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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6일 두번째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된다면 정치생명이 끝나는 상황에서 극적인 기사회생이었다.
이는 앞서 2020년 경기도지사 시절 같은 혐의로 1·2심 재판부가 벌금 300만원을 선고해 지사직을 내려놔야 하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무죄로 판결을 뒤집은 것과 닮은 꼴이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 판결을 내리는데 5년 전 판례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당시 무죄를 선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권순일 전 대법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판결을 전후해 성남시와 함께 대장동 개발사업을 하던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를 8차례나 만난 사실이 드러났고 퇴임 후에는 화천대유 고문으로 옮겨 수억원대의 보수를 받아 '대장동 50억 클럽' 멤버로 이름이 오르내린 인물이다.
이로 인해 훗날 '재판거래' 의혹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아 판례를 활용했다는 것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권순일이 이재명을 두번 구했다"는 비판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5년전 대법원 판례로 무죄 결론 내린 재판부…"이재명이 이재명 구했다"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이 대표의 '김문기 몰랐다' 발언을 처벌 할 수 없다고 봤다. 이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발언은 인식에 관한 것을 짧고 명확하게 말한 거라 교유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곧바로 인정할 정도의 여지가 없다"며 "행위에 관한 발언이 아니기 때문에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형사처벌 여부가 문제 되는 표현이 사실을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인지를 구별할 때, 어느 범주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표현인 경우 원칙적으로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대법원 2020년 7월 16일 선고 판결 등을 참조하라고 명시했다.
5년전 선행판례에 따라 이번 사건도 무죄라는 취지다. 다만 2020년 대법원 판례 역시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사건에 대한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후보자 토론회에 참여해 질문·답변을 하거나 주장·반론을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에 의해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하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표현의 자유" 괴이한 논리로 무죄
2018년 6월 경기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TV토론회에서 당시 바른미래당 김영환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길게 해명했는데, 요약하면 "김영환 후보께서는 저보고 '정신병원에 형님을 입원시키려 했다' 이런 주장을 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일 없습니다"라는 취지였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고 1·2심 재판부는 "빼도 박을 수도 없는 거짓말"라며 유죄를 인정,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될 경우 경기도지사직을 내놓아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2020년 7월 대법원은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에서 밝힌 무죄의 논리는 "선거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될 수 있다" "TV토론은 선거공보물과 같은 공식적인 공표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 등이었다.
결국 이 판결이 선행판례로 남아 이번 이 대표의 '선거법위반'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영향을 준 셈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7일 자신의 SNS에 "어제(26일) 이재명 대표 2심 재판이 무죄로 결정됐다. '제2의 권순일 대법관 파동'"이라며 "2020년 7월 권순일 전 대법관은 이 대표(당시 경기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적극적 거짓말이 아니면 허위사실이 아니다'라는 희대의 궤변으로 이 대표를 살려준 인물로, 이런 코미디 같은 재판을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개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권순일…돌연 파기환송으로 선회
2020년 판결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12명의 대법관은 7(파기환송)대 5(유죄)로 다수 의견인 파기환송으로 선고됐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박정화·민유숙·노정희·김상환·권순일·김재형 대법관이었다.
반면 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노태악 대법관 등 5명은 상고를 기각해야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 대표의 다른 사건 변호인이었던 김선수 대법관은 재판을 회피해 빠졌다.
결국 한명만 유죄 판결을 내렸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특히 권순일·김재형 대법관은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인물이었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낼 것으로 분석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권 대법관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특히 당시 권 대법관의 재판을 보좌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당초 이 대표 사건에 대해 유죄취지의 검토보고서를 냈다가 권 대법관의 의지를 쫓아 결론을 뒤집는 보고서를 만든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무죄' 판결에 반대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들은 "피고인은 형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에 관여하였음에도 이를 적극 부인함으로써 허위사실을 공포하였다고 판단되므로 다수의견의 논고와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집필 대법관인 박상옥 대법관은 "후보자 토론회에서의 허위사실 유포와 사실 왜곡은 국민 주권과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핵심 수단인 선거에서 선거의 공정을 침해하여 선거 제도의 본래적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밝혔다.
이어 "후보자 토론회 중 발언에 대해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면죄부를 준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후보자 토론회의 의의와 기능을 소멸시켜 토론회가 효율적이고 선진적인 선거운동으로 기능할 수 없게 만들고 오히려 토론회에서 적극적·구체적 발언을 한 후보자만이 법적 책임을 질 위험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대장동 사건에 연루된 이재명…권순일과 '재판거래' 의혹까지
이 때문에 권 전 대법관은 이 대표와 '재판거래' 의혹까지 받게 됐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 씨가 2019년 7월~2020년 8월 '권순일 대법관실'이라고 출입 명부에 기록하고 대법원을 8차례 방문했는데, 여기에 이 대표 사건이 대법원에 회부되기 일주일 전(2020년 6월 9일), 회부 다음 날(6월 16일) 파기환송 선고 다음 날(7월 17일)도 포함됐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후인 2020년 11월 김씨가 대주주로 있는 화천대유 고문으로 취업해 고문료로 총 1억 5000만원을 받다가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자 퇴사했다.
게다가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는 "김 씨가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을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부탁해 대법원에게 뒤집힐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고 검찰 진술에서 밝혔다.
검사가 '김 씨가 어떤 부탁을 했다는 것이냐'고 묻자 남 변호사는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에서 권 전 대법관에게 부탁해 2심을 뒤집었다고 했다"며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 했고, 권순일에게 부탁해서 뒤집었다고 했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변호사는 이후 조사에서 "김씨가 2018년부터 권 전 대법관 이야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는데, 2019년 이후부터 권 전 대법관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며 "판검사들하고 수도 없이 골프를 치며 100만원씩 용돈도 줬다고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한 인사는 "당시 이 대표의 선거법위반 판결에서 1명의 대법관이 판단을 달리했다면 6대 6 동수가 돼 원심 재판을 변경할 수 없어 유죄로 결론이 났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지금의 이 대표 무죄 판결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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