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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리더의 자격을 묻다 [조광형의 直說]

뉴데일리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의 재상 자한(子罕)이 어느 날 군주인 평공(平公)을 찾아가 이렇게 간언했다. "칭찬하고 상을 주는 일은 백성들이 좋아하니 주군께서 직접하시고, 죽이고 벌을 내리는 일은 백성들이 싫어하니 제가 직접 맡겠나이다."

평공은 기꺼이 '악역'을 맡겠다는 자한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자한의 악명이 높아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백성들은 '사람 좋은' 평공보다 '벌을 주는' 자한을 더 따르기 시작했다.

자신을 왕보다 더 두려워하고 추종하는 세력이 많아지자 자한은 마침내 평공을 몰아내고 송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다.

한비자(韓非子) 이병(二柄)편에 나온 이 일화는 반드시 '착한 리더'가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좋은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구성원들의 불만을 사는 게 싫어 '쓴소리'를 마다할 경우 리더의 권위는 떨어지고 그 조직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2002 한일월드컵' 때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이천수는 히딩크 감독이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기적처럼 16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 대표팀은 긴장이 풀려 누가 봐도 분위기가 풀린 상태였다. 그때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을 모아 놓고 "너희들에게 실망했다"며 거칠 게 화를 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희대의 명언도 이 당시 나온 말이다.

이천수는 "그때부터 선수단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래서 이탈리아와의 16강전도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잡아주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이 변화한 겁니다. 감독이면 '그러지 마라' '뭐 하는 거냐'고 얘기하면서 선수들을 다그칠 줄도 알아야지. 맨날 자기만 웃고 있고, 애들한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면 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나요."

이천수가 거론한 '자기만 웃고 있는' 감독은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위르겐 클린스만이다. 클린스만은 지난 7일 새벽 한국이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요르단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순간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귀국 후 열린 기자회견장에도 손을 흔들며 나타난 클린스만은 "요르단이 우리보다 더 승리를 원했다" "그래도 4강에 진출했다. 실패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해 비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는 우리 대표팀이 승리에 대한 갈망이 부족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에게서 승리에 대한 '갈망'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감독 부임 후 '한국에 오래 머물겠다'고 약속했지만 최근까지 클린스만이 한국에 체류한 날은 두 달 남짓에 불과했다. 주로 미국 자택에서 '원격'으로 대표팀을 지휘한 그는 '국내파'보다 검증이 필요 없는 '유럽파' 점검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술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선수들끼리 '알아서 한다'는 말이 대표팀 안팎에서 나돌기도 했다.

우려는 현실로 이어졌다. 아시안컵 대회가 열리면서 '해줘 축구' '좀비 축구' '무전술 축구'를 구사한다는 비아냥을 들은 클린스만은 결국 4강전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경질 위기에 직면했다.

요르단과의 4강전 전날, 대표팀 선수끼리 몸싸움을 벌였다는 충격적인 소식까지 전해졌다. 대체 클린스만은 뭘한 걸까? 대한축구협회가 연봉 29억 원을 주면서까지 '모셔온' 그는 이강인이 주장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지켜보기만 했다. 기강을 잡는 차원에서 이강인을 선발 명단에서 빼달라는 고참급 선수들의 요구도 무시했다.

요르단전에서 손흥민은 동료들에게 총 34차례 볼을 건넸는데 이 중 10회가 이강인에게로 향했다. 반면 이강인은 총 55차례 동료들에게 패스를 했으나 손흥민에게는 단 3차례만 볼을 건넸다. 평소처럼 손흥민과 이강인이 볼을 주고 받으며 요르단의 수비 뒷공간을 계속 노렸다면 어땠을까. 두 사람의 삐걱댄 호흡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클린스만은 지난 15일 대한축구협회가 소집한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아시안컵 경기력 저하에 대한 지적을 받자, 손흥민과 이강인의 몸싸움을 언급하며 "두 사람 때문에 경기력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대표팀의 '총사령관'이 자신이 아닌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심한 모습을 드러낸 것.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은 지난해 클린스만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할 때 "클린스만은 강한 개성으로 스타 선수들을 관리하고, 팀워크를 살리고, 동기부여를 하는 측면이 강점"이라며 "이게 바로 리더"라고 추어올렸다.

뮐러 위원장이 극찬했던 리더가 바로 이런 모습인가? 끝까지 '남탓'만 하고 자신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람은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 당장 히딩크 같은 사람을 데려오라는 게 아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뿐이다.

100억 원에 가까운 위약금 때문에 클린스만의 경질을 망설이는 것이라면, 지금은 호미로 막을 수 있으나 나중엔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클린스만을 데려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2/16/20240216001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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