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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간첩'에 패망한 남베트남 ‥ 남의 일로 치부해선 안 돼

뉴데일리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슈에 묻혀버린 중대한 뉴스가 있었다.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고 노조 활동을 빙자해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총 전 조직쟁의국장 등 3명이 1심에서 각각 징역 5·7·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것.

민주노총 간부들이 △역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중 최다 규모인 총 90건의 '북한 지령문'을 받고 △군사기지 시설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거나 △북한 문화교류국(대남공작기구)의 지도를 받아 '지하조직'을 결성했다는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으나, 대다수 매체들이 '미 대선' 뉴스로 헤드라인을 도배하면서 이들의 이적 행위는 세간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수가 최소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국내 최대 노동단체. 수많은 산별노조를 거느리며 사회 각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의 간부들이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A씨는 2018년 민주노총 내부 통신망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북한 측에 넘기고, 2년 후엔 민주노총 선거 출마자들의 성향과 동향까지 보고했다. 또 21대 국회의원 전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북한 공작원에게 넘기는가 하면, 2021년엔 평택 미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 등의 군사시설을 촬영해 북한에 전달했다.

수원지법에 따르면 북한 문화교류국이 A씨에게 보낸 지령문에는 △2022년 5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직후인 6월 한 달간 반미·반일 감정을 확산해 투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이태원 참사를 대정부 투쟁의 수단으로 삼으라는 내용과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운동을 전개하라는 등의 구체적인 활동 방향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이나 한미연합훈련 같은 국가적 행사나 대형 재난이 있을 때마다 '반정부 여론'이 고조되고 각종 '대정부 시위'가 발생한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대국민 사과를 하고 낮은 자세로 읍소를 해도 모자랄 판에 민주노총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이 진보세력에 '종북프레임'을 덧씌워 국면전환용 공안탄압을 자행했다"고 규탄한 데 이어, 오는 9일에는 서울 도심에서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는 적반하장격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은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와 연대해 집회 규모를 더욱 키울 생각이다. 슬로건부터 '윤석열 정권 퇴진'인데다, 진보당·진보대학생넷·전국농민회총연맹 등 43개 노동시민정치단체가 참여하는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함께 한다는 점에서 이번 집회가 '정권 심판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선고를 코앞에 둔 더불어민주당은 여기에 숟가락을 얹을 태세다. 지난 2일 개최한 단독 집회에 겨우 1만7000명(경찰 추산)만 모이는 쓴잔을 들이킨 민주당은 오는 9일 같은 장소에서 2차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열 계획이다. 개최 시간은 오후 6시. 민주노총 등이 예고한 시각보다 2시간가량 늦다. 사실상 민주노총 시위대와 뭉쳐 집회 참여 인파를 늘리겠다는 꼼수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벌이는 '2024 전국노동자대회'를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 노동집회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표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민주당과 같은 공간에서 목소리를 높인다는 점에서, 이번 민주노총의 장외 집회는 민주당의 '탄핵몰이'에 장단을 맞춘 '이재명 방탄 시위'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집회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반미·친북·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참가자들의 면면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이끌던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2020년 경기동부연합 독자 후보로 나와 당선됐고,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박석운 대표는 △한·미 FTA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사드 배치 저지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 각종 반정부 집회를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해 온 '전문 시위꾼'으로 분류된다.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에 합류한 진보당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 판결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다.

강새봄 진보대학생넷 대표는 지난해 8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일본대사관을 월담해 물의를 빚었다. 강 대표의 부친은 '창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압수수색을 당한 강인석 민주노총 경남 지역 정치국장이다.

간부들이 간첩 활동으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민주노총이 반미·친북 성향 인사들과 손을 맞잡은 것은 '친북·좌파'라는 굴레를 스스로 옭아매는 격이나 다름 없다.

A씨 등 민주노총 간부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A씨가 민주노총 내에서 동조자를 포섭하는 등 '반국가단체'의 영향력이 민주노총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북한 지령문을 받은 A씨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과 접촉해 우리 사회에 혼돈과 분열을 야기했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재판부가 "(이 사건 범행이)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민주노총 등의 합법적 활동 등이 혹시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그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 것처럼, A씨 등이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민주노총이나 시민단체 등이 주관하는 일부 시위에 관여해 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비봉출판사가 펴낸 '북의 지령 따라 움직이는 남쪽 사람들'을 보면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대한민국 사회의 각종 반정부 소요 사태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책은 1982년 4월 북한의 조국통일사가 북한 독자들과 남한에 침투시킨 간첩, 일부 주사파들을 위해 펴낸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한국현대사 자료편찬위원회가 입수해 국내에 재출간한 것이다.

