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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이어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헌문란'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 아님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안 통과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국회 의결 방해와 관련해 핵심 증인들이 기존 입장과 다른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서다.
국헌문란은 헌법 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하거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내란죄에서의 폭동은 공공 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거나 국가 통치 체제를 전복하려는 집단적이고 조직적 폭력 행위로 해석된다.
당초 검찰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 대통령이 국회 봉쇄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이 정황이 국헌문란 목적을 입증할 근거가 될 것이라는 입장에서 윤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핵심 증인들이 검찰 공소장의 내용을 뒤엎는 내용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권한 행사는 내란죄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형법(87조)의 내란죄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그에 준하여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곽종근, '의원'이라더니 '인원'으로 말 바꿔…尹 지시 확대 해석 자인
비상계엄 때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6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 한 적은 없다. '인원'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곽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통화에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 했다"는 진술을 하면서 탄핵안에 불을 지폈던 핵심 장본인이다.
하지만 이날 곽 전 사령관은 증인 신문 초반에 "윤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 맞다"고 했다가 정형식 재판관의 거듭된 질문에 "'국회의원'은 듣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고 말을 바꿨다. 자신의 증언을 2시간도 안 돼 바꾼 것이다.
정 재판관은 곽 전 사령관에게 "증인 진술이 달라지니까 문제가 된다. 생각이나 해석을 빼고 오로지 들은 얘기만 말씀해보라"고 했다. 이어 정 재판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다는 말의 사실 관계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정 재판관은 먼저 "아직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고 했느냐"고 묻자 곽 전 사령관은 "맞습니다"고 했다. 이어 정 재판관이 "150명 얘기를 했느냐"고 묻자 "당시에는 기억이 없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이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 얘기를 해서 생각났다"고 했다.
정 재판관이 "다른 사람 얘기 다 제외하고 증인의 기억만 말해 달라. 기억에 150명 얘기는 당시에 들었냐"고 묻자 "나중에 기억났다"고 답하면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 재판관은 "'국회 안에 있는 사람들 데리고 들어오라'고 했느냐"고 묻자 곽 전 사령관은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 이렇게 기억한다"고 했다. 정 재판관이 "국회의원이란 말은 안 했느냐"고 하자 곽 전 사령관은 "의원이라는 말은 자수서에 안 썼다"고 답했다.
정 재판관이 재차 "'인원'이냐"고 묻자 곽 전 사령관은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고 했다"고 했다. "국회의원이라는 말은 안했느냐, 들은 기억이 있느냐"고 하자 곽 전 사령관은 "전화로 들은 표현은 '인원'"이라고 했다. 현장 상황을 모르는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현장에 투입된 인원을 철수시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곽 전 사령관은 "당시 707 특수임무단 인원은 국회 정문 앞에서 대치하는 상황으로 본관 건물 안쪽으로는 인원이 안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며 "그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고 (국회 본관) 안에 작전 요원들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요원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고 이해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멋대로 윤 대통령의 지시를 확대 해석했다고 자인한 셈이다.
이날 오전 증언대에 오른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대령)은 "곽 전 사령관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는 받지 않았다"면서 "(의원 등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없었다고 기억하고 (지시가) 있었다 한들 안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진우·여인형 사령관 모두 "尹 지시 없었다" 진술이 같은 상황은 직전 변론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4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 5차 변론에 증인으로 나선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도 정치인 체포나 국회 의결 방해와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 전 사령관은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해 봉쇄하고 윤 대통령에게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듣고 이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자신의 진술 조서와 공소장을 바탕으로 한 국회 측 질문에 "답변이 어렵다", "말씀드릴 수 없다"며 대부분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특히 "공소장에 나와 있는 내용은 제 (발언) 내용이 대부분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이 "계엄 당시 대통령, 국방 장관에게 누군가를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이 전 사령관은 "없다"고 했다. "(국회) 출동 시 대통령 등에게 의원들의 본관 출입을 막고 (계엄 해제) 의결을 못 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느냐"는 물음에도 "없다"고 답했다.
자신을 포함해 윤 대통령 등 계엄 관련 내란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의 공소장에 담긴 핵심 내용을 부인한 것이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도 정치인 체포 지시 등에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여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 장관에게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10여 명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행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여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아니라 김 전 장관에게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여 전 사령관은 "장관에게 지시받은 것이 있지만, 제가 부하들에게 이야기한 것과 부하들이 각각 지시·전파한 부분이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싹 다 잡아들이라" 홍장원 1차장 메모, 증거 훼손 정황 드러나
가장 큰 논란은 "윤 대통령이 전화로 싹 다 잡아들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비상계엄 당일 작성했다는 이른바 '체포 명단' 메모의 신빙성이다.
홍 전 차장은 계엄 선포 당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싹 다 잡아들여"라는 지시를 받은 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정치인 등 체포 대상자 명단을 듣고 수첩에 받아 적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홍 전 차장은 지난 4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 5차 변론에서 이 메모는 자기 보좌관이 옮겨 적은 것에 일부 내용을 자필로 추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재작성한 메모란 것이다.
