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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스크롤 주의)

하울

경어체는 생략하고 글이 길어서 음슴체로 쓸께ㅠㅠ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태어났음.


두류동에서 이재명이 시장으로 있던 지역의 이름과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카 출신인 영남고를 갈까 하다가 집과 거리가 조금 있어서

결국 유시민과 김재원의 고등학교 후배가 되었음..ㅋ


칠곡에 있는 전문대학에 입학해서 방사선을 전공했는데,

그때는 그냥 취직해서 안정적으로 돈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커서

그냥 갔던거 같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누구든 높고 좋은 직장을 선호하지만

내 자신을 잘 알기에 못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는 않았지ㅎ


사실 꿈은 파일럿이었는데, 시력과 실력 둘다 딸리니깐

그냥 꿈이 없었던거 같다.


난시가 좀 심해서 당시 신검 4급이 나왔고,

타지역에 있는 방위산업체 공장에 들어가서 학교 복학시기에 맞춰

한달전까지 2년 11개월을 일했음.


남들은 복학 후를 대비해 공부를 했겠지만 난 돈벌고 싶어서

일을 9개월 더한건데 참 선택능력 ㅎㅌㅊ 인정함ㅋㅋ;;


복학 후 공부하고 실습하면서 조금씩 회의감을 느낌..


직장을 구하는데 있어서 아침 출근, 저녁 퇴근..주말은 쉬는

주 5일제 산업체에서 일하다가 병원은 당직에 야간근무까지 하는게

왠지 내인생이 팍팍할거 같았음ㅠㅠ


돈도 중요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주말에는 충분히 쉴 수 있는

그런게 보장된 직장을 갖고 싶어했던거...


그렇게 학교는 졸업하고 부친한테 얘기해서 결국 서울에 있는

어느 한 기업의 고객센터에 취업함..


우리센터에 총 300명 넘는데, 남자가 고작 11명..


그때 내나이 26살..

부친에게 딱 200만원만 받아서 바로 상경했지.


회사까지 지하철 환승없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운좋게 고시원

하나 얻어서 그렇게 생활함..


그렇게 내 부서에서 4년 일하고 상급 부서로 차출되어 6년 근무..

그러면서 본사로 파견되어 2년 근무..지금은 다시 최초부서에서

다른 업무를 하고 있고..


올해 5월이 13년차가 되었던 시기.


5년 전 지금의 와이프를 회사에서 만나서 20년에 결혼하고

올해 신혼 3년차.


나는 참 흥청망청 살았던거 같고, 와이프는 참 알뜰하게

살아왔던 전북 남원 출신의 여자였다ㅎ


서울에서 아직 내집은 장만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둘이 연애하고

행복하게 생활하면서 지난 날들을 결코 후회하진 않는다ㅎ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곳에 2030 세대들이 참 많은 것으로 아는데,


여성가족부니 뭐니 이준석이 마치 우리들의 대변인인거마냥

감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있어서야.


올해 38세된 아재이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남녀간의 문제로

불편한거 하나도 없었다고 자신한다.


어딘가 마트에 가면 당장 여성우선 주차구획도 따로 있지만

이런 것들은 정말 살아가면서 우리가 핏대를 높이면서 자존심이든

권리든 따질만큼의 이슈도 안된다는거더라.


오래 살아왔던 것은 아니지만 사회생활 하면서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얘기임.


페미니스트들처럼 여성우월주의에 빠져있는 사람은

주변에 찾아보도 극히 드물고 말이야ㅎ


그러니 여기 청꿈에서도 여가부니 뭐니 그런거에 목숨거는

펨코애들처럼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잠시 접어두고 다른

부분들을 봤으면 좋겠당.


나같이 저렇게 살아왔어도 좋은 여자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도 하고 G80도 사보고 했으니 더 젊은 친구들도 어디가서

기죽지말고 젠더갈등 등 이런거에 휩싸이거나 열내지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거~ 그런거 하면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ㅎ


나중에 내여자 만나면 뭐든 잘해주고 싶고, 편하게 해주고 싶고,

내딸 나으면 딸도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터이니..


큰거 아니면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하면서 살자고~

큰 손해가 아니면 살아가면서 조금 손해보면서 사는것도 편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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