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3일> - (SNS 글 펌) ]
★1914년 11월 23일
월북한 좌익 시인 이용악(李庸岳)은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한 날이다.
악랄한 이용악은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이라는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는데 이후 미국과 이승만을 반대한다고 외치는 '조선문학가동맹' 이라는 좌익 문화모임에서 과격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며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복역 도중 북한 인민괴뢰군이 서울을 점령하던 당시 출옥하며 자진 월북했다. 좌익 이용악의 대표작은 '북국의 가을', '풀벌레소리 가득 차 있었다', '낡은 집', '슬픈 사람들끼리'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등이 있다. 조국을 버리고 월북까지 감행했던 악랄한 범죄자 좌익 이용악은 1971년 북한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작품은 현재 '문학',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1920년 11월 23일 :
백선엽(白善燁) 장군이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출생한 날이다.
백선엽 장군은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에서 중공 팔로군토벌에 임하며 해방 이후 귀국했다.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임관한 뒤 국방경비대에서 연대장, 사단장을 맡았으며 휴전회담에서 한국측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육군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지냈으며 주프랑스 대한민국 대사 겸 네덜란드, 벨기에 대사를 지냈다. 중화민국,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뒤 캐나다 대사로 전보되었다가 교통부장관이 된다.
교통부장관으로 서울 1기 지하철 건설을 지휘했으며 1971년 충주비료 사장에 선출되어 기업인이 되었고,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을 겸임했다.
1979년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1980년에는 한국종합화학의 사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한국후찌쯔 고문, 한국화학연구소 이사장, 국제상공회의소 국제위원장을 역임하고 강연 활동을 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노근리사건 대책단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었으며, 200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된다.
2013년 주한미군으로부터 미8군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백선엽 장군은 2020년 7월 10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 1984년 11월 23일은 북한 병사가 분계선을 침범하며 총격전이 발생한 날이다. - 1988년 11월 23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쫓기듯 연희동을 떠나 백담사에 은둔한 날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재산을 헌납하겠다며 "머리숙여 용서 빕니다"라고 국민에게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헌납 재산은 사저와 재산 23억, 정치자금 139억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삼청교육 해직자 문제에 대한 시행 착오를 시인한 뒤 "친인척 비리 관련 단죄를 각오한다"며 "조국을 떠나는것 아니면 어디든 가겠다"고 표명했다. 이날 23일 오후 3시 20분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에 도착한 전두환 대통령 부부는 김도후 주지의 안내로 절경내를 둘러보았으며 자택을 떠날 때보다는 다소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자신들을 향한 국민의 따가운 질책을 피해 인적이 드문 산사의 방 한 칸으로 숨어든 전 씨 부부는 집권 8년과 연희동 9개월의 영욕을 되씹은 뒤 빈손 유랑길에 올랐다. 측근과 경호원 등 10여 명이 수행한 쓸쓸한 유랑길이었으며, 안식처마저 기약없는 속죄 가득한 하루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는 백담사 김도후 주지의 "먼길 수고 많았읍니다"라는 마중인사에 "신세좀 지겠읍니다"라고 답례했고 김도후 주지의 안내로 대웅전 왼쪽 요사채(스님들이 묵는 방) 방 4개 중 3번째 방에 여장을 풀었으며 부부 일행의 짐은 10여개 가방에 옷가지와 비상의약품, 책, 간단한 등산장비 등을 담았기에 단촐한 편이었다. 이들은 짐정리가 끝난 뒤 오후 4시 40분 쯤 방을 나서며 경내를 둘러보았으며 김도후 주지의 안내로 법당에서 참배하기도 했다. 추운 날씨 계곡의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청색 방한파카에 털모자 차림이었으며 부인 이 씨도 스웨터와 흰색 방한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절 안마당에서 만난 보도진에게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해주는 등 연희동을 떠날 때의 침통한 표정이 사라진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는 오후 6시쯤 된장국과 깻잎 반찬 등으로 절에서 마련한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쳤으며 자신들의 방으로 옮겨 김도후 주지 등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 밤 9시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당시 백담사에는 전기가 들어오지않아 저녁 시간 동안에는 촛불로 불을 밝혔으며, 경호원들이 교대로 절입구 일주문등에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당시 백담사는 원통-간성간 46번 국도에서 내설악으로 계곡을 따라 7km쯤 들어간 곳에 위치해있었으며 해발은 600여m였다.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라 진덕여왕 때 지은 고찰로 알려졌었으며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창작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의 방문에 앞서 수일 전부터 경호요원들이 찾아와 부부가 묵을 방을 점검했으며, 절에서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 대신 방에서 10여m쯤 떨어진 곳에 합판과 스티로폼 등으로 세면대가 구비된 간이화장실을 만들었다. 당시의 백담사는 1988년 11월 15일부터 겨울철 산불방지를 위한 입산금지조치로 등산객의 발길은 거의 끊겼었으며 5명의 스님과 보살 등 절식구가 모두 12명이었다.
