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일본, 중국 동북지역에 만주국을 설립하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통해 중국 북동부를 점검한 일본 광동군은 이듬해 1932년 3월 1일 장춘[당시 신경]을 수도로 괴뢰국 만주국을 수립했다.
일본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국가원수격인 집정에 앉혔다.
연호를 대동[大同]이라 했다. 일본이 푸이를 앞세워 만주국을 세운 것은 대륙 침략 전쟁의 병참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같은 해 9월 15일 '일만의정서'에 조인해 만주국을 정식으로 승인했다.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스페인,헝가리, 폴란드 등 일부 국가도 만주국을 승인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부당성을 호소하고 국제연맹이 1933년 2월 24일 임시총회에서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규정한 '리튼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는 승인을 받지 못했다.
총회는 만죽국을 승인하지 않고 만주를 열강들의 공동관리 하에 둔다는 권고안을 42대 1로 의결하자 일본은 이에 불복하고 국제연맹을 탈퇴했다.
만주국은 열하작전으로 승덕이 점령됨으로써 국토는 요녕, 갈림, 흑룡강, 열하의 4성, 인구는 3천 만 명에 이르렀고, 1934년 3월 푸이가 황제로 즉위하여 제정이 수립되면서 연호를 강덕으로 고쳤다.
만주국의 수립은 식민치하의 조국을 등지고 현지에 터를 잡은 200만명의 교포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이 됐다. 만주에서의 대한독립운동에도 큰 타격을 주어 무장 독립군은 최후의 거점을 상실하고 그 근거지를 만주에서 중국본토로 옮겨야만 했다.
또 일본 낭인들은 한국인들의 마을을 습격해 방화 / 약탈 / 살육 등 만행을 자행했다.
만주국은 1945년 8월 소련의 참전으로 관동군이 괴멸되고 푸이가 소련군에 체포되면서 무너졌다.
그 이전에 청나라가 봉금령 깨고
내륙인을 동북 4성에 1800만이나 쑤셔박아서 이미 만주가 아니라 짱깨였지 난 이부분에 있어서는 내일처럼 아파해줄 공감력이 부족.
일제치하에 도망쳤다기엔 조선말기에 튄애들이 너무많다
다 우리 선조입니다
조선족도 아픈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관동군이 단독으로 벌인짓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청이 연해주 지역 잃었는데, 만주국 마저 빼앗김으로써,한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됩니다.만주에서 시베리아,사할린,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즈스탄,러시아 고려인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만주에 살던 동포는 조선족이
되어 중공 국적이 되어 우리가 싫어하는 장궤
라고 멸칭을 주는데...한국의 아픈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