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지원하고자 우방국 중 유일하게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북러 군사동맹을 '혈맹(血盟)' 수준으로 격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정은의 이러한 도박이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개입 확약, 그리고 북한 엘리트들의 과도한 충성 경쟁에 따른 허위 보고와 결합한다면 고강도 대남 도발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최악의 안보 상황은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에 따라 전략적인 호기가 될 수 있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격전지에 배치돼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북한군의 참상을 북한 주민과 외국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에게 전파함으로써 북한 내에 상당한 동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이 북한 주민의 오랜 염원이자 '백두혈통' 정권의 존립 근거인 '통일 지우기'에 나선 상황에서 김 씨 일가의 안위를 위해 타국 침략 전쟁에 자국민을 무참히 희생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베팅, 러시아의 ICBM 기술 이전·전략핵잠수함 확보 노림수
김정은이 예상보다 파병을 앞당긴 배경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기울어진 미국 대선 판세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내년 1월 취임 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이에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의 '조기 종전'을 예상하고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부채 의식을 키우고자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군사정찰위성 기술뿐 아니라, 지난 30년에 걸친 북한 비핵화 사기극의 '게임 체인저'가 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전략핵잠수함(SSBN) 건조 등을 파병에 대한 반대급부로 받아내려 할 수 있다. 핵 패권국은 타국에 자국의 핵기술을 공유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기에 '살생'을 통한 기여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최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대담에서 "북한의 러시아 전쟁에 대한 기여가 늘어남으로써 러시아가 북한의 개입에 대한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며 "앞서 러시아가 특정 유형의 민감한 군사 기술을 제공하는 데 주저했다면, 이제는 북한이 병력까지 지원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지원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직접 개입을 확약받을 수도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올해 6월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은 제4조에서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면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로씨야련방(러시아)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파병은 이러한 '사실상 자동 군사 개입'을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北 엘리트층의 '허위 보고 충성 경쟁' → 김정은 '대남 도발 오판'으로 이어질 수도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대남 도발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 엘리트층이 러시아 파병 효과와 정세를 북한에 유리하게 포장해 허위 보고할 경우 김정은이 오판해 고강도 대남 도발을 지시할 수 있다. 각급 당 조직은 처벌을 피하고자 상부에 허위로 보고하고 '최고 존엄'은 객관적인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오판하기 쉬운 구조다.
김일성이 1958년 북한군 창건 10주년 기념연설에서 "군대 내 사업에는 결함이 많다. 총정치국은 당 중앙에 '사업이 다 잘 된다'고 허위 보고 했다"고 일찍이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층의 허위 보고는 오늘날에도 일상화된 수준이다. 북한 조선노동당은 김정은이 행한 사업 총화 보고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역사적 문헌", "백과전서적 정치대강"이라고 치켜세우곤 한다.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무참사는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포럼에서 "북한은 상대측이 하지도 않은 지지 발언이나 입장 표명을 유도한 뒤 이를 조선중앙통신으로 공개하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을 지지하는 것처럼 선전해 왔다"며 "정말 터무니없는 지시가 내려왔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친북 성향이 강한 국가들도 이제는 핵과 미사일로 규탄받는 북한과 같은 취급을 받는 걸 싫어하고, 북한 외교관들이 설명해도 지지나 공감을 자제하고 있다"며 "외교 관계자들을 만나 열심히 설명하고 선전 활동을 하지만 상대측은 마지못해 청취하는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전문가는 뉴데일리에 "북한 엘리트층은 김정은의 지시가 전략적인 실수였다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지적하지 않는다"며 "김정은의 결정에 대해 과장하고 아부하는 식으로 보고한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오더라도 외신 보도가 없다면 북한 체제의 특성상 제대로 된 보고가 올라가지 않는다. 이러한 허위 보고를 토대로 또 다른 잘못된 결정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군은 러시아 '총알받이'… 김정은의 '통일 지우기' 이용해 대북 심리전 나서야
그러나 우리 정부의 '대북 심리전'은 김정은의 이러한 도박을 전략적인 호기로 전환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하며 '통일 지우기'에 나선 상황에서 북한군이 조국 통일이 아니라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총알받이'로 희생됐다는 사실을 지지할 북한 주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하루 사상자가 1300명에 이를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 전 우크라이나 장관에 따르면, 북한군은 격전지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며 이 경우 사상자가 90%에 달할 수 있다.
메리 베스 롱 전 미 국방부 국제안보 차관보도 최근 VOA 대담에서 "솔직히 북한 병사들은 전통적으로 총알받이로 사용된다는 인식이 있다"며 "기본적으로 전투가 격렬한 지역에 배치된다. 가장 많은 부상자와 사상자가 나오는 곳에 배치된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 병사들을 그런 곳에 투입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래서 북한 병사들을 희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탈영병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이미 이를 목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익명의 대북 전문가는 "북한군 희생자가 대거 나오면 북한 내부는 굉장히 동요하게 될 것"이라며 "조국 통일만을 기다려온 북한 주민으로선 자신들이 통일 성전(聖戰)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침략 전장에 동원돼 희생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북 확성기와 대북 전단을 통해 북한군의 참전 참상을 북한 주민에게 생생히 알려야 한다"며 "해외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과 근로자들도 북한군의 참상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 동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은 자기 부정'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대표되는 김정은의 통일 지우기는 북한 정권으로서도 상당한 부담인 것으로 분석된다.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사무처장은 지난 10일 민주평통 주최 긴급 정세 토론회에서 "통상 최고지도자가 이론을 발표하면 간부들과 주민들이 북한 관영매체에 나와 '지당한 말씀'이라고 홍보하고 이게 왜 현실성 있고 정당한 이론인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논설과 사설이 나온다"며 "하지만 노동신문은 아직도 여기에 대한 지지 논설과 사설을 한 건도 못 냈다. 북한 주민들의 내부 설득이나 이해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 사무처장은 또 "과거에도 현재에도 북한의 당정군 엘리트들, 지식인들, 그리고 웬만큼 공부한 사람들에게 통일이라는 것은 신성한 의무였다"며 "'내 인생을 통째로 조국 통일에 바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할아버지, 아버지가 했던 통일을 갑자기 지우고 무슨 논리로 주민과 당·정·군 엘리트들을 설득하겠느냐. 북한 선전 당국은 지난 70년간 김일성과 김정일의 가장 큰 업적이 조국 통일 위업이라고 사상 교육을 해왔다. (김정은이) 선대의 위업을 깡그리 지워버리면 소위 백두혈통이라며 지도자가 된 자신에 대한 부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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