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정당 2위라도 “연정은 안 돼”, AfD와 선 긋는 독일 정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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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1위, 극우 정당인 AfD가 2위를 차지했다. 집권 여당이던 사민당은 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조기 총선의 핵심 주제는 이민정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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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일 독일 뒤셀도르프의 카니발 퍼레이드에서 메르츠 기민당 대표를 당나귀로 묘사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REUTERS
지난 2월23일 예정보다 7개월 앞당겨 독일의 조기 총선이 치러졌다. 우려대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2021년 선거보다 10.4%포인트 높은 20.8%를 얻은 AfD는 이번 총선에서 전체 2위로 부상했다. 특히 구동독 지역에서는 32%를 득표하며 이 지역에서 18.7%를 기록한 2위 기민당을 크게 앞섰다. AfD는 구서독 지역에서도 18% 지지율을 기록해, 이 당의 인기가 더 이상 구동독 지역에 한정된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직전 선거보다 4.4%포인트 높은 28.52%로 1위를 차지했다. 1위이긴 하지만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이번 성적은 2021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올라프 숄츠 총리의 사민당이 가장 많은 표를 잃었다. 사민당은 9.3%포인트 하락한 16.41% 득표율을 기록하며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구동독 지역에서는 2021년의 절반도 얻지 못했다. 역시 연정에 참여한 녹색당도 3.1%포인트 하락한 11.6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좌파당은 2021년보다 3.9%포인트 상승한 8.77%를 득표하며 5위에 올랐다.
사민당-녹색당-자민당의 ‘신호등 연정’이 깨지는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자민당은 7.1%포인트 하락한 4.33%의 득표율로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자민당 당대표 크리스티안 린드너는 총선 실패의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신호등 연정은 지난해 11월 숄츠 총리가 재무장관 린드너의 해임을 발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주요 원인은 예산안이었다. 숄츠 총리의 사민당과 녹색당은 경기부양책과 기후정책을 위해 정부의 부채한도를 늘리려 했지만 린드너는 여기에 반대해 예산안 협상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다른 두 당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인세를 감면하거나 기후 보호 목표를 후퇴시킬 것 등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린드너는 연정 파트너 사이의 신뢰보다는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호등 연정은 시작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여기에 자동차 기업으로 대표되는 독일 산업의 부진 또한 사회적 불안 요소였다. 독일은 2023년과 2024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연정이 깨진 것도 연정 파트너 사이의 경제정책 노선 차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조기 총선의 핵심 주제는 이민정책이었다. 특히 총선 한 달 전인 지난 1월, 바이에른주 아샤펜부르크에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성이 공원에 산책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을 흉기로 공격하며 독일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 사건으로 두 살배기 아이 한 명과, 아이들을 돕고 범인을 막으려던 41세 남성 한 명이 사망했다. 2월에도 뮌헨에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가 차량으로 군중을 향해 돌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기민당의 총리 후보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사건 직후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강력한 강제송환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샤펜부르크 사건의 범인은 강제 출국 대상자였다. 지난해 여름 졸링겐에서 흉기를 휘둘러 3명을 숨지게 한 범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민당의 메르츠는 자신이 총리가 되면 즉각 독일 국경 검문을 강화해 외국인의 불법 입국을 막겠다고 밝혔다. 메르츠와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선거를 앞둔 1월29일 ‘망명 및 이민정책 강화를 위한 5단계 계획’에 대한 결의안을 연방의회에 상정했다.
역효과 불러온 극우 정당과의 협력
상시적 국경 통제와 불법 이민자의 무조건적 추방, 강제 출국 대상자에 대한 체포 및 구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결의안은 결국 703명 연방의원 중 348명의 찬성(반대 345명, 기권 10명)을 얻어 통과되었다. 문제는 이 안이 AfD의 지지로 통과되었다는 점이다. 메르츠와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이미 AfD의 지지를 예상하고 이 안을 상정했다. 그동안 독일에서는 기존 정당이 극우 정당과 협력하거나 극우 정당의 협력을 받는 것을 터부로 여겼다. 이를 방화벽이라 부른다.
