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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경원 등판과 저출산 극복

오주한

‘2200년’ 로마 무너뜨린 결정적 요인 인구대란

‘출산율 0명대’ 韓 위기, 羅 등 노력에 해소되길

 

수단방법 안 가리고 인구확충 골몰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는 속담이 있다. 맞는 말이다. 기원전 8세기경 세워진 로마는 서기 1453년까지 무려 약 ‘2200년’ 존속(存續)하며 장기간에 걸쳐 성장했다. 로마는 또한 하루아침에 망한 것도 아니었다. 로마의 황혼(黃昏)은 서서히 찾아왔다. 주요원인 중 하나는 바로 ‘저출산’이었다.

 

로마가 처음부터 지중해를 주름잡는 제국(帝國)이었던 건 아니다. 로마의 첫 등장은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에 위치한 작은 부락으로서 볼품없기 그지없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로마 건국자는 로물루스(Romulus‧생몰연도 기원전 772?~기원전 716?)라는 영웅이다. 로물루스는 형제 레무스(Remus)와 함께 신(神)의 분노를 사 야생에 내던져졌다.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으며, 한 양치기에게 발견돼 길러졌다.

 

이윽고 외조부(外祖父)와 상봉한 형제는 외할아버지 도움으로 자신들이 정착할 땅을 찾아 떠났다. 당시 로마에는 7개의 언덕이 있었다고 한다.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에,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Aventino Hill)에 각각 자리 잡았다. 로물루스는 알토란땅 영유권 두고 형제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결국 로물루스는 로마역사상 첫 정복전쟁인 나머지 6개 언덕 점령에 성공하고서 국명(國名)을 ‘로마’로 명명(命名)했다.

 

허나 로물루스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바로 인구난이었다. 당시 로마엔 성인남성은 많았지만 가임기(可妊期) 여성은 크게 부족했다. 이에 로물루스는 이웃의 사비니족(Sabini)에게 두 세력 간 통혼(通婚)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현대사회에선 절대 있어선 안 될 중범죄이지만, 사비니 여성들을 ‘납치’했다.

 

분노한 사비니족은 여러 이웃부락 규합해 로마를 쳤다. 전쟁은 피랍(被拉)여성들이 “우리가 분쟁 원인이라면 우리가 죽겠다”고 중재(仲裁)함에 따라 그쳤다. 이 사건은 르네상스시대(Renaissance) 조각가 잠볼로냐(Giambologna)의 작품 ‘사비니 여인 납치(Abduction of a Sabine Woman)’ 등에 묘사돼 있다.

 

인구증가→영토확장→경제성장→복지증진→무한반복

 

첫 저출산 위기를 극복한 로마 국력은 여러 날에 걸쳐 발돋움했다. 기원전 7세기 무렵엔 인구가 수만 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사비니족은 머잖아 로마에 흡수됐으며 로물루스는 포로 로마노(Roman Forum)를 건설했다.

 

오늘날까지 이탈리아 수도 로마 구도심(舊都心)에 위치한 포로 로마노는 로마제국 시기 정치‧문화 중심지로 기능했다. 2020년 2월에는 이곳에서 로물루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전‧석관(石棺)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로마왕국(Regnum Romanum‧존속기간 기원전 8세기~기원전 6세기)은 세습군주제(世襲君主制)가 아니었다. 왕국의 2대 임금은 사비니족 출신의 누마 폼필리우스 마르키우스(Numa Pompilius Marcius‧생몰연도 기원전 753~기원전 673)였다.

 

로물루스‧마르키우스를 시작으로 왕국은 7명의 각기 성씨 다른 왕이 통치했다. 이들은 오늘날 의회 특히 상원 격인 원로원(Senatus)과 상의해 국정(國政)을 처리했다. 입법‧자문 등 역할 하는 원로원은 로마를 구성하는 100개 안팎 유력부족들 족장(族長)으로 구성됐다. 로마왕국은 동아시아 삼한(三韓)‧상(商)나라 등처럼 연맹왕국(聯盟王國) 성격이 적지 않았다.

 

왕국은 시민권자(Citizen) 발언권이 세지면서 쇠락했다. 왕국도 여느 고대국가들처럼 부병제(府兵制‧병농일치)를 실시했다. 시민들은 농번기(農繁期)엔 농사짓고, 농한기(農閑期)엔 창칼 들고 나가 싸웠다. 갑주‧무기는 각 시민이 자체 조달했다. 이는 시민권자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로마의 2200년 존속 저력은 레기온(Legion‧군단)에 바탕 두고 있었다. 따라서 누구도 시민들 외침에 쉽게 고개 돌릴 수 없었다. 여러 귀족들은 잽싸게 시민들 열망에 영합했으며, 기원전 6세기 무렵 왕정(王政)은 무너지고 삼두정치(Triumvirate)로 상징되는 로마공화국(Roman Republic‧존속기간 기원전 509~기원전 27)이 들어섰다.

