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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55 우리나라 의학서를 편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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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4대 세종

 

1431년(세종 13년), 세종은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과 전의감정 노중례에게 우리의 약재와 치료 방법을 담은 의학서적을 집필하도록 명령했다.

 

이로부터 2년 뒤인 1433년(세종15년), 85권 30책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의학서<향약집성방>이 편찬되었다.

 

<향약집성방>은 임상치료편(1~75권) 한약학편(76~8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상치료편에는 외과 / 부인과 / 소아과 등 959개의 증상으로 질병을 구분해놓았다.

 

병에 따라 원인과 증상을 제시하고, 1만 700여 개의 민간요법과 치료 방법을 설명했따. 한약학편은 약을 만드는 방법과 복용방법, 그리고 약의 용량을 체계화해 설명해놓았다.

 

또한 우리나라 약재를 광물성 / 식물성 / 동물성 약재로 구분해 채취 시기와 효능을 밝히는 동시에 의원과 백성들이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약 이름을 중국식 약재 이름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부르는 이름으로 기록했다.

 

사실 이러한 방대한 분량의 <향약집성방>이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세종은 유효통과 노중례에게 의학서를 만들라고 명령을 내리기 10년 전부터 의학서를 편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421년(세종3)에는 황자후를 명나라에 보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중국의 약재를 구해왔으며, 1423년(세종5년)에는 김을해와 노중례를 명나라에 보내 향약과 중국 약재를 비교 / 연구토록 했다.

 

세종은 중국의 약재와 의학서를 연구한 이후 각 도의 관찰사에게 약초를 조사하도록 명령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채취되는 약초와 약초의 채취 시기를 파악했다.

 

1428년(세종10년)에는 그동안 연구 결과를 담은 <항약채취월령>을 간행해 수백종이 넘는 약초의 고유 이름과 특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 했다.

 

이처럼 10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 바로 <항약집성방>이었다.

 

우리의 의학 지식과 중국의 의학 지식을 접목한 <항약집성방>의 편찬으로,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이후 <항약집성방>은 한의학의 기본서가 되었고,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많은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의학서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항약집성방>은 의학 지식의 습득과 함께 우리의 옛 언어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료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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