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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29 신분보다 능력을 중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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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2대 정종

 

조선 전기는 폐쇄적인 신분 사회를 고집하지 않고, 양인이라면 누구라도 관료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던 시기였다. 이 당시의 신분제도를 양천제라고 하는데, 양천제는 국가에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자유를 누리던 양인, 그리고 재산으로 여겨지며 자유를 박탈한 천민으로 신분을 구분했다. 

 

조선 초 양반이란 개념도 고정된 지배계층이 아닌, 관제상의 문반과 무반을 일컫는 말이었다. 

 

궁궐에서 조회할 때 남쪽을 바라보는 국왕의 시선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문반(문신)이 위치하고, 서쪽에는 무반(무신)이 섰다. 그래서 문반과 무반을 합쳐서 양반이라고 불렀을 뿐, 양반은 조선 중 / 후기처럼 특정 신분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

 

조선 초에는 관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능력을 우대하는 풍토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고려시대에는 문신만 선발하는 과거제를 운영했지만, 조선은 무과 시험을 시행해 능력 있는 무인을 선발했다. 

 

과거의 응시 자격도 특별한 제한이 따르지 않아서 양인이라면 누구라도 지원할 수 있었다. 물론 경제적 여건이나 사회적 처지가 열악해서 실제로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도적으로 보장은 해놓았었다.

 

반면 개인의 능력이 아닌 선조 덕택으로 관직에 나가는 음서제는 대상과 혜택을 대폭 축소해놓았다. 음서제는 양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었을 뿐,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유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음서로 등용된 관료들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고위 관리로의 승진이 어려웠다. 고위 관리가 추천한 인물을 등용하는 천거의 경우도 기존 관리를 대상으로만 실시해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임용되는  걸 경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양반들은 특권을 누리기 위해 과거에 응시하는 자격 조건으로 사조 (증조부/ 조부 / 부 / 외조) 안에 관직이 나간 인물이 있는지를 보았다. 만약 사조 안에 관직에 나간 인물이 없다면 현직 관료의 보증서인 보단자를 첨부토록 했다. 

 

이로써 신분을 양인과 천민으로 나누었던 신분을 양반 / 중인 / 상민 / 천민으로 구분하는 반상제로 변화했고, 결국 조선 중기 이후의 신분제는 폐쇄적 신분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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