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밤 10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연말 음악회가 끝나고 막 나오는 길이었다. 문자로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라는 문자가 떴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 설마 사실일까?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 수개월 전부터 야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이라고 할 때 “뭔 황당한 주장인가”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대통령의 이런 은밀한 생각까지 야당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 최근 이재명 대표의 형사소송건에 대응해서 국회에서 무리수를 두긴 했지만 그게 계엄의 이유가 되기엔 좀 무리가 아닐까?
- 윤석열 대통령이 과연 뒷감당에 대한 대책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했을까? 이후 혼란을 어떻게 관리 할 것인가?
이런 생각에 대해서 현정부와 여당의 골수 지지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시사적 혹은 경험적 사실에 관심이 있을 뿐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하지 않는다. 팬덤정치, 선동정치가 우리 국가를 망하게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또 한편 오랜 경험을 통해서 누가 집권을 하던지 나의 삶이나 심지어 국가 발전에도 별 영향을 안 미치더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 세대는 비상계엄이란 단어에 익숙하다. 그리고 내가 국가 권력에 영향을 주거나 혹은 괜한 영웅심리로 경거망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내 삶에 충실한다면 계엄이란 것이 아무런 위험이나 지장이 없더라는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한편에서는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는데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할 지 모른다. 나는 젊을 때 끊임없이 발효되는 군사독재하의 비상계엄과 목숨 걸고 싸운 사람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게 뭐 대단한 민주주의 위기도 아니고 국가적으로 큰 일도 아니더라는 것. 결국 나의 소영웅주의가 나를 위험에 빠트리고, 한편 나를 희생할 만큼 국가적으로 기여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서민들의 삶을 망가뜨리는데 일조를 했더라는 것이다. 비상계엄 뿐 아니라 외환위기, 코인사태, 벤쳐투자 붐 등 어떤 비정상적인 상황이 되면 그 상황 보다 상황에 흥분하거나 죄절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국 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아무튼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21세기에 비상계엄이란 단어를 보면서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 했다. 역시나 또 최근의 팬덤정치의 수순으로 가고 있었다. 다음 3단계가 불과 하루만에 전개 되었다.
1단계.
야당을 비롯한 현 야당의 골수 지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SNS를 먼저 달구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현 여당골수 지지자들도 맞불을 놓았지만 수적으로 절대적 열세였다. 비상계엄은 불과 몇 시간만에 끝났지만 사실상 이들은 비상계엄 상황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싫어하는 권력자를 밀어내는 빌미를 잡은 것일 뿐.
2단계.
다수의 관망자들은 여론을 선점한 집단의 주장에 기울어진다. 그러면서 언론의 논조도 여론의 기울기로 함께 간다. 균형을 잡는 척 하는 언론이 나서기 좋아하는 전문가를 인용해서 소란스런 사람들의 여론에 “전문가의 진단” 이라는 힘을 실어서 동조 한다. 우리의 팬덤정치가 시작된 이후로 여론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전문가는 대체로 침묵한다.
3단계.
침묵하는 다수는 보이지 않으니까 전국민이 현 정부에 저항하는 착각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숫적 비율은 모르겠지만 서민, 중산층, 전문가, 권력층 모두 양쪽이 있다. 하지만 한쪽은 증폭되고 한쪽은 침묵한다. 그러면서 언론의 상업성이 이에 기름을 붓는다.
어느 유명 연예인이게 비상계엄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 라고 했다고 집단 린치를 한다. 비상계엄에 대한 저항의 이유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이 황당한 반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이 없다. 이 질문을 한 사람의 의도는 무엇일까? 유명 연예인의 인기에 편승하면 선동이 쉽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런 일에는 항상 연예인들이 줄을 선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선동정치의 전형이다.
비상계엄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통치 과정에서 쓸 수 있는 기능 중 하나다. 물론 전쟁 등 비상시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이의 적용에는 신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의 판단도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그런데 여론은 비상계엄을 “군사반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일부는 알면서 그렇게 몰아가고 다수는 정말 그렇게 믿는 것 같다. 심지어 언론도 그런 분위기로 몰아간다.
계엄령은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국가 위기상황일 때 대통령이 발동할 수 있는 최후의 장치이다. 지금이 전쟁에 준하는 위기상황인가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을 국민 개개인이 순간적으로 평가해서 이에 동조 하거나 비판하는것이 과연 제대로 된 국민의 행동이고 제대로 된 국가일까? 하물며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리를 군사반란으로 오해하고 국민들을 선동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국가 반란이 아닌가?
비상계엄의 발동 요건이 헌법에서 벗어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다. 나는 이 의견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왜냐면 헌법의 해석은 고도의 전문영역이고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존재 한다. 진정 그들의 전문적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국가 사법부에 상당한 불신이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때 이유를 관심있게 지켜 봤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다섯가지 혐의에서 공무원임용권 남용과 세월호 관련해서는 탄핵 대상이 아님으로, 언론자유 침해는 혐의 없음으로, 뇌물죄는 의견 없음으로 결론을 냈고 국정농단만이 탄핵의 사유가 되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서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검토한 것 외에는 소문 뿐 국정농단의 실체가 모호하다. 당시 나는 무척 실망하다 못해서 절망했다. 헌법재판소는 법치국가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던가? 이 나리가 어디로 가려는건가. 혹자는 내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실망한 것으로 오해할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어느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던 말던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시사적 이슈에서 항상 이해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때법이 헌법을 이긴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절망하지 않겠는가?
국가 최고수반 대통령이 국가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하고 계엄령을 선포 했다. 대통령이 헌법에 의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인 게엄령을 선포 했고 국회 과반수가 반대해서 계엄을 해지 했다. 이 과정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나? 그 다음은 비상게엄을 선포 했어야 하는 상황인가 하는 판단이 남았는데 대한민국에는 법이 있고 법을 판단하고 집행하는 사법기관이 있다. 왜 국민들이 먼저 나와서 이를 판단하고 결론을 만들고 그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겁주고 선동 하는가?
신문기사들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여의도에 핼기가 떴는데 전선이 복잡한 서울 하늘에서 위험천만 하단다. 서울시 대부분의 전선이 지하 매립 된지가 언제인데, 그리고 서울시내 하늘에 사흘토록 헬기가 뜨는데 갑자기 왠 전신주 타령? 어느 군 지휘관은 파견된 계엄군들은 이용당했으므로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 한단다. 군통수권자의 명령을 군 지휘관도 아닌 사병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는 것이 전쟁에 대비하는 대한민국 군대인가? 신문의 반을 계엄령 관련 기사가 차지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객관성을 잃은 선동과 과장, 심하면 진실이 의심스러운 기사들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 불과 몇시간의 해프닝으로 끝난 계엄령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을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착각하는 한심한 국민들과 국가의 안위와 발전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 지향적 인사들, 그리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던 언론의 극단적 상업화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은 계엄령 보다 훨씬 더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가 아닌가?
작금의 사태는 한국정치의 실패이고
윤석열의 사태는 보수와 윤석열의 실패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