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첫날부터 자국의 3대 교역국인 멕시코‧중국‧캐나다를 겨냥한 가차 없는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25일(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내년 1월20일 취임 당일에 중국에 추가 관세에 더해 10%의 관세를 더 부과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각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부과 대상은 해당 국가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이며 기간은 미국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과 마약 유입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라고 못 박았다.
이번에 발표한 방침은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선거 당시 공약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공약에서는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10~20% 수준의 보편관세 도입을 내걸었지만,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 높은 관세율을 꺼내 들었다. 중국의 경우 60% 이상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한 만큼 추가 관세가 10%를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중국은 곧바로 "무역‧관세 전쟁의 승자는 없다"고 반발했다. 이날 멕시코 페소와 캐나다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도 요동쳤다.
표적이 된 멕시코‧중국‧캐나다는 미국의 1~3위 수입국으로, 전체 미국 수입의 42%를 차지한다. 이들에게 마약‧이민과 같은 비경제적 이슈를 문제 삼아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은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도 얼마든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초반부터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를 올리는 것은 예고된 사안이지만, 다른 사안을 제쳐두고 '공약 1호'로 내세우면서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 무역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 경제 역시 직‧간접적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멕시코는 한국의 주요 무역상대국이다. 이들 국가의 경제가 흔들리면 한국의 수출과 제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멕시코에 25%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포스코 등 미국 시장을 겨냥해 멕시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부담도 높아진다.
캐나다에도 한국 배터리 및 소재 공장이 가동 중이다. 이들 중 일부는 다른 국가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는 있지만, 여러 불확실성이 있어 섣불리 이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 전언이다.
게다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새로 생길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내정된 비벡 라마스와미가 26일(현지시각)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의 폴리티코 인터뷰를 거론하면서 "매우 부적절하다. 그들은 정권 인수 전에 지출(반도체 지원금 지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법(칩스법)에 따라 미국 내 투자를 확정한 상태에서 보조금을 받기 위해 막바지 협상 중이다. 삼성전자는 최대 64억달러(약 8조9000억원), SK하이닉스는 최대 4억5000만달러(약 6300억원)의 보조금과 정부 대출 5억달러, 투자금의 최대 25% 세제 혜택 등 혜택을 받는 것으로 잠정 결정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겨냥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면서 변수가 생긴 것이다.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의 여덟 번째 무역 적자국인 한국을 대상으로 무역 압박에 들어갈 가능성이 점쳐진다.
당장 우리 수출의 20%에 달하는 대미수출이 타격을 입는다. 또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의 미국 수출이 막히면 한국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국내 중간재 부품의 수출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10~20%)가 부과되면 대미수출이 55억~93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중 관세전쟁이 벌어질 경우 한국의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내년 경제성장률도 0.1~0.4%P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수차례 제기해 왔다. 관세가 면제되는 전통적 우호국인 멕시코‧캐나다까지 표적이 된 점을 고려하면 역대 최대 수준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 삼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관세부과 계획을 일찌감치 내놓고 시행 날짜까지 못 박은 '트럼프 스톰'은 단순 무역 문제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 질서의 급변을 예고하면서 각국의 경제전략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관세 파고가 높아지면 정부 역할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관세맨(tariff man)'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피해 보지 않도록 정부가 앞장서 미국과 정책 공조를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문제는 국내 정치판이다. 비상시국임을 깨닫고 다 함께 나서도 모자랄 판에 여당은 내분을, 야당은 정부 공격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원 게시판에 한동훈 대표와 가족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 비방글의 실체를 둘러싼 당내 갈등이 3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서로를 향해 대놓고 '공작음모'까지 제기하면서 낯 뜨거운 장면까지 연출하는 등 논란을 봉합하기는커녕 당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1심 재판 무죄선고를 계기로 대정부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내달 10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 세 번째 재표결을 강행할 예정이며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사건 무혐의 처분을 이유로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의 탄핵소추안도 내달 2일 보고 후 4일 의결할 방침이다.
게다가 민생을 살피는 법안은 미뤄두고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소액주주 권한을 강화하고 이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나무랄 데 없다. 일부 기업의 경우 쪼개기 상장, 올빼미 공시로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겠다는 형국이다. 기업이 잦은 소송과 투기 펀드의 경영권 간섭으로 경쟁력을 잃고 흔들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에게로 넘어간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업이 살아야 주주도 살고 경제도 산다.
지난주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16개 주요 기업 사장단은 이례적인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치권을 향해 상법 개정을 비롯한 규제 입법을 중단하고 경제살리기 법안 처리에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
나라 안팎의 경제‧안보 현안들은 시시각각 위중하게 흘러가면서 정부의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할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다각적이고 현실적인 전략을 마련해 다 함께 나서야 다가오는 관세전쟁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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