 

공화국 시기 로마는 급속성장했다. 카르타고(Carthago)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생몰연도 기원전 247~기원전 181?)를 격파한 때도 공화국 시절이며, 오늘날에도 천문학적 판돈이 내걸리는 투기(鬪技)스포츠 전신(前身) 격인 검투사(Gladiator) 경기가 흥한 것도 공화국 때다.

 

인구급감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공화정을 무대에서 끌어내리고 군정(軍政)으로 상징되는 로마제국(Roman Empire‧존속기간 기원전 27~서기 1453) 기치 올린 건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생몰연도 기원전 100~기원전 44)였다.

 

“주사위는 던져졌다(the die is cast)” 외치며 고국으로 창칼 돌려 루비콘강(Rubicon river) 건넌 카이사르는, 그 이름이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Kaiser)‧차르(Tzar) 어원(語源)이 될 정도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훗날 서‧동로마로 나뉘어 유라시아대륙을 지배하게 되는 제국은, 카이사르 뜻을 이어받은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생몰연도 기원전 63~서기 14)에 의해 건국됐다.

 

공화정 말기 로마 기강(紀綱)은 나태해져 있었다. 로마 성장 원동력이었던 시민들은 어느 순간부터 “권리‧자유에는 책임‧의무가 따른다”를 망각한 채 복지만을 외쳤다. 나라 곳곳에선, 당시로선 초호화시설이었던, 대중목욕탕이 성행했고 포도주 등 산해진미(山海珍味)가 넘쳐났다.

 

출산율은 바닥을 찍었다. 18세기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로마제국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등에 의하면, 2200년 로마에 종지부를 찍은 건 노동인구‧병역자원 감소였다. 지배층에선 출산을 불결히 여기는 풍조(風潮) 만연했으며, 이를 본 시민계급 사이에서도 이른바 ‘저출산 신드롬’ 바람이 불었다.

 

급기야 인구증가→영토확장→경제성장→복지강화→더 큰 인구증가→이상 무한반복이라는 선순환(善循環) 경제체계는 무너졌다.

 

이에 아우구스투스는 ‘독신세(Bachelor tax)’라는, 물론 이 방법이 옳다 그르다는 걸 떠나, 인구증가를 위한 더 나은 방법도 많겠지만, 극약처방을 내렸다. 이러한 노력으로 제국의 4대 황제 클라디우스(Claudius‧생몰연도 기원전 10~서기 54) 때는 인구가 무려 ‘1억2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진다.

 

제국은 ‘인구의 힘’을 바탕으로 여러 속주(屬州) 거느린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전성기를 누렸다. 경제력이 다시금 고공상승함에 따라 고대에선 보기 드물게 병사들에게 ‘봉급‧퇴직금’도 지불했다고 한다.

 

허나 기번 등의 지적처럼 로마는 인구감소와 함께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지다가, 결국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3중 성벽이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멸망을 앞둔 로마 인구는 최전성기 시절의 절반가량인 5000만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실례로 트로이(Troy) 지방의 19세 이상 청년 101명 중 기혼자(旣婚者)는 35명, 기혼자 중 자녀를 가진 이는 17명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17명 중 10명은 자녀가 1명이었다고 한다. 전성기 때 최대 10명의 자녀까지 둔 가구(家口)까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히 인구대란을 넘어 인구붕괴라 할 만 했다.

 

예고된 대한민국 경제대란‧민족소거

 

대한민국의 충격적 출산율 통계를 본 한 미국인 학자 표정 밈(Meme)이 ‘웃픈’ 차원에서 화제다.

 

미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이자 인종‧성별 등 분야 전문가인 조앤 윌리엄스(Joan Williams)는, 최근 교육방송(EBS)이 공개한 인구 관련 다큐멘터리 예고편에서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정도로 낮은 수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다”는 윌리엄스 명예교수가 본 한국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수를 의미한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서 작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다. 이는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59명의 절반이하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윌리엄스 명예교수 외에도 대한민국 출산율은 심각하다는 게 국제학계 중론(衆論)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겸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은 2006년 유엔인구포럼에서 이미 “저출신 지속 시 한국은 인구소멸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올해 5월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의 한 심포지엄에선 ‘구체적 멸망시점’을 2750년으로 콕 집었다. 굳이 그 때까지 안 가더라도 저출산 등 영향으로 지금보다 더 한 경제난이 도래해 민생(民生)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리라는 건 자명하다.

 

대한민국 대표 ‘인구전도사’인 나경원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모처럼 서울 여의도 국회에 등판(登板)했다는 소식이다. 그는 24일 국민의힘 지도부 등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사단법인 ‘인구와 기후, 그리고 내일(PACT)’ 창립행사를 열었다. 다소 몸이 불편한 딸 등을 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나 전 원내대표는, 윤석열정부 초기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나 전 원내대표는 창립식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고 한다. 몸소 대영제국(British Empire) 태동(胎動)를 지켜본 기번은 “제국의 힘은 인구에 있다”고 단언했다. 대한민국이 과거 로마처럼 소멸위기에 직면한 지금, 나 전 원내대표와 PACT의 노력이 저출산 위기 극복의 주춧돌이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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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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