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가 창설한 10군단이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에도 그대로 존치 되었다면 로마 제국은 더 오랫 동안 멸망하지 않았을 텐데...
카이사르가 양성한 로마 10군단은 기원전 61년에 북부 스페인에서 모병되었다.
10군단은 백명 단위로 대장을 두었고 이를 백인대로 불렀는데 카이사르는 대장(센츄리온)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알았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전장에서 대장들의 이름을 부르며 작전을 진두 지휘했다.
그래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10군단 병사들은 25kg의 갑옷을 입고 하루 36km를 이동한다.
아침에 일어나 숙영지를 없애고 다음 주둔지로 이동하고 새로운 숙영지를 만든다.
훈련시에는 군장은 50kg으로 늘렸다.
유일한 오락은 수영과 레스링이었다.
전쟁에 졌을 때 10인 처형제가 있었다.
내가 잘못했으면 나만 죽으면 되는데 나 때문에 동료가 죽는 형벌이었다.
10군단은 마사다 전투에서 그 위용을 드러냈었다.
카이사르 암살 이후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영토확장을 금기시 하였다.
참 탁월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후대에게 "라인강과 도나우강 유프라테스강의 경계선을 넘지마라!" 를 유언으로 남겼다.
이것은 제국의 경계선을 명확히 설정하여 지킬 수 없는 한계선을 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오현제 시대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제국 북쪽 경계선이 4,000km에 달했다.
매월 225톤의 물자가 필요했다.
결국 로마는 더욱 많은 군단을 운영하게 되었고 결국 재정이 어려워져 군단수를 줄이게 되면서 국력이 쇠퇴하게 되었다.
로마 사람들이 반달족 출신의 스틸리코 장군을 두려워 하였다.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로마는 쉽게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로마 사람들은 스틸리코 장군을 죽여버렸다.
역사에서 만일은 의미가 없지만 스틸리코 장군이 살해 당하지만 않았어도 야만인 게르만족에게 로마가 쉽게 함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는 그리스의 배타적인 것을 교훈 삼아 이민족에게도 개방적이었는데 후대로 갈수록 순혈주의로 가면서 결국 쇠퇴하게 되었다.
카이사르의 10군단을 해체한 이유도 로마 제국 최강의 부대가 스페인 계통이었고 반란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까봐 두려워 했던 것 같다.
오 이런 거 좋아
역사는 무조건 개추!
카~ 마사다 성채. 사막위의 절벽위에 세워졌으며 길의 폭이 좁고 경사도 30넘어서 공성병기를 들고갈 수가 없어, 난공불락의 성채였죠.
그곳을 유대인 노예로 화살막이로 쓴 후, 공학자들 갈아서 개량된 공성탑으로 공략한 로마는 알고있었는데, 제 10군단이었군요. 정보추!
그렇지요.
카이사르가 조금 더 살았다면 분명 유럽은 하나의 나라가 되었겠죠
카이사르가 과연 암살 당하지않았다면
파르티아를 정복 할수있었을까요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궁금하네요
오현제 두번 째 트라야누스 황제가 파르티아를 일시 정복했다네요.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파르티아를 상실했다는 군요
트라야누스는 역량면에서 카이사르의 3분의 1이라고 보여집니다.
만일 카이사르가 로마를 통치했다면 이집트에서는 반란이 없었겠죠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를 다스리게 했다면요.
키케로는 블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하는 걸 보고 과연 이 시대에 정의는 있는 것인가? 개탄하여 의무론을 집필하였다죠.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글의 형식으로
같은 생각이군요
저도 파르티아는 정복 당했을거라 봅니다
서양의 역사는 이슬람과 카톨릭의 끊임없는 대립의 역사인데 카이사르가 좀 더 살았다면 이런 역사도 없었겠죠
더더욱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ㅋㅋㅋㅋ
카이사르는 영원히 영웅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겠죠!
님과 나의 마음속에서 처럼
우리 대한민국에는 왜 영웅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