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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참사에 정부의 책임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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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히스토리] 기형아 수만명 출산 비극 막은 '美 20세기 최고 공무원'

취재=박건형 기자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입력 2015.09.06. 07:10

제약사 압박 뚫고 '입덧막는 藥' 부작용 알려… 101세로 타계한 켈시 박사

임신한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입덧이다. 냉장고 문을 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기 일쑤다. 물조차 삼키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입덧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막연히 새로운 생명이 몸속에서 자라면서 생기는 거부반응이나 몸속 호르몬 균형이 깨진 영향으로 추측될 뿐이다.

1962년 존 F 케네디(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수많은 아이들을 탈리도마이드의 비극에서 구해낸 프랜시스 켈시 박사를 백악관으로 초청, 공로를 치하하고 있다.

1962년 존 F 케네디(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수많은 아이들을 탈리도마이드의 비극에서 구해낸 프랜시스 켈시 박사를 백악관으로 초청, 공로를 치하하고 있다.

입덧을 줄이거나 막아주는 약물은 없을까. 반세기 전 실제로 이런 약물이 판매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약물은 엄청난 비극(悲劇)의 씨앗이었다. 1953년 옛 서독의 제약사 그뤼넨탈은 ‘케바돈’이라는 약품을 개발했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라는 화학물질을 주성분으로 한 케바돈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 임신한 동물에 투여해도 새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탁월한 수면제였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임산부의 입덧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1957년 시장에 출시된 케바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 의학계에서 탈리도마이드가 팔·다리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형아 출산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케바돈은 모두 회수됐지만, 이미 약을 복용한 임산부 중 일부는 팔·다리가 없거나 눈·귀가 변형된 기형아를 출산한 뒤였다. 유럽에서만 무려 1만2000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유명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토니 메렌데즈의 4살 때 모습. 메렌데즈는 어머니가 복용한 진정제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두 팔이 없다(왼쪽). 토니 메렌데즈의 현재 모습(오른쪽).

탈리도마이드는 당시 기준으로는 충분한 임상시험을 거쳤다. 동물시험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모든 약물이 동물과 사람에게 거의 비슷한 영향을 미친다고 맹신(盲信)했다. 뒤늦게 밝혀진 일이지만,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했을 때 사람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일부 토끼 종류뿐이었다. 개, 고양이, 쥐, 햄스터, 닭 등 임상시험에 사용되던 대부분의 동물은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이 없었다. 탈리도마이드의 비극은 임상시험에 대한 과학계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세계 각국은 ‘동물시험=인체시험’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최대한 여러 단계를 거쳐 안전성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의약품 허가 절차를 변경했다. 그 결과 약효가 아무리 뛰어나도 명백한 부작용이 있다면 약을 승인하지 않는 원칙이 자리 잡았다.

탈리도마이드의 비극은 한 명의 영웅을 남겼다. 지난 7일 101세로 세상을 떠난 프랜시스 올덤 켈시 박사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켈시 박사는 1960년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입사했다. 그에게 주어진 첫 임무가 케바돈 승인 신청서 처리였다. 이미 유럽에서 널리 판매되는 약이었지만, 켈시 박사는 약품의 독성과 효과 등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다며 추가 자료를 요구했다. 제약사가 로비를 거듭하며 압박했지만, 켈시 박사는 굴하지 않았다. 결국 탈리도마이드의 유해성이 밝혀지면서 수많은 미국인이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켈시 박사가 자신이 배운 과학적 지식 대신, ‘다른 나라에서 이미 문제없이 팔리는 약’이라는 안이한 시각으로 심사했다면 탈리도마이드의 비극은 훨씬 더 참혹할 수도 있었다. 과학이 만든 비극을 과학으로 막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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