

"아무튼 이제 조만간 나도 은퇴를 해야지. 지금 나는 노년에 우리 둘이 안락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괜찮은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네."

"벌써 은퇴라니? 자네는 아직 나이도 괜찮아 보이는걸."

"지금 내 지적인 것이 늙어서도 그대로일 거란 보장이 없지 않나. 어라, 계단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군."

발자국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한 늙은 남자였다. 안경을 쓴 다소 검은 피부의 할아버지는 홈즈 일행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슬픔에 가득차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유창한 목소리였다.

"도와 주십시오, 셜록 홈즈 선생님! 선생님이라면 해결 못 하는 사건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내가 할아버지를 다독거리면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매우 슬픈 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제가 셜록 홈즈입니다. 자,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시고 여기 앉으세요. 무슨 일 때문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불쌍한 그 할아버지는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입가에는 노란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으며 표정은 망가져 있었지만 나름 잘 차려 입은 옷은 그런대로 근사해 보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책상에 놓인 책들 중에서 메리 1세 여왕이 그려진 책을 보자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나는 끓인 차를 컵에 담아 왓슨과 손님에게 주었다. 역시 가루 같은 것이 묻어있는 손으로 차를 받아든 할아버지는 감사해 하면서 성호를 한번 그었고, 차를 마신 의뢰인이 어느 정도 진정된 것을 본 내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뭐하는 분인지 제가 맞춰도 되겠습니까?"

"아, 네. 근데 탐정, 셜록 홈즈 씨는 그런 걸 하시는 능력도 가지셨나 보군요."

왓슨 역시 그 할아버지를 눈여겨 보다가 모르겠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좀 더 부드럽게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 분에 대해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성공회 목사이고, 인도계이며, 감옥에 갇힌 아들이 있다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알 수 있는 것이 없군."

그러자 왓슨과 할아버지는 둘 다 놀라움과 감탄이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면서 물었다.

"아니, 홈즈 씨! 선생님은 대체 어떻게 저에 대해서 아셨습니까? 전 거기에 대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에 내가 미소를 조금 지으면서 말했다.

"성공회 목사라는 것은 가톨릭 신자이면서 개신교와 성공회를 탄압한 메리 1세의 그림을 외면하는 표정을 보고 알았습니다. 성호를 긋기는 하는데 메리 여왕의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성공회일 수밖에 없지요. 옷은 평신도라면 이렇게 격식있게 차려입고 올 수는 없으니 목사로서 나름 예우를 갖추어 이런 옷을 입고 오신 것이지요. 전 예전에 다른 성공회 목사의 옷차림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입에 묻은 노란 가루는 인도에서 쓰는 커리 향신료인데, 게다가 당신 피부색이 인도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도 같은 색깔이니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목사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제 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선생님의 손에 묻은 가루는 소나무 타르입니다. 아침 일찍 아들에게 다녀오셨나 보군요. 아들을 면회하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해 주면서 타르가 묻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 아들은 감옥 생활을 하면서 뱃밥을 만드는 노역을 하고 있었죠. 아마 여자가 그런 노역을 할 리는 없으니, 아들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제 예상이 맞다면 그 아들 문제로 여기 저를 찾아오신 거겠군요."

"네, 맞습니다. 저는 조지 말도날도 목사라고, 변호사를 하는 프루잇의 아버지이죠. 그 살인 사건······. 아, 살인이라기보다는, 가축을 죽였으니 아무튼 이건 선생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왓슨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네? 가축을 죽였다니요? 누가 말입니까?"

"천천히 설명해 드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범인으로 몰린 내 아들은 이미 검거되어서 어제 감옥으로 끌려가기는 했소.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했으니, 아마 꼼짝없이 7년형은 선고받을지도 모릅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홈즈 선생님!"

이에 내가 책상으로 가 또다른 신문을 들고 뒤적거리더니 한쪽을 펼쳐서 왓슨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아, 여기 나왔군요. 어제 신문이네, 왓슨. 가축을 죽인 인도계 영국인 남자, 조지 프루잇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이지. 그럼, 이제부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목사님께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말도나도 목사가 슬픈 표정을 다시 지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며칠 전 스태퍼드셔에 위치한 한 커다란 농장에서 밤에 가축들이 도살되는 사건이 일어났소. 철길 쪽에 위치한 그 농장에는 튼튼한 울타리에 날카로운 철조망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고수가 아닌 이상 잡범들은 함부로 침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그런 농장이요. 그런데 밤에 그 농장에서 양을 포함한 가축들이 절단되어 도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뒤늦게 심각한 상황을 파악한 농장주 에프렌 플레처가 권총을 들고 얼른 뛰쳐 나왔지만 범인은 이미 도망친 뒤였소.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들이 도착했고 상황을 수습했고, 제가 듣기로는 탐정들까지 동원되었다고 했지만 범인은 결국 잡지 못했소."

