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이 지난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영장과 함께 발부한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에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군사상 및 공무상 비밀 장소에서의 압수·수색을 책임자 승낙 하에 진행하도록 규정한 필수 조항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신변의 정확한 소재를 확인하고자는 이유로 법원에 수색영장을 함께 청구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결정이 법률을 배제하고 초법적 해석을 더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부가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신뢰가 흔들리고 사법 체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비판이다.
◆'형소법 적용 배제' 초법적 영장해석 논란 … "권한 없는 효력정지"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31일 공수처의 요청에 따라 윤 대통령 체포영장과 관저 수색영장을 발부하며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명시했다.
형사소송법 110조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 압수수색을 할 수 없고, 111조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소지 또는 보관하는 물건에 관해 직무상 비밀에 관한 것임을 신고한 때에는 소속공무소의 승낙 없이 압수수색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영장이라는 지적과 함께 사법권의 자의적 행사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검사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부지법 영장 담당 판사는 '해당 영장의 경우 형소법 제110조, 제111조 적용의 예외로 한다'고 써넣었고 공수처는 이를 근거로 체포 및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불법이고 무효"라며 "형소법을 비롯한 모든 법률은 판사가 한 줄 써넣는다고 효력이 정지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법률 효력이 정지되는 유일한 경우는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을 받아야 한다. 서부지법 영장 담당 판사가 내란죄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이어 아무런 권한 없이 형소법 일부 규정의 효력을 정지하는 문구까지 써넣은 것은 위법하고 난생처음 보는 희한한 일"이라고 질타했다.
윤 대통령의 대리인인 석동현 변호사 역시 "판사의 권한을 넘어서 형사소송법 특정 조항을 적용하지 말라고 적은 것은 법률 무효의 체포영장이 명백하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영장의 집행은 적법한 공무 집행이 아니므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되는지 여부를 거론할 사항도 아니다"고 했다.
그는 "형소법 110·111조는 군사상 비밀과 공무상 비밀의 보조를 위한 강행규정"이라며 "법관이라 하더라도 현행 법률의 적용을 임의로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공수처의 '판사 쇼핑' 논란
이 부장판사의 영장 발부 논란과 함께 공수처의 '판사 쇼핑' 의혹 또한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공수처는 법률상 사건 관할 법원이 서울중앙지법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서부지법에 윤 대통령에 대한 영장을 청구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영장발부 가능성을 염두해 관할 법원이 아닌 다른 법원에 영장을 청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법 제31조는 수사처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는 고위공직자범죄등 사건의 제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관할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범죄지와 증거의 소재지, 피고인의 특별한 사정 등을 고려해 형소법에 따른 관할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
공수처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7차례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사법원 관할인 문상호 정보사령관의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을 청구했다.
공수처 측은 대통령 관저가 서부지법 관할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례적인 결정임에는 분명하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법의 법원장과 영장을 발부한 이 부장판사가 모두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점에서 공수처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특정 법원에 영장을 선택적으로 청구했다는 비판이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지내기도 했던 이헌 법무법인 홍익 변호사는 "공수처가 너무 영장기각이 많이 돼서 그 부분을 고려했을 것"이라며 "중앙지법에서 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안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 관저의 관할인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것이니 영장 발부를 위한 약간의 편법이라고 할 수는 있다"면서도 "법을 위반한 정도는 아니지만 영장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수처가 실적 부족으로 인한 존폐론까지 나오는 상황이기에 어디에 영장을 청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심을 했을 것"이라며 "영장이 기각되면 국가·국제적으로도 망신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 그런 점을 고려한 것 같다"고 했다.
◆윤 대통령측,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직무배제 요청
윤 대통령 측은 즉각 반발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대법원에 판사 징계와 직무배제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을 대리하는 윤갑근 변호사는 지난 1일 "서부지법 영장 담당 판사가 영장에 형소법 110조·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기재했다고 하는데, 형소법 어디에도 판사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반발했다.
윤 변호사는 형소법 110·111조를 적용 예외에 대해 "불법 무효로서 사법의 신뢰를 침해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며 "대법원은 신속히 진상조사를 해 위 내용이 사실이라면 즉각 영장 담당 판사를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발부된 영장을 대통령실이 집행하지 않을 경우 법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자진 출석해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영장 집행의 위법성 여부는 이후 재판에서 다툴 수 있지만, 발부된 영장에 불응하는 것은 국민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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