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여객기 참사 규모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는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과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시설)에 대한 적법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구조물이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콘크리트 둔덕이 국내외 규정에 명시된 이른바 '부러지기 쉬움(Frangibility)'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고 밝혔다. 로컬라이저가 종단안전구역 바깥에 설치돼 있어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국토부의 논리다. 로컬라이저는 항공기가 착륙할 때 활주로 방향을 정확하게 잡도록 도와주는 장치(안테나)다.
그러나 국토부는 하루 뒤인 31일 돌연 전날 발표한 보도내용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공항 설계를 맡았던 엔지니어링사의 고위 관계자도 "국내외 기준과 규정에 어긋난 게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동체 착륙을 하던 제주항공 여객기는 활주로 끝 부분에서 264m 떨어진 콘크리트 둔덕과 강하게 부딪혀 폭발하며 산산조각 났다. 높이가 2m로 성인 키보다 큰 이 둔덕의 겉모습은 흙더미지만 속에는 단단한 콘크리트가 박혀 있었다. 그 위로는 로컬라이저 안테나가 설치돼 있었다. 모두 합쳐 4m 정도 높이다.
실제로 공항시설법에 따른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국토교통부 예규) 23조 3항은 '공항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이 당사국으로 따르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설계 매뉴얼에도 '부러지기 쉬움(Frangibility) 원칙'이 있다. 충돌 사고 시 항공기와 탑승객이 받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원칙이다. 활주로와 인접 안전지역에 설치되는 물체나 시설은 쉽게 부서지거나 변형될 수 있도록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무안공항 내 콘크리트 둔덕 설치가 규정 위반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비행기 충돌 사고를 대비해 부러지기 쉬운 재질의 둔덕이나 흙더미로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콘크리트 둔덕의 설치 조항 위반 여부에 대해 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활주로 끝단과 담벼락까지는 수평이어야 한다"며 "무안공항은 지반이 낮다 보니 콘크리트 구조물이 올라오게 된 것이고 좀 더 부드러운 구조물로 만들었다면 항공기 속도가 서서히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너무 약한 재질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입장도 제기됐다. 정윤식 가톨릭 관동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안테나를 세우려면 튼튼한 지반이 필수적이라 견고한 받침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바람에 흔들리면 전파의 각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토부가 로컬라이저 설치는 문제 없다고 했다가 개선책을 찾아보겠다고 입장을 바꿨다"며 "이는 잘못을 인정한 셈이고 개선하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정 교수는 "앞으로 용역 전문가 등의 이야기를 충분히 반영해 법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 전문가들도 로컬라이저 구조물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항공 사고 조사 전문가인 데이비드 수시는 앞서 현지시간 29일 미국 CNN 방송에 "가장 큰 의문은 콘크리트로 된 조명시설(lighting facility)이 왜 활주로에 있었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벗어나 미끄러지더라도 이런 종류의 장벽이 활주로 근처에 있어선 안 되고 (무안 공항이)국제공항 설계 기준을 충족하는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항공 전문가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도 현지시간 29일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이) 거기 있는 건 범죄에 가까운 일"이라며 "활주로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그런 단단한 물체가 있다는 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31일 경찰은 무안 여객기 참사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둔덕형의 로컬라이저 시설물 설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이 수사 핵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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