"그랬군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아드님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신 것입니까?"

"거기 경찰서장인 터커 켄들은 인종차별주의자요. 그자는 내 아들이 인도계이고 게다가 눈까지 튀어나왔다고, 그것만 보고 내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증거를 엉터리로 꾸며서 내 집에 들이닥쳐 아들을 체포했소. 아들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재판에 넘겨졌소. 내 아들에 대한 재판은 계절 법원에 열렸는데,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계절 법원은 일반 법원보다 유죄 판결이 더 쉽게 나오는 곳이지요."

나는 눈을 감고 이야기를 듣다가 눈을 떠서 목사에게 물었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그 경찰서장이 아드님을 범인으로 몰아서 기소했고 그래서 판결도 나와서 지금 감옥에 넘겨진 겁니까?"

"맞습니다. 정말 빠른 기소에 빠른 재판이었소. 재판을 결정한 지 그 다음 날 바로 판결까지 나왔으니까요."

그러자 왓슨이 말했다.

"어쩌면 경찰서장인 켄들이라는 자가 사실 범인과 공범이어서 애꿎은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게 아닐까?"

"그건 너무 섣부른 결론이네, 왓슨. 그럼, 그 스태퍼드셔라는 곳으로 같이 가서 진짜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는 게 낫겠군."

이에 목사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셜록 홈즈 씨. 그러면 보수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그 말을 듣고 내가 목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사건 해결이 끝난 다음에 생각할 문제입니다. 아, 잠깐 하나만 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가축이 정교하게 절단되었나요?"

"맞습니다."

그러자 나는 살짝 움찔했다. 고개를 끄덕인 내가 말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마차를 타고 역으로 가면 바로 도착해서 점심은 거기에서 먹게 되겠군요."

그리고 서랍을 열었다. 권총을 꺼낸 내가 왓슨에게 건네자 왓슨이 물었다.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아니기를 바래야지."

 

열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목사의 안내를 따라 목사의 집으로 들어섰다. 말도나도 목사가 일행을 자리에 인도하면서 말했다.

"경찰에 편지를 보내 셜록 홈즈 씨가 면회를 요청한다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 가축들이 도살되었다는 정확한 시간대를 혹시 알고 계십니까?"

"한밤중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자정은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나네요."

"아드님이 변호사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의 아들은 법대를 졸업했습니다. 버밍엄에서 근무하는데, 일을 잘하는 성실한 변호사라고 평판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생겨 버렸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지 뭡니까."

"책상에 놓인 안경도 선생님 것입니까?"

목사는 그 말을 듣고 자기 책상에 놓인 안경을 보고 말했다.

"아, 그건 저의 아들 것입니다. 감옥에 갇히면서 경찰에 압수당했고, 오늘 아침에 면회를 가서 제가 받아온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책상으로 다가가 안경을 들어올려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자 왓슨이 말했다.

"그저 평범한 안경 아닌가, 왓슨? 저게 사건 해결과 뭐가 상관 있어서 뭘 저런 것까지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이 말에 내가 다소 답답해 하면서 대답했다.

"왓슨, 나는 보고 있는 게 아니야. 관찰하는 것이지. 가장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모든 진실이 담겨져 있는 법인데 그걸 무시하고 모조리 넘겨 버리면 이렇게 죄없는 피해자가 생겨나는 법이지."

"뭐라고?"

놀란 왓슨이 나에게 말했다.

"홈즈, 벌써 사건을 해결했단 말인가?"

"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면 되네. 물론 아직 몇 가지 더 자세하게 알아봐야 할 것이 있기는 하지만. 말도나도 목사님. 가축들이 살해당한 흔적은 다 치워졌습니까?"

"일단 사체들은 농장에서 화장터로 옮겨졌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즉시 아드님을 만나보러 가도록 하죠. 아, 이 안경도 같이 갖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홈즈 선생님. 부디 이 일이 잘 되서 제 아들이 무사히 풀려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홈즈는 안경을 자기 코트 주머니에 넣고 일행과 함께 집 문을 나섰다.

 

경찰서에서 만난 터커 켄들은 우리 일행을 보고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목사와 내 친구를 한동안 들여다 보더니 이윽고 나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했다.

"아, 셜록 홈즈 씨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런던 경시청의 레스트레이드 경감님이 인정했다시피 범인은 이미 잡혀서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여기 온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아주 많은 것이 달라질 겁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도 여기 온 것입니까?"

