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을 '내란 공범'이라 표현한 현수막은 허용하고, '이재명은 안 된다' 현수막은 게시 불가 판정을 내렸다가 다시 허용한다고 기존 결정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숱한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선관위가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 23일 노태악 선관위원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이재명은 안 된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허용하기로 했다. 선관위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부분이 단순한 정치 구호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선관위는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수영에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에 대해 게시 불가 판정을 내렸다. 조국혁신당이 같은 곳에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 공범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게시한 것은 허가해 놓고 정반대의 결정을 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선관위의 '이중잣대'를 지적하며 "편파적 결정"이라고 규탄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선관위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위해서 사전 선거운동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선관위가 '이재명은 안 된다' 현수막을 불허한 이유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선관위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을 전제하고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로 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현시점에서 '이재명은 안 된다' 현수막을 게시하는 것은 이 대표를 낙선하려는 목적의 사전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게 선관위의 기존 입장이었다. 그러나 선관위는 입장을 번복하면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에 따른 궐위(闕位) 선거를 전제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어 신중히 검토했다"고 밝혔다. 기존 불허 결정이 조기 대선을 전제했던 것임을 인정한 셈이다.
선관위는 거듭 편파성 논란을 일으켜왔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선관위는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현수막 내용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내로남불', '위선'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도 특정 정당을 연상시킨다고 금지했는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을 비판할 때 쓰이던 단어들이다. 당시 선관위는 지금의 국민의힘을 겨냥한 정치적 구호인 '친일 청산', '적폐 청산' 등의 문구는 허가했다.
2022년 대선 사전 투표 당시에는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소쿠리나 쇼핑백 등에 보관해 부실 관리 사태가 일어났다. 선관위의 친인척 특혜 채용 등 대규모 채용 부정 논란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부정 선거 의혹도 다시 주목받는다. 그간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개표 조작, 투표함 바꿔치기 등 다양한 음모론을 제기하며 부정 선거 의혹에 불을 지펴왔다. 부정 선거 의혹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내세운 명분 중 하나였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한 김두관 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전자개표기의 부정확성을 믿을 수 없다며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현수막 논란에 대해 "이러니까 선관위가 부정 선거 의심을 받는다"고 일갈했다.
선관위는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처벌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하려 했으나 논란이 되자 보류하기로 했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선관위의 입법 추진에 "방귀 낀 놈이 먼저 성낸다"며 "법 개정을 주장하기 전에 선거 관리의 신뢰를 잃은 것에 대한 자성이 먼저"라고 꼬집었다.
서지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24일 논평을 통해 "소쿠리·비닐봉지 투표, 채용 비리, 감사 거부 등 선관위는 그간 누적되어 온 불신을 해소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며 "엄중한 시국이다. 선관위는 더 이상의 불신을 자초하지 말고, 국민 신뢰 회복을 위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12/24/20241224002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