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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페이지 조선사> 014 명과 불편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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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1대 태조

 

태조 이성계는 국가의 안정을 위해 명에 즉위 사실을 알리고 조선이란 국호를 받았다. 맹목적으로 명을 숭상하고 받느는 것이 아닌,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명의 사대 질서 안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오만하고 강압적인 자세로 조선을 길들이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해오자, 태조는 정도전과 요동 정벌 계획을 세웠다.

 

조선의 요동 정벌 계획을 눈치챈 명나라는 정벌 계획을 무산시키는 동시에 조선을 속국으로 길들이기 위해 태조가 요구한 조선국왕의 인신과 고명을 보내지 않았다. 태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조선을 압박하겠다는 태도였다. 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 보낸 문서에 무례한 말이 있다며 작성자 정도전을 보내라고 몇 년에 걸쳐 트집을 잡았다. 이는 요동 정벌을 추진하는 정도전을 명에 감금해 요동정벌 계획을 포기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명나라의 태도는 1398년(태조7년)에 제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죽고 태조가 상왕으로 물러나자 바뀌었다. 자신을 위협할 존재가 사라졌다고 안도한 것이었다. 마침 명도 조선에 강경했던 홍무제가 죽고 황위 계승 문제로 시끄러웠다. 명에서도 대외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조선과의 껄끄러운 문제를 매듭지을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때마침 조선과 명나라의 왕이 모두 바뀌면서 두 나라는 급속하게 화해의 분위기를 탔다. 이후 태종이 즉위하는 즉위하는 해에 조선은 명나라로부터 인신과 고명을 받았다. 

 

그러나 1390년(공양왕2년), 파평군 윤이와 중랑장 이초가 명나라로 도망가서 이성계를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거짓 보고한 말이 기록된 <대명회전>을 바로잡으려는 '종계변무'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태조 이후의 왕들은 이인임은 이성계의 정적으로, 둘은 부자지간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며 명나라에 <대명회전>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명나라는 종계변무 문제는 홍무제의 유훈이라 변경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200년 가까이 조선을 압박하는 데 사용했다. 종계변무 문제는 이후 200여 년이 지난 1584년(선조 17년)에 가서야 해결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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