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청문홍답에 1997 외환위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profile
사림 청꿈단골

Screenshot_20220410-155852.jpg

 

 

 

당시 외환위기를 당했던 원인들을 여기서 다 썰을 풀 수는 없고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 두 가지만 지적하자면 
 
1. 9월 기아자동차 김선홍 회장의 사퇴 거부와 법원에 화의 신청 
 
당시 재계 8위의 국민기업 기아차에 대해 정책당국은 7월 부도유예협약을 체결하고 김선홍 회장을 사퇴시키려 했음. 
그런데 김선홍이 사퇴를 거부하면서 법원에 화의를 신청해버리는 바람에 외국인들은 한국이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계기가 되었음. 
기아의 화의 신청 이후 외환.상업.제일.서울은행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하향조정되었고 해태.뉴코아.한라그룹.고려증권 등이 줄도산 하게 됨. 
 
2. EPB관료들의 오판 
 
당시 한국은행을 비릇한 Mofia 관료들은 시장일임론을 펼쳤던 반면에 재정경제원의 EPB관료들은 시장개입론을 펼쳤음. 
Mofia는 평가절하로 시장의 움직임을 수용하여 외환보유고의 급격한 감소를 방지하자고 주장했지만, EPB는 환율방어로 시장의 불안심리를 해소하려 했음.
EPB는 IMF는 한국이 원한다면 언제든 갈 수 있으므로 IMF에 앞서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해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 
결과적으로 EPB가 틀렸고 Mofia의 시장일임론이 옳았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Herding과 같은 시장의 행동을 빨리 읽고 적어도 10월 중순 경에는 IMF행을 결정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댓글
9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