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법부가 특정 이념과 정치 성향을 가진 '초법 판사'들의 영향력 아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법 조문을 자의 대로 해석해 전례가 없는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특정 집단의 이익 만을 쫓아 법관으로서의 사명감과 자존심마저 내던지고 있다. 법조계 원로들은 이런 행태들이 사법부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결국은 국민적 사법 불신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논란의 발단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오동운 처장과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이순형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에서 비롯됐다. 오 처장과 이 부장판사가 각각 진보·개혁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사법부 내 진보 성향 판사들이 결성한 학술 모임으로 출발했으나 활동 과정에서 정치적 편향성과 폐쇄적 운영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법원 내 사조직이라는 논란과 특정 이념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평가되며 사법부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2011년 우리법연구회가 소속 판사들의 판결과 정치적 발언 등으로 사실상 활동을 멈춘 시점에 설립됐다. 초대 회장과 간사를 각각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대전고법 부장판사던 이인석 YK대표변호사가 맡으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우리법연구회의 '후신(後身)'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동운 공수처장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논란…중립성 훼손 비판
오 처장이 이끄는 공수처가 지난달 31일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 받은 가운데 오 처장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특정 정치 성향에 치우친 인사가 조직의 수장이 될 경우 조직 전체 분위기는 물론 조직원들의 활동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처장의 공수처는 지난달 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내란 우두머리(수괴)와 직권남용 혐의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서부지법은 바로 다음 날 영장을 발부했다.
공수처법 제31조에 따르면 공수처 사건의 관할 법원은 서울중앙지법으로 명시돼 있지만 공수처는 자의적 판단으로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수처가 영장을 발부 받기 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고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판사를 찾아 이른바 '판사 쇼핑'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앞서 윤 대통령의 공범으로 지목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서울중앙지법에 내란 혐의로 기소된 상태로 관련 사건이 중앙지법에 접수됐음에도 공수처가 체포영장을 다른 법원에 청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판사 출신인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피의자는 체포된 뒤 구속, 기소 순서로 이어지는데 이 모든 절차는 같은 관할 법원에서 이뤄진다"며 "만일 김 전 장관의 재판과 윤 대통령의 재판이 각각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서부지법에서 따로 진행되면 이후 사건의 신속·효율적 심리를 위한 병합이 어렵게 될 수도 있는데 (공수처가)왜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 관계자는 "체포와 기소는 별개의 문제"라며 영장은 서부지법에 청구했지만 사건은 향후 중앙지법에서 처리할 가능성을 비췄다. 중앙지법이 아닌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통령 관저의 주소지를 기준으로 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공수처는 출범 이후 현재까지 총 7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알려졌는데 군사법원 관할인 문상호 정보사령관의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중앙지법에 영장을 청구해왔다.
◆오동운 공수처장, 법관 시절에도 진보 정당 후보자에 수백만원 후원
오동운 처장의 정치적 성향과 윤리적 책임, 중립 의무 위반에 대한 논란은 공수처장 후보자 시절에도 제기된 바 있다. 과거 판사 재직 당시 민주당계 정당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수백만원의 정치 후원금을 기부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 처장은 2004년 3월 29일 인천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며 이근식 당시 열린우리당 서울 송파병 선거구 국회의원 후보에게 정치 후원금 300만원을 기부했다. 특히 후원금 기부 시 자신의 직업을 '법관'이 아닌 '자영업'으로 기재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키웠다.
법원조직법 제49조에 따르면 법관은 재직 중 정치 운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007년 법관이 정치 후원금을 기부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판사들에게 정치 후원금 기부를 삼가라는 권고를 한 바 있다.
공수처장 후보자로 지명된 당시 오 처장은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는 분에게 정치 후원금을 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직업을 법관이 아닌 자영업으로 기재한 이유에 대해서는 "기재 사실과 경위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공수처, '우리법연구회 출신' 부장판사에 영장 청구…'판사쇼핑' 비판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의 영장 발부 가능성을 고려해 중앙지법이 아닌 다른 법원에 영장을 청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다.
공수처는 앞선 해명에도 불구하고 법원장과 영장전담 판사가 모두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배경에 대해 발부 가능성이 높은 법원을 찾기 위한 '판사쇼핑'이라는 의혹에 직면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지난달 11일 검찰이 청구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남 부장판사는 김 전 장관의 내란 중요 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며 영장을 발부했다.
남 부장판사는 조지호 경찰청장의 내란 및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 경찰공무원의 범죄로 간주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조 청장과 공모한 김 전 장관의 내란 혐의 역시 경찰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검찰의 수사권을 인정했다. 다만 경찰 범죄가 아닌 경우에 직권남용과 연관지어 내란죄를 수사한다는 논리에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도 공수처가 선택적으로 법원을 지정해 영장을 청구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지냈던 이헌 법무법인 홍익 변호사는 "대통령 관저의 관할 법원인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것은 영장 발부를 위한 일종의 편법이라고 볼 수 있다"며 "종전에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었던 중앙지법으로 청구할 경우 영장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형소법을 비롯한 모든 법률은 판사가 한 줄 써넣는다고 효력이 정지될 수 없다"며 "법률적 효력이 정지되는 유일한 경우는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사 출신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2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역사적 사건인데 수사권한 유무도 다툼이 있는 공수처가 일반적으로 중대한 사건은 동일 법원에서 판단 받는 게 통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법연구회 출신 영장담당판사를 찾아 영장을 청구해 발부 받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법 정치화' 논란…사법부 독립성 위기감 고조
서울서부지법에는 민주당이 추천한 헌법재판관들도 소속돼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달 31일 정계선·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후보 2명 중 1명과 국민의힘 추천 후보 1명이 임명된 것이다.
민주당은 당시 헌법재판관으로 정계선·마은혁 후보를 추천했다. 서부지법원장이던 정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회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한 젠더법연구회, 헌법연구회, 외국사법제도연구회 등 다수의 진보 성향 재판 연구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정 재판관은 2018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7천만 원을 선고한 이력도 있다.
임명이 보류된 마 후보 역시 서부지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며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마 후보는 판사로 임용 되기 전부터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론 교육과 선전 활동을 주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인민노련은 남한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남북 통일(공산화)을 이루려는 목표를 가진 과격 좌익혁명단체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운동을 전개했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6년 동안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등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법조회 하나회'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김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4명 중 7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5명이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사법부 정치화를 주도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김 전 대법원장은 인사 과정에서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발언한 녹취록이 공개되며 삼권분립 훼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 법조계 원로는 "정치 편향성을 가진 인물들이 득세하면서 사법부는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나 특정 정치 집단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며 "사법부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수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법관들이 독립성과 중립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1/03/20250103002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