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배경이 무엇인지를 두고 정치권이 혼돈에 빠졌다. 여당에서는 윤 대통령이 탄핵의 판을 깔아줬다는 푸념이 나왔고, 민주당은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의원총회 도중 전화가 닿은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4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기습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해야만 했는지 국민 앞에 윤 대통령이 직접 그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며 "이제 여당은 윤 대통령을 지켜줄 동력조차 상실했다. 스스로 돌파하지 못하면 법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24분경 대통령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가지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계엄이다.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라는 이름을 진행된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비상계엄 선포 한 시간 만에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 사무와 사법 사무를 관장할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다. 박 총장은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발표했다.
갑작스런 소식에 국회는 비상 체제로 돌입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명의로 국회의원 전원 소집령이 내렸다. 이 사이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했다. 국회로 모이는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직원들이 뒤엉키며 소란이 일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를 위한 표결이 진행됐다. 재석 190명,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령 해제요구안이 통과됐다. 계엄 선포 2시간 37분 만이다. 같은날 오전 4시30분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되면서 6시간의 계엄 소동은 종료됐다.
여야는 모두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야당의) 탄핵 시도 등이 무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위헌·위법한 계엄령 선포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며 "대통령이 이 참담한 상황에 대해 직접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우선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윤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고 국무위원 전원 사퇴를 요구했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국방부 장관은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5년 만에 뚜렷한 이유가 없는 계엄 선포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여당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왜 윤 대통령이 이런 무리수를 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야당의 차기 유력 대권 주자인 이 대표는 8개 사건으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미 공직선거법 재판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10년 제한되는 위기 상황이었다.
여당 소속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재판으로 위기에 몰렸고, 시간은 결국 우리 편이었다"면서 "탄핵 정국은 막을 수 없다. 야당은 당장 내란죄를 말하는데, 우리는 더 이상 감쌀 힘이 없다"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 탄핵 표결을 놓고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국회 현재 의석수로 볼 때 국민의힘에서 8명만 이탈해도 윤 대통령 탄핵이 가능해진다. 여당이 탄핵 정국을 막을 힘이 없다는 의미다.
기세를 탄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4일 탄핵안을 발의하고, 이르면 5일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겠다는 방침이다. 감사원장과 검사 3인에 대한 탄핵도 멈추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와 통과에 당의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각오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행태를 내란죄로 규정하고, 그가 탄핵당하는 순간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내란죄는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폭력적 수단을 써 정부나 국가기관을 전복하려는 범죄다. 형량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다.
팽팽하던 정국에서 승기를 잡은 민주당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정부·여당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급박하게 움직이지만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의 상황에 더욱 고민이 커지는 모습이다.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로 대통령 탄핵 명분을 확실히 쥔 상황에서 향후 헌법재판소장 임명 등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이 공석인 상황이다. 이미 여야는 민주당이 2명, 국민의힘이 1명을 추천하기로 합의하고 절차를 추진 중이다. 민주당은 인사청문회 등을 속전속결로 끝낸 후 9인 체제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겠다는 각오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날 뉴데일리에 "탄핵과 관련한 제반 상황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고 무리 없이 일정이 진행된다면 내년 3~4월 정도에 판단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당장 오는 7일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집회에서 성난 민심이 모일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제 일반 국민이 윤 대통령의 탄핵에 공감하고 거리로 나올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내 상실감과 자괴감은 클 수밖에 없다. 사실상 윤 대통령이 이 대표의 대선 길을 깔아줬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윤 대통령과 선을 긋고 이 대표 등을 중심으로 한 범법 세력과 일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우선 윤 대통령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보고 문제는 그 이후"라며 "이 대표가 윤 대통령보다 나은 정치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국가 혼돈과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에게 절대로 권력을 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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