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계속되는 '쓰레기 풍선 테러'로 최소 4차례의 화재가 발생하는 등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고 있다. 정전협정을 위반하며 테러를 벌여온 북한은 적반하장으로 이를 한국 탈북민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탓으로 돌리며 한국 사회 내 '남남(南南)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은 쓰레기 풍선을 이용해 고도의 '대남 심리전'을 벌이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북한의 테러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기는커녕 풍선의 '자연 낙하 후 수거' 방침을 고수한 채 대북 확성기 40대로 대응하고 있다.
16일 외교·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쓰레기 풍선 등과 같은 테러를 막기 위해선 평양에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등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북 심리전이 수반돼야 한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관계 부처 장관회의에서 북한 풍선 테러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쓰레기 풍선을 한두 번 살포하다가 그만둘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범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5월 28일부터 9월 15일까지 총 20차례에 걸쳐 풍선 테러를 벌였다. 범국가 차원에서 쓰레기 풍선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 무력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軍, 20차례 풍선 테러에도 '자연 낙하 후 수거'만
군 당국은 북한이 풍선 테러를 20차례 감행하는 동안 '자연 낙하 후 수거' 방침만 고수하고 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그 이유에 대해 "풍선을 공중에서 격추하면 적재물 낙하 또는 유탄에 의한 위험성이 더 높아 현재로서는 자연 낙하 후 신속히 수거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쓰레기 풍선을 군사분계선(MDL) 이북에서 기관총이나 레이저로 격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총으로 격추하면 북한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도발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합참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맡았던 정경운(예비역 중령·육사 46기)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총으로 격추하면 탄환이 북한으로 넘어갈 수 있고 북한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며 "사실 여부를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우리가 오히려 궁지에 몰릴 수 있고, 이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풍선 공중 포획·수거할 새로운 장비 개발 필요"
북한의 풍선 살포 여부를 탐지하다가 공중에서 풍선을 포획·수거할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 등 창의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합참은 "(풍선 수거를 위해) 헬기를 운영했을 때 헬기 조종사의 위험성도 있다"며 "만약 헬기가 대남 풍선에 휩쓸려 추락한다면 어마어마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청한 한 안보 전문가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방위산업 기업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면 새로운 맞춤형 장비를 개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한국 방산업체가 북한의 풍선 테러를 무력화한다면 전 세계 방산 업계에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국방부가 창의성을 발휘할 생각은 안 하고 너무 쉽게만 가려는 것 아닌가"고 반문했다.
◆北 풍선이 "애교 수준"? … '대남 심리전 시험대'이자 방화 테러 수단
정부의 이러한 안일한 대응의 기저에는 최근 한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의 표현처럼 북한의 풍선 테러를 "애교 수준"으로 치부하는 비현실적인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풍선테러의 목적을 한국 정부가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게끔 하려는 것으로 단순하게 치부하고 있다.
북한이 쓰레기 풍선을 대남 심리전을 위한 시험대(test-bed)로 사용하고 있으며 향후 '방화 테러'의 도구로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를 간과한 인식이다.
익명의 대북 전문가는 "과거 북한은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불이 번지게끔 격발장치를 동원해 불을 많이 지르곤 했다. 북한은 건조한 가을이 되면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장치를 풍선에 담아 살포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산불이 난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백색가루 테러'를 벌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쓰레기 풍선에 밀가루만 넣어 살포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화생방전'이 아니냐며 전국적으로 큰 혼돈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강력한 '대북 심리전' 나서야 … 당국 차원의 '대북 전단 풍선'으로 맞대응
종북 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한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한국 정부가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요구대로 탈북민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시키면 북한에 무릎을 꿇는 꼴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무시한 주장이다. 이러한 남남갈등과 국민의 안보 불안은 심리전에서 한국이 이미 북한에 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대북 전단 살포와 대대적인 대북 확성기 방송 강화 등 북한이 위협을 느낄 정도의 강력한 심리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휴전선 일대나 황해도, 강원도 등 보다는 북한의 핵심 엘리트층이 사는 평양에 대한 전단 살포가 가능한 수준까지 가야 대북 심리전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북한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한국을 괜히 건드렸다고 후회하게 해야 한다"며 "현재 40대인 대북 확성기를 150대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북한의 도발 수위에 따라 대북 확성기 개수와 방송 빈도도 3~4배로 높이고, 정부 차원에서 평양까지 갈 수 있는 대북 전단 풍선을 보내겠다고 경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왜 정부는 대북 전단을 직접 살포하지 않고 민간단체 뒤에 숨고 있는가"라며 "헌법재판소는 우리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북한은 김씨 일가까지 나서 우리를 협박하며 풍선 테러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가 대응하지 못하니까 오히려 우리를 '오물', '쓰레기'로 생각하며 얕보고 있다. 우리가 당당히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北 요구대로 대북 전단 살포 중단해선 안 돼"
리일규(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도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북한에 호락호락 굽히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 대북 전단을 띄우겠다는 경고 자체가 대북 억제력을 가진다"며 "우리 정부와 군은 북한 전역이 하얗게 덮일 수 있을 정도로 대북 전단을 살포할 능력도 있다. 북한이 계속 쓰레기 풍선을 보내면 대규모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는 압박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대남 쓰레기 풍선으로 화재를 일으키는 등 인적·물적 피해를 준 사실에 대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들을 통한 규탄과 성토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리 전 참사는 "북한 정권은 국제관례나 상식, 국제법과 원칙을 다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며 "그러나 북한이 (인분과 퇴비를 담은) 1~2차 오물풍선 살포로 국제사회에서 비웃음을 산 이후에 김여정이 쓰레기 풍선과 관련해 담화를 내고 풍선의 내용물을 굳이 설명한 적이 있다. 이는 북한이 국제사회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대북 전단에 尹 '8·15 통일 독트린' 설명하면 北 주민들 감복할 것"
한국 정부의 대북 전단에 들어가면 좋을 내용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광복절을 맞아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과 김정은 정권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통일 지우기'에 나선 사실 등이 꼽힌다.
리 전 참사는 "북한 주민들이라고 할지라도 북한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김정은의 '두 국가 정책'과 반대로 한국은 끊임없이 통일을 원하고 있고, 통일을 위한 새 정책이나 노선들을 현실성 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걸 많이 알려주면 북한 주민들이 감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교에 대한 내용을 싣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종교에 대한 환상이 최근 한류 못지않게 확산하고 있다. 사는 게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누가 종교를 가지라고 하지 않아도 신을 자연히 믿게 된다"며 "내가 현실에서 체험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종교를 완전히 반국가적 행위로 규정하고 탄압하고 있다. 그만큼 정권이 종교 문제로 아파한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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