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현(香峴)
- 박두진(朴斗鎭)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너머, 큰 산 그 너멋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래 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직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