"지금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식을 들은 경감님이 곧 감옥으로 와서 범인의 조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말도나도가 보낸 편지는 잘 읽어 봤습니다. 홈즈 씨 일행을 감옥에 안내하기는 하겠지만, 쓸데없는 소란은 피해 주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일행을 마차에 안내했다. 마차에 탑승해서 내가 한마디 했다.

"인종차별적인 시각에 근거해서 범인을 벌써부터 근거도 없이 단정지어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전 그 자가 틀림없는 범인이라고 봅니다. 왜이겠습니까, 우리 영국인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자기 생각대로 미리 범인을 정해놓고, 그 범인에 맞춰서 증거를 찾거나 꾸미는 일은 금기 그 자체입니다. 그렇게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켜 버리면, 정작 진짜 범인을 놓치는 것은 물론 그 범인만 좋아하는 꼴을 만드는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진짜 범인이라니요? 조지 프루잇이 범인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실적에 눈이 멀어 애먼 사람을 희생시킨다면 그 대가를 부메랑으로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곧 제가 증명해 드리지요."

그러자 터커가 비웃음과 한심이 섞인 또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디 증명해 보시지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만요."

일행은 마차에서 내려 감옥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입구에 놓인 다른 마차를 지키고 있던 한 경찰이 일행에게 경례하고 나를 알아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님은 지금 도착하셔서 안에 계십니다."

이에 내가 물었다.

"혹시 레스트레이드도 범인을 프루잇으로 생각하던가?"

"저는 자세한 건 듣지 못했지만 아마 그런 듯 합니다. 확실히는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중얼거리시더군요. '프루잇 그 자는 표정이 험상궂으니 틀림없이 그 자가 범인이야' 이렇게요."

"알려줘서 고맙네. 자, 다들 들어갑시다."

우리가 들어가자 레스트레이드는 우리를 보고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든 내가 말했다.

"프루잇을 만나러 오셨군요."

그러자 손에 신문을 들고 있던 레스트레이드가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조사를 나온 것입니다. 아무리 다그쳐도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더군요."

"경감님은 아직도 크게 달라지신 것이 없으시군요. 진짜 범인이라 생각했던 자가 사실 피해자이고 실제 범인은 따로 존재한다는 사례를 이미 여러 번 보여드렸을 텐데요."

"흥, 당신의 예측이 언제까지나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소. 반드시 실수할 때도 올 겁니다. 당신도 사람이니까요."

"그 실수를 하기 전에 제가 은퇴를 해서 아마 아담한 농가에 집을 짓고 왓슨과 같이 살고 있을 겁니다. 프루잇은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감방에 갇혀 있소. 신문을 보게 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막 신문을 구해서 지금 그 녀석에게 갖다주려던 참이었소."

그러면서 레스트레이드는 신문을 펄럭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말했다.

"같이 갑시다. 프루잇을 만나러."

 

프루잇이 갇혀있는 감옥 안의 창살에는 햇빛이 환하게 비취어지고 있었고, 복도에도 전등들이 매달려 있었다. 의욕없이 바닥에 앉아있던 프루잇은 우리 일행들에 섞여 있던 아버지를 보고 조금 표정이 환해졌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여기 이 분이 셜록 홈즈 씨인데 너를 도와주고 싶어서 오셨다는구나."

그러자 프루잇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조지 프루잇이라고 합니다."

이에 레스트레이드가 신문을 건네면서 말했다.

"자, 여기 신문이네. 괜히 탈옥이라든지 허튼 궁리는 안 하는 게 나을거야."

프루잇은 신문을 받아들고 다시 바닥에 앉아 자기 눈에 가까이 갖다대고 신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왓슨은 벌써 의뢰인의 불쌍한 아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나를 보고 말했다.

"뭔가 알아차린 건가, 홈즈?"

"예상했던 대로군. 레스트레이드,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닙니다."

이에 일행은 놀랐다. 신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프루잇은 기뻐했고, 레스트레이드와 켄들은 실망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켄들은 화가 나서 나에게 항의했다.

"프루잇이 범인이 아니라고요?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저 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거죠? 모든 사실이 저 녀석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프루잇의 안경을 꺼낸 내가 말했다.

