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착륙 중 추락한 제주항공 사고 여객기는 과거 라이언에어가 최초로 출고해 운항하다가 2017년 제주항공으로 송출된 기령 15년의 보잉 737-800로 밝혀졌다. 이번 사고는 이전부터 해당 기체에 대한 엔진 결함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점이 드러나면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9일 오전 9시 3분께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출발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중이던 항공기가 랜딩 기어를 내리지 못해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해 울타리 외벽을 들이받았다. 항공기는 충돌로 반파됐고 이어 화재도 발생했다.
항공기에는 한국인 승객 173명, 태국인 승객 2명, 승무원 6명 등 총 181명이 탑승했으며, 이날 오후 3시18분 기준으로 현재까지 124명이 사망하고, 2명이 구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엔진 꺼짐 경험했다" … 2022년에는 엔진 고장 은폐 의혹까지
사고 여객기인 제주항공 JJA2216(71C088, HL8088)편은 사고 이틀 전에도 시동 꺼짐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7일 오전 1시30분 방콕에서 무한공항으로 향하는 사고 여객기를 이용했던 한 승액은 2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틀 전) 당시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시동이 몇차례 꺼지는 현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동이 몇차례 꺼져 불안해 승무원에게 이야기했는데, 별문제 없다는 반응이었다"며 "비행기는 이후 공항 문제로 1시간 지연된 뒤 출발했다"고 덧붙였다.
사고 항공기는 2022년 11월20일에도 일본 간사이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중 엔진 고장으로 회항한 전력이 있다.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조류 충돌로 인한 긴급 회항이었다고 보도했으나, 2023년 4월9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제주항공 직원으로 추정되는 작성자가 엔진 고장을 조류 충돌로 은폐했다는 글을 게시해 논란이 일었다.
게시글에서 작성자는 "엔진 후방 일부가 떨어져나가 엔진 자체의 심각한 고장이었지만 서울 사무실에 있던 운항본부장이 '버드 스크라이크로 엔진이 고장났다'고 허위처리와 은폐를 지시했다"며 "국토부에도 허위 보고서가 제출됐으며 언론 보도 역시 버드 스크라이크로 났다"고 말했다.
이어 "비공식조사 결과 비행 중 엔진 부품의 이탈로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다는 결론이 났다"면서도 "엔진 자체 고장으로 보고하면 비용절감에 차질이 생기고, 국토부 집중 조사와 안전지수 점수가 깍여 운수권 배분에 불이익이 발행한다"고 덧붙였다.
항공안전법 제91조에 따르면 항공기사고, 항공기준사고 또는 의무보고 대상 항공안전장애가 발생했을시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을 경우, 해당항공사는 최대 운항증명을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 운항정지를 당할 수 있다. 아울러 항공·철도사고조사법(제35조)에 따라 허위보고를 하거나 정당한 사유없이 자료의 제출을 거부 또는 방해한 자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랜딩기어 미작동' … 사고 원인 두고 해석 분분
항공기 활주로 이탈사고의 사고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랜딩기어가 내려가지 않은 원인으로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가 지목되고 있지만 랜딩기어 외에도 다른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점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항공기는 무안공항 1번 활주로에 접근해 첫 번째 착륙을 시도했으나 정상 착륙이 불가능해 복행(Go Around)을 선택한 후 다시 착륙을 시도했다.
결국 해당 항공기는 랜딩기어가 모두 작동하지 않아 동체 착륙을 시도했고, 활주로 끝단까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채 구조물과 충돌해 충격으로 동체가 크게 파손되며 화재로 이어졌다.
