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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51 우리 풍토에 맞는 농서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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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4대 세종

 

농경지가 부족한 한반도에 자리 잡은 왕조들은 늘 농업 진흥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에 중국의 선진 농법을 배우거나, 오랜 경험으로 익힌 농사 기술을 보급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들여온 농업 서적은 중국과는 기후와 토양이 다른 한반도에 맞이 않는 부분이 많았다.

 

고려 후기까지 축적된 농업 기술도 일부 지역에서만 활용될 뿐, 전국적으로 보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농업을 국가 경제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에서는 농업 진흥을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세종은 정초와 변표문에게 농부들의 경험을 수집해, 유익하고 필요한 농업 기술을 책으로 편찬하도록 지시했다. 

 

세종의 명을 받은 정초와 변효문은 관찰사를 통해 평생 농사를 지은 노인들의 경험과 농업 전문가의 지식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1429년(세종11년) <농사직설>을 편찬했다. 

 

이 책은 현재 남아 있는 최고로 오래된 농업 서적이자,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농사법이 제시된 첫 번째 책이 되었다.

 

<농사직설>은 비곡(종자의 선택과 저장), 지경(논밭갈이), 종마(삼 재배법), 종도(벼 재배법), 종서숙(기장 / 조 / 수수 재배법), 종직(피 재배법), 종대두소두(콩 / 팥 / 녹두 재배법), 종맥 (보리 / 밀의 재배법), 종호마(참께 재배법), 종교맥(메밀 재배법)의 10개 항목으로 기술되어 있다. 

 

<농사직설>을 통해 조선에는 모내기법이 일부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며, 2년 3작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분과 재거름을 퇴비로 활용하면서 예전보다 농업 생산량 또한 많이 증가된 사실도 알려준다. 

 

이외에도 쟁기, 고무래, 호미 등 <농사직설> 안에 다양한 농기구가 소개되어 있어, <농사직설>은 현재 당시 농민들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세종은 <농사직설>이 완성된 이듬해 지방 관아에 책을 배포하고 관아에서 농사 진흥에 힘쓰도록 지시했다. 

 

이런 노력으로 세종 시절에는 농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세종은 조선시대 통틀어 가장 많은 조세를 거둔 왕이 되었다.

 

농업의 발달로 튼튼해진 국각 재정으로 세종은 영토를 넓히고 여러 문물을 만들 수 있었다. 

 

<농사직설>은 이후 편찬되는 농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며 조선의 농업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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