"이제부터 설명해 드리지요. 프루잇은 우리가 보았다시피 환한 대낮인데도 신문을 눈 가까이에 대고 읽고 있습니다. 즉 저 사람은 시력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죠. 여기가 감옥 안이지만 지금 창살 사이로 환한 햇빛이 비치고 있고 여기저기에 전등도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환한 대낮에도 코앞을 제대로 못 보는데, 그 어두운 밤에, 그것도 어떻게 짐승을 정교하게 절단해서 죽인다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면서 나는 안경을 프루잇에게 건네었다. 프루잇은 안경을 쓰고 이제는 가까이 대지 않고도 신문을 잘 읽어나갔다. 레스트레이드는 침묵했고, 켄들은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은 원시, 더 정확하게는 난시이네. 멀리 있는 물체라면 몰라도, 가까이 있는 글씨며 물체 같은 건 안경 없으면 볼 수 있을 리가 없어. 안구의 굴절 이상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이지. 저 남자의 눈동자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이에 왓슨이 감탄해하면서 말했다.

"정말 자넨 훌륭하군, 홈즈. 이제 필요한 것은 전부 다 봤나 보군."

"아직이야, 왓슨. 한 가지 더 확인할 것이 있어. 레스트레이드 경감, 저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풀어주시고, 이제 저와 왓슨을 죽은 동물들이 있는 화장터로 안내해 주십시오. 화장은 아직 안 했습니까?"

그러자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곧 지시해서 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추가 조사 중이라서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할 예정입니다."

켄들은 못마땅해 했지만 할 수 없이 부하들에게 지시해서 감옥 문을 열고 프루잇을 밖으로 이끌어냈다. 프루잇은 아버지 품에 안기면서 나란히 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홈즈 선생님. 이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꼭 사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청구서를 보내 주신다면······."

나는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고 말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왓슨과 같이 밖으로 나섰다.

 

농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화장터에는 농장 주인인 에프렌 플레처가 농부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다. 나는 농장을 가볍게 살펴 보았다. 의뢰인의 말대로 농장은 튼튼한 울타리에 날카로운 철조망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멀리 철길에는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화장터에 곧 도착했다. 왓슨과 레스트레이드는 동물 사체들이 쌓여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찡그렸다. 우리는 농장 주인과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나는 친구들 앞을 지나쳐 동물들이 절단된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상처 부위의 깊은 곳까지 면밀히 조사했다. 동물들은 아주 정교하게 절단이 되어 죽어 있었다. 정교한 칼자국까지 확인한 내가 왓슨과 레스트레이드에게 말했다.

"범인은 칼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이 상처들을 보십시오. 노련한 솜씨가 아니라면 이렇게 정교하게, 돼지를 포함한 나름 힘센 동물들을 대번에 절단해서 죽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농장주가 말했다.

"아까 프루잇이 풀려났다는 소식은 막 들었습니다. 뭐, 그건 상식적이기는 하겠군요.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프루잇과 그 아버지는 물론이고, 농장주와 다른 농부들이 범인일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레스트레이드,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레스트레이드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홈즈 선생님은 벌써 다 알아차리신 것입니까?"

"여기 농부들이 아니라면, 고기를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직업은 딱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일행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왓슨과 레스트레이드가 뭔가 알아차린듯이 표정을 지었다.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부근에 푸줏간이 있다고 들었소. 그렇다면!"

뒤이어 왓슨이 소리쳤다.

"푸줏간 주인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로군!"

그러자 내가 말했다.

"더 정확히는 주인은 아니네. 자, 레스트레이드 저와 같이 갑시다. 저를 따라오면 그게 누구인지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려서 왓슨에게 주었다. 주머니에는 수염이 없는 한 젊은 남자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그걸 본 내가 외쳤다.

"런던 경찰에서 수배 중인 사람이군. 우리가 잡으러 가는 자가 이 자인가?"

"맞네. 아주 악질적일 뿐만 아니라 영리하기까지 해서 잡기 쉽지만은 않았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기회를 잡게 되는군."

그리고 다시 농장주에게 말했다.

"이제 조사가 다 끝났으니 화장을 하셔도 될 겁니다. 아, 배상은 그 녀석 아니면 그 자의 아버지에게 청구하시면 될 겁니다."

 

다른 집들과 떨어진 외딴 곳에는 작은 푸줏간이 있었다. 마당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나는 앞장서서 걸어가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그러자 뾰족한 수염투성이인 화난 듯한 한 남성이 나타났는데,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나를 보고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누구이십니까? 지금은 다른 업무가 있어서 일을 안 하는 중인데."

이에 내가 말했다.

"올랜도 맥다월 씨 맞으시죠? 레스트레이드 경감님, 아는 얼굴이실 겁니다."

이 말에 맥다월은 레스트레이드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더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낭패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신발을 신자마자 허겁지겁 대문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레스트레이드가 소리쳤다.

"어딜 도망치는 거야!"

