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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으로 예상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당일 비상 사태에 대비해 경찰이 강경 대응 절차에 돌입했다. 8년 전 사용이 중단된 최루액의 일종인 '캡사이신' 등장 가능성을 예고하면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잉 진압으로 번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청은 지난 5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날 폭력 사태에 대비해 최루 스프레이를 충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도 지난 4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필요하다면 현장 지휘관의 판단 하에 캡사이신 사용을 허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캡사이신 사용 '카드'를 꺼내든 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려는 목적이다. 서부지법 난입 사태와 같은 일이 헌법재판소에서 또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7일 윤 대통령 구속취소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 대응에는 더욱 비상이 걸렸다. 탄핵 반대 시위자들의 집결세가 거세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 종로구 헌재 인근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석방된다는 소식을 듣고 대통령 관저가 있는 용산구 한남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물대포→캡사이신, 경찰의 시위 진압 변천사
과거에는 경찰이 '물대포'라 불리는 살수차를 통해 과격 집회에 대응해 왔다. 살수차에는 대당 4톤의 물이 들어간다. 살수차 위쪽에 설치된 긴 막대 모양의 붐대가 물을 뿜으면 굵고 곧은 물기둥이 땅으로 세차게 내리꽂힌다.
살수차는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기점으로 사용이 중단됐다. 고(故) 백남기 농민이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결국 숨졌다. 이후 살수차 사용은 중지됐고 2021년 경찰 보유 살수차 19대는 전량 폐차됐다.
캡사이신은 경찰이 도입한 새 집회 대응 도구였다. 2008년 촛불집회 충돌을 계기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경찰은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촛불집회나 2015년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 등에서 캡사이신을 활용해 왔다.
캡사이신은 후추와 고춧가루에서 추출한 식물성 물질로 물에 희석된 상태로 시위 현장에서 분무기 형태로 사용된다.
다만 캡사이신 사용은 8년 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당일 집회에서 개별 스프레이 장비가 활용됐다.
그 과정에서 헌재가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자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이 빚어져 총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2023년 민주노총 집회 현장에서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 분사기를 동원했지만 사용하진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살수차 방식은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최루 스프레이 장비만 갖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 캡사이신은 인체에 해가 없다? … "눈·피부 손상 일으켜"
캡사이신 분사액은 천연 고추추출 성분인 올레오레진 캡시컴과 알코올, 물을 희석해 만든다. 경찰은 이를 불법 시위자의 눈에 뿌려 시야를 차단한다.
스프레이형 분사기에는 약 2~3회를 분사할 수 있는 캡사이신 희석액을 넣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2023년 민주노총 집회 대응 훈련에서 캡사이신 희석액을 대량 구입하면서 "물에 희석한 캡사이신은 사람 얼굴에 뿌려도 문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캡사이신을 물에 희석했더라도 얼굴에 직접 분사하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캡사이신은 눈을 심하게 손상시키고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도 2018년 살수차로 캡사이신 등 최루액을 분사하는 혼합 살수 방식은 법적 근거가 없어서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을 내렸다.
◆ 전문가 "폭력 사태 대비는 필요 … 정당한 공권력 집행 수준 지켜야"
경찰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날 '캡사이신' 재등장 가능성을 열어두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잉 진압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부지법 사태와 같은 위험한 상황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면서도 정당한 공권력 집행의 수준을 넘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법 시위 대응을 위해 경찰 투입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부정해선 안 된다"며 "경찰은 집회 대응 과정에서 스프레이를 사용할 수 있다. 서부지법 사태와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국가적 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다만 김 교수는 "무조건적으로 캡사이신을 사용해선 안 되고 난입 시도가 있을 때 등으로만 사용을 한정해야 한다"며 "오랜 기간 사용이 중단된 캡사이신을 경찰이 무분별하게 분사한다면 과잉 진압 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캡사이신이 폭력 시위 진압을 위한 수단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의 캡사이신 사용 발표는 두 가지 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이 정도로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는 '선제적 경고 효과'와 오히려 집회 참여자들의 적대심과 반발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가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그러면서 "탄핵심판 선고 날 실제 캡사이신이 사용될 가능성은 물론 필요성 또한 적어 보인다"며 "경찰은 2017년 이후 8년간 캡사이신을 사용하지 않고도 집회·시위에 대응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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