목격자들은 착륙 직전 항공기 오른쪽 날개 엔진 위에서 불꽃이 튀었고, 새 떼가 주변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사고 원인이 조류 충돌로 인한 기체 손상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새 떼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유압장치에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도 사고 수습 초기 발표에서 "관제탑에서 제주항공 사고 여객기에 착륙 직전 '조류 충돌' 주의를 줬다"며 "조류 충돌 경고 약 1분 후 조종사가 조난신호인 '메이데이'를 요청했고, 이후 약 5분 만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버드스트라이크는 매일같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랜딩 기어가 내려가지 않고 동체 창륙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두고 기체 결함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정비가 제대로 되어있고 기체가 문제가 없다면 버드스트라이크라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버드스트라이크가 하루 이틀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있는 데 문제가 됐다면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기체 결함의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버드스트라이크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휘영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버드스트라이크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큰 새가 들어갔거나 몇 마리의 새들이 동시에 들어가 엔진에 중대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엔진에 문제가 생겨 랜딩 기어를 피고 접을 수 있는 유압 장치 기능에 영향을 미쳤다면 조작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사고 원인은) 하루아침에 밝혀질 부분이 아니라 적게는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며 "단지 지금은 보여지는 부분에 의해서 추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잉 737-800, 반복되는 사고와 논란
보잉 737은 1967년 첫 생산된 중·단거리 전용 항공기로, 이번 사고 기종인 737-800은 1997년 출시 이후 전 세계에서 약 5000대 이상이 판매됐다. 이는 전체 737 모델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보편적인 기종이지만, 사고 사례도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보잉 737-800은 기체 노후화와 유지 보수 문제로 사고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번 사고 기종인 737-800은 2022년 3월 21일 쿤밍을 출발해 광저우로 가던 도중 광시좡족자치구 우저우시 텅현의 한 야산에 추락했던 중국 동방항공 MU5735 항공기 사고의 기종과 동일하다. 8900m 상공에서부터 추락을 시작한 기체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광시좡족자치구 우저우시 지면에 충돌, 탑승객 123명과 승무원 9명 등 132명이 전원 사망했다. 항공기의 추락 원인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이후 동방항공은 B737-800의 운항을 잠정 중단했다.
올해 4월에는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가 이륙 도중 엔진 덮개가 떨어져 회항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현지시간 7일 오전 미 휴스턴행 여객기가 콜로라도주 덴버공항 이륙 도중 엔진 덮개가 분리된 뒤 날개 플랩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이륙 후 25분 만에 회항했다.
앞선 3월에는 텍사스 포트로더데일 공항을 이륙한 사우스웨스트항공 소속 737-800 여객기가 엔진 문제로 회항하기도 했다.
올해 5월에는 튀르키예의 지중해 연안 도시 알라니아 인근의 가지파샤 공항에서는 착륙하던 보잉 737-800 여객기의 바퀴 하나가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독일 쾰른에서 출발한 코렌돈 항공 소속의 이 항공기에는 승객과 승무원 190명이 타고 있었으며, 전원이 안전하게 항공기에서 빠져나왔다.
소방청은 이날 오후 3시 18분 기준으로 무안군 항공기 사고의 사망자가 남성 54명, 여성 57명, 신원 미확인 13명이라고 발표했다. 사망자와 생존자를 제외한 나머지 55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소방 당국은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시신 훼손과 동체 심각한 손상 등으로 인해 신원 확인 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당국은 동체 파손 정도와 현장 상황을 감안했을 때, 실종자 전원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고 항공기와 동일 기종 101기 운항 … '기령 15년 이상'은 47기
사고 여객기 기종인 737-800은 6시간 이하의 단거리 노선에 주로 이용되면서 국내에서 저비용항공사(LCC)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해당 기종을 쓰는 항공사는 제주항공(39), 티웨이항공(27대), 진에어(19대), 이스타항공(10대), 대한항공(2대) 등이다.
항공기술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9일 기준 국내 항공사들은 총 101대의 737-800 기종을 운용 중이다. 이 가운데 사고 기체와 동일하거나 더 오래된 기령 15년 이상의 항공기는 총 47대로 집계됐다.
국내에서 운용되는 737-800기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항공기는 기령이 25년이다. 1999년 생산된 항공기는 에어인천이 임차해 운용하고 있지만 등록 좌석은 5석으로 여객기로 사용되지는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운용되는 737-800 기종 중 가장 오래된 항공기는 기령 25년으로, 1999년 생산된 해당 항공기는 에어인천이 임차해 운용하고 있다. 다만, 이 항공기는 등록 좌석 수가 5석에 불과해 여객기로 사용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기령 24년 항공기도 5대가 운용 중이다. 이들 항공기는 2000년 생산된 기체로, 에어인천(2대)과 진에어(3대)가 각각 구매 또는 임차해 사용 중이다. 에어인천에서 운용하는 2대는 여객기로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진에어에서 운용하는 3대는 각각 147석과 189석의 등록 좌석을 보유해 여객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항공기의 사용 연수를 기준으로 기령 20년을 관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는 기령 20년을 초과한 항공기에서 정비 문제로 인해 운항 지연이나 결항 사례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항공업계는 기령이 30년까지 도달하더라도 안전성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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