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23일(현지시각)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레바논을 대대적으로 폭격하면서 최악의 인명피해가 났다.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연일 높여가면서 2006년 이후 18년 만에 지상전 가능성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에서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남부는 물론, 동부까지 최근 24시간 동안 약 650차례의 공습으로 헤즈볼라 시설 1100개 이상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날 레바논 동부 베카밸리를 비롯해 이스라엘 국경에서 100㎞ 떨어진 바알베크 등지에서도 이스라엘군의 맹렬한 공습이 목격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공격 대상에는 헤즈볼라가 로켓과 미사일, 발사대, 드론을 숨긴 건물과 추가 테러시설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요아비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오늘은 중요한 정점"이라며 "우리는 (헤즈볼라) 로켓과 정밀탄약 수만발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이 조치는 계속될 것"이라며 "헤즈볼라는 가자지구에서 휴전이 될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다짐한 만큼 (최근 공습이) 오랜 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저녁 수도 베이루트에서 또다시 표적공습을 감행하기도 했다. 20일 베이루트 남부 외곽에 표적공습을 벌인 지 나흘 만이다.
이날 표적공습은 헤즈볼라 고위 지휘관인 알리 카라키를 겨냥했으나, 카라키는 무사하며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고 헤즈볼라는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민간인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날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남부와 베카벨리, 바알베트의 마을에 퍼부은 공습으로 어린이 35명과 여성 58명을 포함해 492명이 숨지고 165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일일 사망자 수로는 레바논 내전(1975~1990년) 이후 최대다.
피라스 아비아드 레바논 보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공격받은 지역에서 수천명이 피란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명피해와 피란행렬은 2006년 7~8월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이후 최대 규모라고 CNN과 AP통신은 전했다.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10월부터 최근 무선호출기(삐삐) 폭발사건 발생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공격에 따른 레바논 측 사망자는 민간인 100여명을 포함해 600명 정도였다. 지난 11개월간 사망자 수의 절반을 훌쩍 넘는 사망자가 이날 단 하루 만에 나온 셈이다.
레바논 보건부는 동부와 남부의 병원에 부상자 치료에 대비해 비필수 수술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교육부는 국경지대는 물론, 베이루트 남부 외곽 지역에 24일까지 이틀간 휴교령을 내렸다. 이들 학교를 거점으로 약 40개의 대피소가 설치됐다.
전례를 찾기 힘든 규모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음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안보 내각회의에서 "(레바논과 인접한) 북부에서 힘의 균형, 안보의 균형을 바꾸겠다고 약속한다"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날 별도의 녹음된 메시지에서 레바논 시민들을 향해 "대피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며 "우리 작전이 종료되면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앞서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브리핑에서 "레바논 전역에 뿌리박힌 테러 목표물들을 광범위하고 정밀하게 타격할 것"이라며 "이번 공습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공습반경이 넓어질 수 있다면서 "헤즈볼라가 은신한 건물과 가옥에 있거나 근처에 있는 사람은 모두 즉시 그곳에서 멀리 대피하라"며 민간인은 헤즈볼라와 거리를 두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스라엘 지상군이 국경을 넘어 레바논에서 작전을 수행할 가능성을 묻는 말에 "이스라엘 북부의 안보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스라엘의 거센 공세에 헤즈볼라도 반격을 가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 인근의 방산업체 라파엘을 비롯한 3곳에 로켓포를 발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피해상황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헤즈볼라의 후원자인 이란의 나세르 칸아니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이스라엘의 공습을 "미친 짓"이라며 "시온주의자(이스라엘)의 새로운 모험이 위험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도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에 대해 "야만적인 침공이자 전쟁범죄"라고 비난하면서 헤즈볼라와 레바논 국민에 연대를 표명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저강도'로 유지되던 양측의 무력충돌은 17~18일 무선호출기·무전기 폭발사건으로 헤즈볼라가 일격을 받은 후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헤즈볼라가 보복을 천명하자 이스라엘은 20일 베이루트를 한발 앞서 표적 공습해 이브라힘 아킬 등 헤즈볼라의 군사작전을 주도하는 지휘관들을 살해했고, 이후 남부와 동부에서 대규모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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