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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16 정도전, 조선을 설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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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1대 태조

 

서자로 태어난 정도전(1342~1398년)은 어려서부터 매우 영특했다. 이색 밑에서 정몽주와 함께 학문을 익힌 정도전은 19세에 성규니에 합격하고, 2년 뒤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성균관 박사로 재직하며 제자들의 존경을 받았고, 실무행정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기울어가는 고려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1375년(우왕1년), 정도전은 북원 사신을 맞이하는 문제로 국가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권문세족과 부딪혔다. 이 일로 정도전은 이인임을 비롯한 권문세족의 미움을 받고 전라도 나주 회진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2년간의 유배 생활이 끝난 후에도 정도전은 그를 위험한 인물로 간주한 권문세족에 의해 복직되지 않았다.

 

정도전은 삼각산 밑에서 후학을 양성하려 했으나, 이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부평과 김포로 이사를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이 기간 정도전은 백성들의 피헤한 삶을 직접 보며 고려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역성혁명을 계획한 정도전은 1383년(우왕9년), 함주의 이성계를 찾아가 새로운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이듬해 이성계의 추천으로 성균관 대사성이 되어 중앙 정계로 진출하게 된 정도전은 위화도회군 이후 밀직부사로 승진해 조민수를 제거하고 과전법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도전을 견제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1391년(공양왕3년), 정도전은 봉화에 유배되고, 예천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죽자 정도전은 정계로 곧바로 복귀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는 등 조선 건국에 큰 활약을 펼치며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개국 후에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는 총책임자로서 경북궁을 비롯한 건축물을 완성하고, 전각에 이름을 붙였다. 또한 <조선경국전>을 지어 조선의 통치 규범을 제시했으며, <경제문감>을 통해 재상과 수령 등 정치 조직에 대한 초안을 마련했다.

 

정도전은 요동 수복 운동 전개와 사병 혁파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방석을 세자로 지지하면서 이방원을 비롯한 왕족의 반발을 샀다. 

 

결국 1398년(태조7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종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명목으로 죽임을 당했다. 스스로를 한나라 장량에 비유하며 개국의 주역이라고 믿었던 정도전은 결국 이방원에게 죽었지만, 왕도정치를 꿈꾸었던 그의 국가 운영 방침은 조선 운영 원칙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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