문제의 홍 전 차장 메모엔 체포 대상 명단과 함께 '검거 요청(위치 추적)' '축차(逐次) 검거 후 방첩사 구금 시설에 감금 조사'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체포 대상자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등이 포함됐다.
홍 전 차장은 계엄 선포 당일인 작년 12월 3일 오후 11시 6분쯤 여 전 사령관과 통화한 직후 메모를 작성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앞서 그날 오후 10시 53분 윤 대통령과의 비화폰 통화에서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라는 말을 들은 뒤, 윤 대통령 지시를 확인하고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고 했다. 이렇게 연결된 통화에서 여 전 사령관이 "체포조 소재 파악이 안 된다"며 명단을 불러줘 수첩에 받아 적었다는 게 홍 전 차장 주장이다.
그런데 홍 전 차장이 검찰에 제출한 메모는 자필로 받아 적은 원본이 아닌 보좌관에게 옮겨 적게 한 메모였다. 홍 전 차장은 지난 4일 헌재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여 전 사령관이) 명단을 불러줬는데, 당시 국정원장 관사 앞 공터에서 주머니에 있던 수첩에 받아 적었다"며 "사무실에 와서 보니 (왼손잡이 글씨라) 내가 봐도 알아보기 어려워 보좌관을 불러 정서(正書)를 시켰다"고 했다.
그는 "보좌관 글씨와 흘려 쓴 내 글씨가 섞여 있다"고 했다. 메모에 적힌 체포 대상자 명단은 보좌관이 작성했고 그 아래에 적힌 '검거 요청' 같은 문구는 자기가 추가로 적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처음 받아 적은 메모는 구겨서 버렸다고 했다. 핵심 증거가 조작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형식 헌법재판관도 홍 전 차장 메모의 '검거 요청' 부분과 관련해 수차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여 전 사령관이 정치인 등을 검거할 권한이나 조직이 없는 국정원에 검거를 요청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보인다.
정 재판관은 "(검거 요청이 아닌) '검거 지원'이라고 적어놓는 게 맞지 않느냐"고 하자 홍 전 차장은 "다소 합리적이지 않게 적어놨던 부분을 인정한다"고 했다. 정 재판관은 "방첩사령관이 '위치 추적을 좀 도와주시오' 이렇게만 하면 되지 1·2조(체포 순서조)와 검거 뒤 방첩사 구금 시설 감금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굳이 왜 하느냐는 의문이 든다"고도 했다.
여 전 사령관 변호인단도 지난 6일 입장문을 내고 "당시 1·2차 순차 검거 계획은 없었고 여 전 사령관은 국정원이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런 요청을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방첩사에는 구금 시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홍 전 차장은 여 전 사령관이 '경찰과 국회 봉쇄를 하고 있는데'라고 언급했다고 하여 방첩사 요원이 국회에 나가 있다는 취지로 증언하였으나 방첩사 병력이 국회로 최초 출발한 시각은 12월 4일 0시 25분이고 평균 1시로 여 전 사령관이 2시간 후에 벌어질 일을 홍 전 차장에게 미리 말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법조계 "비상계엄 선포만으론 내란죄 성립 안된다"
검찰이 지난달 26일 윤 대통령을 구속 기소한 핵심적인 이유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다. 형법 제87조에 따르면 내란죄는 국가 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을 뜻한다.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해선 비상계엄 선포 행위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는지, 비상계엄 선포 행위를 폭동으로 볼 수 있는지가 입증돼야 한다.
검찰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 대통령이 국회 봉쇄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이 정황이 국헌문란 목적을 입증할 근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곽종근 전 사령관과 홍장원 전 1차장의 증언을 핵심 증거로 들고 윤 대통령이 무장한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해 국회를 봉쇄하면서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핵심 증인들의 진술이 바뀌면서 국회나 선관위 등에 군과 경찰이 투입된 것은 맞지만 이들이 실제 국가 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는지가 불명확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선포에 국헌문란의 목적은 없었고 단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횡포에 경고를 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에 군 병력을 보낸 것도 최소한의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는 입장이다. 야당의 권력 남용으로 헌법질서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이를 해결할 수단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대통령의 계엄권 발동은 헌법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헌법 77조는 "전시(戰時)·사변(事變)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계엄 발동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하위법인 계엄법은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비상계엄 선포 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야당의 입법과 예산 폭주로 행정과 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의 계엄 발동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적 행위라고 해서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점을 분명히 했다. 계엄의 요건과 행사에 관한 1차적 판단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몫이기 때문이다.
헌법학자인 이인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에서 진술한 특전사령관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은 조사 청문회가 아닌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한 발언으로 증인 선서 없이 발언한 것이기 때문에 100% 신뢰할 수 없다"며 "특히 계엄 시행의 실무 책임자인 특전사령관이 전날 야당 국회의원이 진행하는 유튜브에 출연해 계엄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을 보면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란죄의 폭동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을 가져야 하는데 '목적'은 막연한 의도가 아니라 '범죄행위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명확한 결과'를 말한다"면서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헌법에 따라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계엄군은 계엄 해제 요구가 의결되고 10분 만에 국회에서 퇴각했다. '헌법 질서 파괴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2/07/20250207000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