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년째 전쟁으로 황폐해진 자국을 재건하기 위한 '마셜플랜'이 필요하다고 밝힌 가운데 주요 7개국(G7)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가 지원방안을 속속 발표했다. '제2의 마셜플랜'이 가동될 자본은 마련됐다는 평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이탈리아에서 개막한 G7 정상회의 연설에서 "전후 유럽을 위한 '마셜플랜'과 유사한, 우크라이나를 회복하기 위한 명확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셜플랜은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을 재건하고 공산권 세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당시 천문학적 액수였던 약 130억달러를 투입한 원조계획을 가리킨다. '유럽부흥계획(ERP)'으로도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G7 정상들을 향해 "이런 복구계획을 함께, 그리고 G7+ 공동선언으로 이를 확정 짓자"며 7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될 나토 정상회의에서 이를 채택하고자 제안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G7 회의를 계기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각각 양자 안보협정을 체결하게 된 것을 언급하면서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G7의 안보구조가 완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방 각국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 가운데 먼저 500억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전체 3000억달러 동결자산을 몰수하기 위한 절차를 고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G7, 러 동결자산 활용해 지원사격 합의사잔이에 G7 정상들은 러시아의 동결자산으로 우크라이나에 500억달러를 지원하는 데 합의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 화답했다.
G7 의장국인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회의 후 취재진에게 "우리 관할권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수익을 활용해 대출 형식으로 연말까지 우크라이나에 약 500억달러를 추가 재정 지원하기로 정치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다만 멜로니 총리는 동결된 러시아 자산 몰수는 논의대상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번 합의에 대해 "역사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독립과 주권을 지키는 데 필요한 용기를 주는 매우 강력한 약속"이라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일부 국가가 재정 문제를 겪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단순히 이 상황을 이용하면 언젠가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강조했다.
G7 회원국과 유럽연합(EU), 호주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자국 기관들이 보관해온 러시아 중앙은행 보유외환 2820억달러(약 375조원)를 동결했다.
미국은 애초 동결자산을 몰수해 우크라이나를 직접 지원하자고 제안했으나, 대부분의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이 예치된 유럽국가들은 법적 문제를 이유로 난색을 보여왔다.
이에 G7 정상들은 러시아 동결자산을 직접 처분하지 않으면서 동결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수익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500억달러를 연말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앞서 EU는 지난달 자체적으로 역내 동결된 러시아 자산에서 발생한 연간 약 30억유로(약 4조4000억원)의 수익을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 활용하는 방안을 확정한 바 있다.
미국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유일한 대출권자는 아니고 공동대출 방식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 일을 해내겠다고 공동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위험을 분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동성명에 포함될 이번 합의는 우리가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지치지 않을 것이며 푸틴 대통령이 우리보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의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이번 지원안의 목표는 G7 회원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상관없이 우크라이나를 수년간 꾸준히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 있다고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어 나토도 우크라이나에 매년 최소 400억유로(약 59조원) 규모의 군사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회의 첫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나토 동맹국들은 연간 약 400억유로 규모의 군사지원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왔다"며 "나는 이 정도 수준의 지원 규모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동맹들이 공평하게 이를 분담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오래 지원할수록 우크라이나가 더 빨리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며 내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합의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합의가 도출되면 나토 회원국이 각자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따라 일정금액을 갹출해 모두 400억유로 이상을 모아 지원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러시아 측은 G7의 합의에 즉각 반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서방이 동결한 러시아 자산에서 수익을 취하려는 시도는 범죄"라면서 "러시아 정부는 이에 대응할 것이며 이는 EU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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