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행정부 출범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대체로 트럼프 2기 역시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운 가치외교와 달리 경제적 실리에 치중하는 대외정책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의 약화다. 특히나 패권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경제적·안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다차방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세력균형의 재편에 대비해 양자 및 다자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시즌 2를 가장 우려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대중 압박의 강도도 시즌 2에서 시즌 1보다 더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서진을 막느라 중국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제품에 6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시즌 2에서 바이든 행정부와 차별화가 가장 뚜렷한 분야는 경제안보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과 공급망을 단절하는 디커플링을 추구했으나,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의존도를 관리하는 디리스킹으로 선회했다.
또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받아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협상에서 중국과 타협을 추구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온건론을 타파하기 위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보조금 지급을 통해 동맹국과 유사입장국의 첨단기업을 미국에 유치하는 프렌드쇼어링 대신 관세 인상을 통해 해외에 있는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유도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의 보복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지 않다.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중국이 반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오늘의 세계경제'를 통해 "대중 관세 인상을 비롯한 대중 경제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더 강화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전략인 '투자, 연대, 경쟁'에서 '경쟁' 측면의 일방적 제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심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대중 견제정책은 지속 추진하며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는 과정에서 동맹국의 협조를 구하는 단계가 생략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러시아, 중국과의 지속한 갈등이 부담스럽게 여겨진다면 극적인 대화국면이 열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경우 트럼프 당선인이 '톱다운(정상간 대화)' 협상방식을 선호하는 만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담판이 진행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러·대중 외교는 동북아 정세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재편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하는 데 공들였다. 한·미·일은 2022년 6월 4년 9개월 만의 3국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2023년 8월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초청해 한·미·일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3국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정신', '캠프 데이비드 원칙' 그리고 3자 협의에 대한 공약 등을 채택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은 "한·미·일 협력은 우리 국민만을 위해 구축된 파트너십이 아닌, 인도-태평양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우리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신속히 협의한다. 이런 협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동조화하며 대응조치를 조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한·미·일은 연례적으로 정상, 외무장관, 국방장관 및 국가안보보좌관 협의를 갖기로 했으나,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이후 행보는 불투명한 상태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인은 트럼프 1기 시절부터 전통적인 우방에도 미국의 국익을 앞세워 왔다. 유럽연합(EU)과는 관세 문제로 통상 마찰을 빚었으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에 방위비 지출 확대를 압박하기도 했다.
북·중·러 구도가 지난해 6월 북·러 포괄적 전략동반자조약 체결로 와해하기 시작한 것도 한·미·일 협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이 북·러관계 강화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다. 이에 중·러협력도 이완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당선인이 푸틴 대통령과 담판을 통해 우크라이나전 휴전에 합의한다면 러시아 외교의 중심축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기울 것이다.
또한 북·미협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급등할 것이다.
이러한 북·중·러 구도의 약화는 한·미·일협력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주한 및 주일 미군 철수 △독자적 핵 개발 등 다양한 현안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면 한·미·일 삼자관계는 물론 한·미, 한·일, 미·일 양자관계도 긴장될 것이다.
때문에 트럼프 당선인의 주요 목적인 중국 견제와 경제적 이익 면에서 한·미동맹과 한·미·일협력이 주효하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우 치밀한 전략가라기보다는 단기적 이익을 중시하는 사업가적 특성을 보인다. 막연한 추상적 가치나 동맹의 중요성을 온정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협상의 논거와 지렛대를 확보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중국 견제에 집중한다는 기조인 만큼 오히려 한·미동맹과 한·미·일협력은 견고하게 가져갈 것"이라면서도 "다만 대통령의 의제가 되지 못하는 등 우선순위가 밀릴 수 있는 만큼 한·일이 머리를 맞대고 경제적·정치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먼저 언급한 미국 함정 유지·보수(MRO)와 기술협력, 미국산 원유 수입과 원자력발전 협력, 대기업들의 대미 직접투자 확대 등이 거론된다.
이에 트럼프 시대에는 한·일 모두 정부보다 민간이 앞장서 대미관계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치적 불안 탓도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도 이미 정부 인사보다는 기업인들을 위주로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이 힘을 합쳐 트럼프가 원하는 바를 채울 방안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특히 한·일이 미국에 공동투자를 하는 등 한·미·일이 함께했을 때 경제적 시너지가 크다는 걸 부각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미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한·일 기업인들을 주로 만나고 있다. 민간이 앞장서면 정부가 뒷받침하는 형태"라고 내다봤다.
대중관계 역시 안이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나라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동조해 대중 강경책을 모색할 경우 한·중관계는 또다시 상당한 난관과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균형적인 시각과 철저한 국익 관점 차원에서 대·중 관계를 설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중국은 대중 포위구축 차원에서 한·미·일 3국협력과 나토와의 연대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면서 역내 안정을 위해 배타적 다자주의가 아닌 포용적 다자주의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역시 매우 객관적으로 중국 정세를 바라보면서 시진핑 지도부의 대내·외정책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차원의 대중 전략구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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