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은 지속가능성이 매우 취약하다.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면, 북한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지 않으면 북한 지역은 궁극적으로 주변국에 흡수돼 우리 민족의 강토에서 떨어져 나간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자유총연맹과 국민대학교가 '북한이 주창하는 남북 두 국가론 극복 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MOU 체결 기념 학술대회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것 인정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원장은 "김정은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는 주장을 폈다. 김정은에게 대한민국이란 존재는 철저한 적대국이기에 언제든지 핵무기로 치고 궤멸시킬 수 있는 합법성을 갖게 됐다고 주장한다"며 "나아가 전쟁 발생 시 남한을 점령·평정해 북한의 영토에 편입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도 갑자기 '통일하지 맙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자 이를 추종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도발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김 원장은 과거 독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독은 1949년 사회주의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장차 전 독일을 사회주의로 통일한다는 목표를 갖고 출범했지만, 수백만 명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탈출하고 동서독 간 국력 격차가 커짐으로써 '사회주의 통일'이 실현될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동독은 1961년 베를린 장벽 구축 이후 두 국가 관계, 나아가 두 민족론을 주장하며 서독에 국제법적인 국가 승인을 요구했다. 즉, 동독이 통일을 거부한 것이다. 1972년 12월 동서독이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기본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서독은 여전히 동독에 대한 국제법적 승인을 거부했고, 동서독 관계는 외국이 아닌 하나의 민족으로서 특수 관계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동독의 '두 민족 두 국가론' 세뇌 공작은 상당히 성공하는 듯 보였다. 동독 사회과학원의 여론조사 결과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까지 동독 주민 3분의 2 정도가 '동서독은 동족이 아니며 통일이 가능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서독에서도 동서독 두 국가 체제의 현실을 인정하자는 유화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동독의 민족 분리 정책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한 달 만에 동독 주민들이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맥없이 무너졌다. 이후 독일은 10개월 만에 통일했다.
김 원장은 "독일 민족 개념 형성은 나폴레옹 전쟁 전후부터 200여 년밖에 안 됐지만 동서독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신은 정권의 선전·선동으로 제거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서독의 동독 정책 또한 독일 민족의 분리와 두 국가 체제를 저지하는 방파제가 됐다. 서독은 정권 수립 때부터 일관되게 독일 민족의 단일성 유지와 자결권 행사에 의한 통일을 강조했다. 서독은 동독에 대한 국제법적 승인을 거부했고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론을 견지했으며 동독 주민에 대해 독일 국적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서독 기본 조약 체결 후 동독은 서독에 대해 기본법의 통일조항 삭제, 외교 관계 수립과 대사관 개설, 동독 주민에 대한 국적 부여 중단을 요구했으나 서독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서독은 동독을 국제법상 국가로 승인하라는 소련의 압박, 동서독 유엔 동시 가입, 헬싱키 프로세스에 의한 유럽 현상 유지 레짐 성립 등에도 불구하고 동독에 대한 국가 승인을 끝까지 거부해 통일의 근거를 보존했다. 과거 동서독에서 있었던 일이 지금 한반도에서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또 "북한이 민족 분리와 두 개 국가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우리마저 통일을 주장하지 않으면 국제사회는 한민족은 통일할 의지가 없다고 오해하며 두 국가 현실을 고착시킬 것"이라며 "북한 지역은 이웃 나라의 땅이 될 것이며, 이것이 한민족의 운명을 얼마나 어렵게 할 것인가는 불문가지다. 우리가 주변국에 한반도 통일 미래를 인정하라고 하는 것은 북한 지역에 대한 우리의 연고권을 인정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일하지 말자는 것은 우리가 영원히 안보 불안 속에 살자는 것과 같다. 통일을 이룩할 때만 완전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 평화를 위해 두 국가 체제의 공존을 추구하자는 주장은 궤변이다. 북한은 평화 공존할 생각이 없다"며 "통일은 국민 경제 규모의 확대, 새로운 투자 기회, 대륙과 해양의 허브, 분단 비용 제거 등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어 30년간 매년 10% 가까운 경제 성장을 할 것이며 세계 1등 경제를 만들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통일 비용에 대한 걱정이 과도하다. 통일 비용은 분단 비용에 비해 과도하게 많지 않을 것이다. 통일로 인한 경제성장은 통일 비용을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광규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의 통일 방안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마지막에는 '남북 자유 총선거'다. 1948년에 유엔이 '공산주의 국가를 원하면 공산주의 국가를, 자유주의 국가를 원하면 자유주의 국가 만들라'며 이런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과 소련의 거부로 하지 못했지만, 북한이 지금 이를 하자고 한다면 충분히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자유주의니까 대통령제 하게 되면 대통령 후보가 여러 명 나올 것이고, 의원 내각제를 하더라도 다수의 정당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최고 지도자가 한 명이고 당도 노동당 하나이므로 우리가 의원 내각제를 하든 대통령제를 하든 간에 자유선거를 통해서도 충분히 합법적으로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이 될 수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까지 발표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정치생명까지 던졌다. 대통령이 목숨을 걸었는데 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수석 국민대 글로벌평화통일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남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두 국가로는 살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은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노래를 부르며 장마당에서 대한민국 물건을 파는 등 남한을 동경하고 탈북하고 있다. 작년에 탈북한 22살 여성은 북한에서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노래를 다 들었고 심지어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합창하며 지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잃고 있다"며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따로따로 살자고 하지만 사실은 북한은 대한민국을 없애고 싶어 한다. 대한민국만 없으면 김정은은 편안하게 북한을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대한민국의 영향을 받고 있고 내부 체제가 이완되고 있기에 아마 북한은 한 내년 정도에는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그것이 군사 도발일 수도 있다. 북한은 전격적인 미북 관계 개선을 통해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시키고 한반도에서 김정은 정권이 원하는 질서를 수립하고 가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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