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안을 두고 지난 2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강대강 대치로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의 증원 강행 방침에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연이은 법원의 기각과 각하 판결에 아직까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상태다.
특히 정부 측과 의료계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첨예한 입장차만 거듭 확인하면서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양측의 양보 없는 대립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의료공백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다.
◆의료계, 정부 상대 소송 16건 제기 … 법원은 상당수 '기각'
현재 정부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의료계가 법원에 판단을 구한 사건은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을 포함해 모두 16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조규홍 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과 충북대·강원대·제주대·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전남대·충남대 의대생들이 정부 등을 상대로 낸 집단 민사소송은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이 낸 행정소송 7건은 법원의 기각 판단이 내려졌다.
지난 2월 조 장관은 2025년부터 5년 간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매년 2000명으로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주호 교육부장관도 같은 달 전국 각 대학에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신청을 요청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증원 결정이 일방적이라며 반발하고 법원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 등을 잇따라 제기했다.
먼저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 대표 33명은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에 복지부·교육부장관을 상대로 2025학년도 의대 2000명 증원 취소 소송을 내고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이들은 정부 결정이 ▲양질의 전문적 교육 제공 ▲양질의 전문적 수련 ▲양질의 전문적 교육 등을 저해하고 고등교육법 및 시행령 등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집행정지란 행정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일시적으로 처분의 효력이나 집행을 정지하도록 하는 제도다.
행정법원은 의료계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8건 중 7건에 대해 '원고 적격성'을 이유로 각하했다. 의대 증원 처분의 직접 상대방을 '의대를 보유한 각 대학의 장'으로 판단해 의료계는 제3자에 해당하고 따라서 집행정지를 신청할 자격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의료계, 행정소송 기각되자 민사소송 제기 … 정부, 증원 근거 법원 제출
행정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리자 충북대·강원대·제주대 의과대학 재학생 등은 서울중앙지법에 각 대학 총장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국가를 상대로 대입 전형 시행 계획 변경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어 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전남대·충남대 의대생 등도 같은 취지의 소송을 법원에 연이어 제기했다.
의대생들은 대학이 정부의 결정을 협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학생과의 사법상 계약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방침이 의대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해 계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어 대학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을 받아들일 경우 의대생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다며 법원이 가처분을 통해 이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김상훈)는 지난달 30일 충북대 등 3개 대학 의대생이 제기한 3건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국립대학과 학생 사이 대학 관계는 국가를 채무자로 하는 소송에 해당해 행정소송법에 따라 진행되는 소송으로 분류돼 행정법원의 관할에 속한다"며 기각 결정을 내리고 사건을 행정법원으로 넘겼다.
경북대 등 5개 대학 의대생이 신청한 5건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도 지난 8일 동일한 취지로 기각·이송 결정을 내렸다. 의료계는 1심 판단에 불복해 항고했다.
이후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지난달 30일 열린 항고심 심문에서 "신청인 모두 원고 적격이 없다면 정부의 처분을 아무도 다툴 수 없다"며 1심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모든 행정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정부에 집행정지 인용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의대 증원 최종 승인을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또 "당초 2000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왔는지 제출해 달라. 최초 회의자료, 회의록 등 그런 것들 있으면 내 달라"며 의대 증원 처분에 대한 근거를 등을 정부 측에 요청했다. 또 재판부는 5월 중순까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인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정부 측은 의대 증원수를 2000명으로 결정한 배경과 이유 등이 담긴 근거자료를 지난 10일 법원에 제출했다. 정부가 제출한 자료는 의료현안협의체와 보건정책심의위원회, 정원배정심사위원회 3대 회의 자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의정 갈등' 법원 판단 나오기까지 '강대강 대치' 계속될 듯
전문가들은 강대강 대치로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이 이달 중순 법원의 가처분 신청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의료계 의대 정원 관련 소송을 담당하는 이병철 변호사는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관련한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며 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5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복지부 측은 대한의사협회(의협)와의 공식 소통 기구였던 의료현안협의체와 논의를 거쳤고 이 단체는 법정협의체가 아니어서 법령에 따른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복지부는 해당 단체와 협의한 주요 내용을 정리한 회의 결과를 법원에 제출한 만큼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한 전문가는 "정부와 의료계가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지 않는 한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보인다"며 "서로의 입장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는 한 결국 사법부의 판단이 현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의료개혁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감안하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일부 정원 축소 등 의료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도 지난 10일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멈춰 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전국 19개 의과대학 교수들 역시 같은 날 하루 동안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는 집단 행동을 결의하며 강하게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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