애당초 북한이 '체제선전용'으로 이 책을 발간했기 때문에 순수한 민주화운동까지 자신들의 지령으로 이뤄진 것으로 왜곡하는 등 사실과 다른 점들이 있고, 실제보다 부풀려 과장되게 서술한 대목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한국현대사 자료편찬위원회는 "아마도 그 단체나 조직에 침투해 있던 간첩들이 자신들의 실적을 과장해서 보고한 대목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과 정황이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된 기록들이 많다는 점에서 내용 전체를 '허구적 선전선동물'로 단정짓기도 힘들다는 게 출판사와 편집인들의 시각이다.

이 책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기 위해 △제주4·3사태와 여순 반란 사건 △전국적인 파업과 대구 폭동 사태 △4·19와 이승만 대통령 추방 △장면 정권 시절 각종 조직 결성 △남북학생회담 추진 △통혁당 창당과 각종 암약 △부마사태 등에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실제 역사인지는 알기 힘드나, 이 중 일부만 사실로 판명나도 국내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의미심장한 점은 북한 스스로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남한 사회 곳곳(행정부처, 국회, 정당, 법조계, 종교계, 언론, 군대, 교육 현장)에 종북주의자들을 침투시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고 밝혔는데, 이번 '민주노총 간부 간첩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남한 내 정치·사회 전반에 관여하려는 북한의 의지가 확인됐고 실제로 구체적 지령까지 내린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앞뒤 정황을 종합해 보면 △광우병 가짜뉴스 사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게이트 △천안함 폭침 음모론 △세월호 침몰 음모론 △사드 배치 반대 운동 등, 각 시기마다 우리 정부를 휘청거리게 했던 수많은 사건사고의 '배후'에 북한이 도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55년 건국된 남베트남은 오랫동안 북베트남과 대치해 왔으나, 1975년 월맹군에게 수도 사이공을 함락당하면서 무너졌다. 패망 이전 남베트남은 경제력과 군사력 면에서 북베트남을 월등히 앞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미군과 한국군 철수 후 사이공에 침투한 100개 이상의 좌익 단체가 벌인 선전선동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5만 명에 달하는 월맹 간첩들이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 등으로 위장해 남베트남의 정치·사회·경제 전역을 파고 들었다. 남베트남의 야당 정치인으로 대선후보였던 쭝딘쥬는 1960년대 "월맹은 우리 동포"라며 월맹과 평화협상이 가능하다는 달콤한 말로 당시 젊은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남베트남이 패망한 후 쭝딘쥬가 월맹 공산당의 지령을 받는 고정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북한 노동당 비서였던 황장엽은 생전 "남한 내에 고정 간첩 5만 명이 암약하고 있고, 특히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남베트남을 패망에 이르게 한 월맹의 '5만 간첩'과 동일한 규모다. 물론 이러한 주장의 사실 여부는 미지수나, 당시 김일성을 '권좌'에 앉힌 인물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만큼 무시하기 힘든 발언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각종 노동단체들이 내거는 대정부 시위 구호를 들어보면 "'한·미동맹'을 폐기하라"거나 현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등 노동자의 권익 추구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처음엔 '임금 인상'이나 '처우 개선' 등 노동 인권·복지의 개선을 요구하다가도, 어느 순간 정부·여당을 저격하고 '미군 철수'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정치적 시위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성격의 시위나 집회가 북한과 전혀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현재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여론'을 끌어올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파트너로 '간첩 사건'에 휘말린 민주노총을 택한 모양새다. 범야권이 '반윤(反尹)'을 기치로 대동단결하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운동을 전개하라"는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령대로 야권 전체가 움직이는 꼴이 됐다.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현재 매스컴에 비친 이들의 작태는 북한이 좌지우지하는 '마리오네트'로 보일 뿐이다.

남베트남이 패망한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맹목적 반대도 문제지만 맹목적 추종도 문제다. '일편단심(一片丹心)'이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한 발만 떨어져서 사안을 바라보면 실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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