같은 날 1988년 11월 23일 노태우 대통령은 시국 관련자 전면 석방을 포함하며 6개항의 민주화조치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 2007년 11월 23일은 국회에서 삼성그룹의 불법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삼성 비자금 의혹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킨 날이다. - 2008년 11월 23일은 22명 비무장지대 GP 내무반에서 수류탄 폭발사고가 발생한 날이다. - 2010년 11월 23일은 연병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북괴는 14시 30분경부터 15시 41분까지 해안포와 곡사포를 연평도와 인근 해상으로 170발 이상의 포격을 가했으며 이로 인해 해병대 병사 2명이 전사, 주민 2명이 사망한 것을 비롯, 군인 16명과 민간인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북괴는 당일 오전에 우리 군이 육해공 연합합동 훈련을 실시하는 것에 대해 "자국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불쾌감을 드러낸 뒤 중단을 요청하는 전통문을 발송했었다. 그러나 연례적인 훈련일 뿐이기에 국방부는 요청을 거절하고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했다. 이후 14시 30분경 북괴는 76.2mm 평사포, 122mm 방사포, 130mm 대구경포로 연평도 해병대와 민가 지역을 향해 개머리 해안 부근 해안포 기지에서 포격을 시작했다. 적들의 포격이 진행된 뒤 13분 후 우리 군의 K-9 자주포는 무도 진지를 향해 50발, 개머리 포진지를 향해 30발 등 총 80여 발을 사격하였으며 북괴는 15시 41분까지 약 170발을 공격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1시간 가량 교전이 지속되는 동안 한국은 KF-16기 2대와 F-15K 4대를 긴급 출격시켰으나 적의 도발이 계속되지 않아 실제 타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령도를 향한 북괴군 해안포 기지에서 입구 개방까지 확인되기도 하였으나 더이상의 공격은 하지 않았다.
북괴군의 포격으로 연평도에 거주하는 주민 2명과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3명과 해병대원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인명 피해 외에도 연평도 내연발전소와 고압변전기가 파괴됐으며 주택 21채가 전소되고, 10곳 이상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연평도 포격은 6.25 이후 처음으로 북괴가 민간 지역까지 직접적 포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과거 어떤 도발보다도 심각한 도발이다. 연평도 포격 도발은 북방한계선을 무력화하고 서해 5도 지역을 분쟁 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치밀한 의도와 대내외 상황 악화 및,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강경 정책에 대응할 목적, 후계자였던 김정은의 권력세습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여건 조성 등과 같은 의도에서 도발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괴의 의도를 보다 자세히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괴는 김정은 후계 체제의 조기 구축을 위한 것이며 후계 구축 과정에서 대내외적 리더십을 과시함과 동시에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 유도 차원에서 군부에 힘을 싣고, 주민들의 불만을 수습하기 위해 내부 결속을 다질 의도다. 또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며 대화 국면을 유도했으나 실패하며 보다 강한 도발을 통해 국면 전환 목적의 전략으로도 분석할 수 있다.
둘째,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고립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도발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북괴가 호국 훈련에 대한 대응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과 북방한계선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었다.
셋째, 북괴가 포격 지역을 연평도로 선정했던 이유는 서해 북방한계선 자체가 북한이 보유했던 해안포 위치에서 공격하기 적당한 지역이었으며 파급력이 크다는 점, 육지와 비교할 경우 확전 가능성이 적다는 점까지 치밀한 계산 하에 고려되었다고 판단된다.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준전시상황이다. 힘이 수반되지 않은 평화는 굴복이라는 점을 망각하지 않아야 하며 평화를 위해 매사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
-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실은 전 대통령 보다 그의 인척들 비리와 부패 때문에 인식이 더욱 좋지 않다.)
그러나 전 대통령 존재 자체가 군사독재 악마로만 느껴진다면, 이미 좌파 역사 프레임에 세뇌 된 것일수도 있다.
(혹은 가족 구성원들 전부 강성 좌파이거나!)
한국 근현대사들을 다룬 책과 작품들
영화, 드라마, 연극과 뮤지컬 등 모두 좌파 코드가 주입되어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
영화 1987
비추 테러 맞겠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