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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명의 특전사가 희생된 봉황새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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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아홍 조교



전두환은 희생된 53명의 특전사들을


제대로 수습도 안했다.


쓰레기담듯 마대자루 3개에 대충 담았다.


그리고 사고헬기는 은폐를 위해 그냥 폭파 시켜버렸다.


지금도 사고현장엔 당시 파편이 발굴된다고한다.


관련 특집 기사 내용


정권의 거짓말... 제대로 수습조차 안된 사고 현장

'사후처리 문제에 유감이 없게 하겠다'던 주영복 국방장관의 대국민 약속은 거짓말이었다. 군을 믿었던 이씨는 실로 믿기지 않는 제주 사고현장을 유족들에게 전화로 알렸다. 유가족들이 직접 사고현장을 수습하는 걸 목격하고 완벽하게 정리를 끝냈어야 했는데 무작정 군 당국을 믿은 게 실수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스스로 발등을 찍게 됐다는 게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씨는 당시 사고현장에서 시계와 수첩 같은 유품들을 주워왔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고인들의 부인 19명이 1982년 5월 19일 제주 사고현장에 가겠다고 나섰다.

"남편 죽은 데서 나두 죽으먼 월매나 행복스러우냐 이거여. 죽거나말거나 우린 상관할 바 아니니께 가겄다구 말이지. 그이네들이 갔다와서는 남자들이 즘 가야겄다구, 같이 즘 가시자구 기별이 또 왔슈. 영령들이 까마귀 밥, 늑대 밥 노릇 허게 생겼으니 빨랑 즘 가시자구 말이쥬."

1982년 5월 25일 남자 유가족 10여명과 고인들의 부인들이 다시 제주 한라산 개미등 계곡에 갔다. 이날은 출발부터 군인들이 따라붙었다. 수류탄을 보여주면서 사고현장에 들어가면 폭발 사고가 나서 다 죽게 된다고 위협도 했다. 부인들은 가시철망을 제치고 들어가 남편의 유품을 찾겠다고 난리였고, 남자 유족들은 이들을 말리느라고 아수라장이 됐다. 군인들과 남자 유족들 간에 멱살잡이가 진행될 즈음 한쪽에서 유가족 중 하나가 '이리 와보라'고 외마디 소리를 외쳤다.

"일순간 주목했쥬. 나 그 사람, 이름이 이렇게 생각이 안 나. 쫓아가봤드니 벌써 땅을 한 50㎝는 팠나봐. 어린애 죽으면 갖다 묻고 짐승들이 못 먹게 하느라구 동막대기(돌멩이) 올려놓듯이 그렇게 줏어다 해놨드라구. 술 한 잔 부은 흔적두 있구, 촛농 떨어진 흔적두 있구.

거길 파니께 푸대가 하나 나와. 고기로 치자면 한 열 근? 살데미, 군화 신은 발, 뼈가 송곳처럼 쫙 잘려서 뾰족해 있드만. 갑자기 한 사람이 군화를 끌러보자구 하드라구. 내가 잡았지. 이거 끌러서 내 새끼라고 밝혀지면 나 여기서 졸도한다, 당신 남편 거라면 워쩌것냐. 그러지 말구 우리 이거 들구 전두환이한테 갖구 가든지, 군부대에 갖구 가든지 결정을 짓자.

그러구 있는디 군인들이 와서 저희들한티 넘기라는겨. 계속 무전기로 뭐라 해싸코. 응, 유족들이 난동부리구 있다, 아 이 지랄하는겨. 따라왔든 군인 한 눔이 허공에 대고 총 쏘믄서 '명령이다, 손 떼라' 그래서 우리가 군인이야 이눔아 그리구 냅다 쥐고 산을 내려왔지. 내 목심이 끊어지든지, 당신네 목심이 끊어지든지 워디 한번 해보자구 그럼서 계속 실갱이를 한겨."

이씨는 개미등 계곡에서 관음사 매표소로, 다시 산천단 아래로 내려와 택시를 탔다. 우선 서울 가는 공항으로 가자고 했다. 제주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항공기를 타려고 하는데 항공사 직원이 '푸대자루'에 담긴 게 뭐냐고 물었다. 이씨는 거짓말하기 싫어 솔직히 말했다. 5일 사고 난 비행기에 탔던 유해들이라고.

항공사측은 기내에 유해를 실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군인의 사체는 부대 사령관의 반출 허가증이 있어야 하고, 일반인이라면 도지사의 반출 허가증이 있어야 기체에 실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적도 똑같았다. 제주도에서 포대자루에 담긴 시신을 들고 뭍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모두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인적이 뜸한 여관으로 갔지유. 이 보따리를 들고 워딜 다닐 형편도 못 됐구, 우선 유골함이라두 하나 짜서 그 안에 넣고 다녀야지, 푸대자루에 끌고 다니니께 영 볼썽사납더라구.

여관 근처 목공소에 가서 유골함을 짜는디 윤 대령이라는 사람이 만나자구 한다 이거여. 다방에 와 앉았다구. 가서 만났지. 시체를 인계하라는 겨. 전두환한테 가져가든지, 국립묘지에 갖고 가든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께 군은 빠지라구 했드니, 군인은 국가의 시신이라는 겨. 개인의 시신이 아니다 이게지. 군정이나 진배없는 행정당국이니께 쉽게들 말한 게지.

그런데 방법이 없겠드라구. 그래서 꾀를 냈지. 제주도에서 화장해서 갖구 가겄다구 말이여. 어차피 당신네들이 독선 출항증도 안 끊어줄게 뻔하니께 앳새 제주화장터에서 화장을 해서 갖구 가자구 말이여. 그래서 그걸 갖구 서울 와서 국립묘지 27(사병)·29(장교) 묘역에 고루 뿌렸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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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특전사들은 미국 그린베레와 같이 훈련도한 대한민국 정예중의 최정예였는데


이들이  그것도 50명도 넘는 특전사들이

왜 죽었는지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밝혀지지않았다.


사고 원인은  공식적으론 조종사 과실이지만

눈이 내리는 날씨에 왜 무리하게 작전을 수행한건지 알려지지않은것이다.


(소문에는 장세동이 전두환에게 과잉충성하기위해 까라면 까라고 강요했다는 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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