이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메르츠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이어졌다.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졌을 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실 정치에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마저 이례적으로 독일 연방의회 역사상 극우 정당의 표를 얻어 안건을 통과시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AfD의 대표 알리체 바이델은 계획안 통과 후 SNS를 통해 이는 독일에 역사적인 날이며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포스팅을 남겼다. 결국 결의안에 이어 1월31일 상정한 ‘불법 이민자 유입 제한을 위한 법안’은 기민당 내부 이탈 표가 발생하며 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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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체 바이델 AfD 대표. ©REUTERS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메르츠 총리 후보는 총선에서 1위를 달성했지만, 목표한 35%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메르츠는 선거 전 확실한 반이민자 노선과 실행력을 보여줘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무리한 안건 상정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해당 안건을 강력 비판하던 좌파당이 이 사건 이후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맵이 실시한 총선 관련 불안 요소 설문조사에서 ‘총선 이후 안정적인 정부가 구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항목이 가장 높은 동의(68%)를 얻었다. 응답자들은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위기에 대한 우려(65%)’를 두 번째로 많이 꼽았다. ‘트럼프와 푸틴이 주도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염려’도 65%를 기록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는 60%, 많은 이민자 유입에 대한 염려는 55% 동의를 얻었다. 이민자 문제보다는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AfD는 지지율 2위를 기록했지만, 이 당의 정부 참여에 대한 선호도는 득표율만큼 높지 않았다. 인프라테스트 디맵이 선거 직후 실시한 ‘연방정부 선호 정당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35%로 1위를, 사민당이 17%로 2위를 기록했다. AfD는 11%로 3위였다. 어느 정당이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연정 상대로 참여했으면 좋겠는지 묻는 항목에서도 사민당이 32%로 1위를 차지했고, AfD는 17%로 2위를 기록했다. 녹색당은 16%로 3위였다. 보수정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을 뽑은 응답자 중에서도 39%가 사민당과의 연정을 선호했으며, AfD와의 연정을 선호한 응답자는 9%에 불과했다.
선거 직후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은 연정 협상을 선언했다. 메르츠가 이끄는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선거전에서 보수정당의 면모를 보이는 데 주력했다. 이민자 제한과 국내 안보를 강조했고, 기업 및 일반 시민의 세금 부담 경감을 약속했다. 또한 기후 보호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AfD를 제외하면 기민당·기사당이 선택할 수 있는 연정 상대는 사실상 사민당밖에 없다. 따라서 타협은 불가피하다. 2005년 메르켈 전 총리가 처음 총리에 취임할 때도 기민당 대표로 강한 우파의 정책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 사민당과 연정이 시작된 다음에는 실용적인 타협의 모습을 보인 전례가 있다.
사민당 대표 라스 클링바일은 자신들이 정부에 참여할 경우 메르츠가 공약한 바처럼 사실상의 국경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법 이민자의 강제송환 같은 일부 정책에 대해선 사민당 또한 이민정책 강화를 약속했기 때문에 협상이 가능하리라 예상된다. 경제정책에서도 사민당은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사민당은 정부의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서민 노동자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듯하다. 메르츠는 정부의 부채한도를 늘리지 않을 것이라고 공약했지만 이는 사민당과 협상이 필요한 내용이며, 친기업 정책을 위해서도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예측이 나온다. 두 정당 모두 안정적인 정부 구성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빠른 협상의 진행을 예고했다.
3월2일에는 광역시·도 중 하나인 함부르크의 시의회 선거가 있었다. 사민당은 34.3% 득표율로 1위를, 기민당은 19.5%로 2위를 기록했다. 녹색당은 19.3%로 3위였다. 선거 결과 기존 연정을 구성하던 사민당과 녹색당이 정부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좌파당이 11.5%로 4위를, AfD는 7.4%로 5위를 기록했다. 일주일 전인 2월23일 치러진 총선에서 함부르크 지역의 사민당 득표율은 22.7%, 기민당과 AfD는 각각 20.7%와 10.9%였던 것과 차이가 난다.
〈차이트〉는 함부르크 시의회 선거의 결과는 사민당에 아직도 기회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시의회 선거에서 주거정책이나 교통정책처럼 현실적인 문제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사민당에 여전히 지지를 보냈다. 〈차이트〉 분석에 따르면 함부르크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는 여전히 사민당이나 녹색당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기민당은 계속해서 표를 잃는 중이다. 반면 평균수입이 낮고 외국인 숫자가 적은 지역일수록 AfD 지지율이 높았다.
극우들은 우리나 쟤네나 미국이나 눈치없는 건 똑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