대문에는 이미 다른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경찰들에 붙잡힌 맥다월은 계속 몸부림을 쳤지만 레스트레이드가 권총을 겨누자 곧 체념했다. 왓슨이 나에게 물었다.

"홈즈, 대체 저 자는 누구인가? 푸줏간 주인같지는 않은데."

"정확히는 주인의 아들이자, 여기 이 마을에서 악명높은 갱으로 활동하던 자인데, 사실 현상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수염은 없었네. 경찰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서 위장도 할 겸 수염을 기른 것이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사진을 꺼내어 경찰들에게 잡힌 범인의 얼굴과 비교해 보니 수염만 빼면 딱 맞아 떨어졌다.

레스트레이드는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또 내가 졌구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범인을 잡아 데려가니, 정말 다행이기는 합니다."

이에 내가 악수를 받으면서 말했다.

"무고한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경찰이 책임지고 배상해줘야 할 겁니다. 물론 켄들은 반발하겠지만, 그래야 더 이상 또다른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되니까요."

 

"사건은 충분히 흥미 있었네. 그게 내게 최고의 보수이지."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말하자 왓슨이 물었다.

"권총을 챙긴 이유가 그 남자의 위험한 정체를 짐작하고 그런 거였나?"

"짐작 정도가 아니라 확신이지, 왓슨. 그 현상수배 사진은 전에 봤지만 그냥 넘겨 버렸던 거였는데, 동물을 여러 마리 죽였다는 그 말을 들으면서 뭔가 생각나는 게 있었고, 게다가 왓슨 자네도 할아버지가 한 증언을 듣지 않았나. 농장은 튼튼한 울타리에 날카로운 철조망들로 둘러놨다고 했었지. 깊은 한밤중에 그것도 앞도 제대로 못 보는 사람이 튼튼한 보안들을 뚫고 농장에 침입해서 동물들을 정교하게 살생한다? 처음부터 앞뒤가 안 맞는 소리였지. 맨 마지막에 내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동물들을 정교하게 절단되었는지 물어봤고 그게 맞다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한꺼번에 알아차렸지."

"그래서 무고한 사람을 찾아가 그를 구해주고 범인까지 잡게 된 거였군."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급한 대로 무고하게 몰린 피해자부터 꺼내주고 생각할 일이었지. 시간이 없었어. 인종차별주의자에 고집이 센 서장이 언제 또다른 무거운 벌을 프루잇에게 덮어 씌울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감옥으로 떠나려던 차에 집에서 프루잇의 안경을 발견했고 그걸 자세히 살펴보았지. 안경을 자세히 살펴보니 난시 환자들에게 딱 맞게 만들어진 것이었더군. 그걸 보고 나는 코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프루잇이 밤에 짐승들을 치밀하게 도살할 수 있을리가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그래서 자네에게 안경에 대해서 한 마디 했던 게 아니었나."

이에 왓슨이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정말 자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로군. 화장터에 도착해서 짐승의 상처 자국을 보고 그게 갱의 짓이라는 것을 안 것인가?"

"그렇지. 갱에 가입할 정도면 어느 정도 힘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 게다가 담력까지 상당해야 할 테고. 더욱이 갱은 밤에 더 활동을 활발히 할 테니 나는 범인이 갱이라는 추리는 현상 수배 사진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하고 있었어. 그런데 동물의 절단 자국을 보니 푸줏간 주인들이 내는 자국과는 사실 달라 보이더군. 그 자국을 보고 또 모든 자료들을 종합해서 나는 범인이 푸줏간의 아들로서 정체를 숨기는 스태퍼드셔 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

"울타리와 철조망을 뚫었으니 푸줏간이라고 보기에는 보통 솜씨가 아니라는 것이겠군."

"몸집이 빠르고 숙달된 범인에게 그런 것들 뚫는 것들쯤은 일조차 아니었겠지. 내가 말했지만, 나는 범인의 정체는 물론 동기까지 알게 되었는데, 범인의 아버지는 동물 문제로 농장주와 어느 정도 마찰이 있었어. 그런데 범인은 갱 출신에 성격까지 급했지. 농장주를 골려줄 생각을 품은 녀석에게 인도계 변호사가 눈에 들어왔고 게다가 경찰서장이 어떤 성향인지까지 알아차린 그는, 이런 것들을 이용하면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유유히 빠져나가며 경찰을 따돌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니, 그 다음 일을 꾸미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거야. 아, 청구서는 조금 쉰 다음에 천천히 보내도 좋다고 생각하네. 그럼, 이제 바이올린을 켜면서 실컷 휴식을 취해보기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