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민심은 과연 박근혜를 추종하는 것일까? feat.지역할거구도의 역사적 맥락]
[페북 글 펌]
대구시장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대구에서 '박심'이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아마 이걸 두고 많은 이들이 대구지역은 박근혜 한 사람을 저렇게까지 추종하냐고 단편적인 의문을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것은 철저히 이해관계에 따른 현상, 즉 선거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대구지역은 과거 1985년 12대 총선 당시의 득표율을 살펴볼 때 신군부 주도하의 당시 여당인 민정당과 유신세력의 주도 하에 창당된 한국국민당보다, 민주화세력이 뭉쳐 만든 신한민주당과 관제야당이던 민한당을 더 지지했다. 신한민주당+민한당 48.36% vs 민정당(여당)+국민당 43.95% 즉, 군부 세력보다 민주화 세력을 더 많이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2년이 지난 뒤인 87년 대선 때에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여당이던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70.7%를 득표하며 압도적 몰표를 받은 것이다.
당시 대선에선 '1노3김'의 구도, 즉 '지역할거주의'에 의한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후보의 출신지역을 두고 경쟁이 벌어졌는데, 이에 따라 TK지역이 비록 신군부의 대표주자였으나, TK에 지역적 근거를 두고 있던 노태우 후보에게 대구지역이 몰표를 던진 것이다.
이를 두고 간혹 진보진영에선 TK가 일방적으로 군부세력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었다며 맹폭을 가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알고보면 TK가 이러한 투표양상을 보인 것은 전국적 경향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라 그리 이상한 일이라 볼 수는 없다.
당시 주요 네 후보가 모두 뚜렷하게 지역적 연고가 갈렸던데다가, 민주화라는 시대적 대의가 일단 수용된 상황에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여러 요구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군사정권에서 야권의 갈등을 적절하게 유도하며 지역할거주의 정치구도를 본격화시킨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
즉, 이러한 상황을 살펴볼 때 지역할거구도는 필연적인 정치적 구도였다는 것. 이러한 구도는 88년 총선에서 4당체제를 통해 그대로 이어졌으며, 90년 3당합당과 그 뒤 자민련 및 국민회의 창당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신3김시대'를 통해 지속된다.
특히 대구지역의 경우가 매우 놀라운 것은, 일방적으로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를 압도적으로 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민주화의 양대 축 중 하나이자, PK가 압도적으로 지지를 보내던 YS가 보수정당의 실권을 가져가면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92년 대선에서 YS는 대구 지역에서의 득표율은 59.6%, 부산 지역에서의 득표율은 73.3%를 기록했는데, 이는 대구 지역이 YS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시초가 된 선거였다. (YS는 실제로 지금까지 대구보다 부산지역 득표율이 더 높았던 유일한 보수정당 후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YS가 집권을 하면서 더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YS는 집권초기부터 사정정국을 통해 군부세력 및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엄청난 사법적 수단을 바탕으로 한 견제를 감행했는데... 이때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에 의해 YS를 적극 지원했던 유신세력의 대표주자 박준규 국회의장이 의장직을 내려놓고 사실상 정치적 힘을 잃게 되었고, 이후 1994년 슬롯머신 사건을 통해 6공화국의 실세이자 YS의 라이벌이었던 박철언이 구속되는 것은 물론이며, 1995년 5.18 특별법의 단행으로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하여 5공화국에서 활약했던 신군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사법적 심판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 탓에 당시 TK는 당위에 따른 판단보다는, 민주화의 거두이자 PK출신이던 YS로 인하여 중앙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1994년 낙동강 오염사고, 1995년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 등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인해 대구지역의 민심은 그야말로 폭발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민심은 이에따라 1993년 및 1994년 보궐선거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야당 혹은 무소속 후보를 잇따라 당선시켰고, YS에 의해 역시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JP와 함께 유신세력(박준규) 및 6공인사(박철언,김복동) 등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1996년 총선에서 대구는 대구지역의석의 90% 가량을 자민련이 전부 차지할 정도로 YS가 이끌던 당시 여당을 철저히 심판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때, 대구지역은 특정한 한 인물에 대한 추종보다는,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유권자들의 의사표시를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마치 호남이 김대중을 선호하고, 부산경남 일부에서 김영삼과 노무현을 선호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정치적 현상에 대한 피상적, 공시적 분석은 결과적으로 역사적 흐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어떻게도 되돌리지 못한다. 오히려 현재의 양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통시적인 맥락을 살펴보고 정확한 지역민심의 원인을 파악하여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대구지역에서 출마한 정치인 가운데 만약 '박심'의 작용이 마음에 안든다면, 대구시민들에게 박근혜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말아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살펴본대로 한국 정치지형의 기본 조건과 역사적 맥락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이 어떻게 대구지역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뭔가 지역적 이기주의가 심한거 같은 느낌이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