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새 정당 강령(정강, platform)에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문구를 모두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도발을 감행하는 현 상황이 '억제(deterrence)'가 필요한 단계임에도 대선을 앞둔 미국의 두 정당이 대북정책의 원칙인 '비핵화'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 원칙이 약화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에서는 안보 강화를 위한 '공포 균형' 유지 차원에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지만, 여당에서만 관련 목소리를 키우고 있어 '공회전'만 하고 있다.
지난 21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인천 동구미추홀구을)은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에 미국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정당 강령에서 '북한 비핵화' (문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핵 폐기보다는 북핵 동결에 방점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북핵 폐기가 아니라 북핵 관리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변화할 것이고, 그러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는 단계까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도 핵탄두 수를 늘리고 있으며 미국에 이어 핵탄두를 많이 보유한 러시아도 높은 수준의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위협으로 여겨진다.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6월 공개한 2024년도 연감(SIPRI Yearbook)에서 "북한이 현재 약 50기의 핵탄두를 조립했으며 총 90기의 핵탄두에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핵분열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북한은 핵무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해왔지만, 고농축우라늄(HEU)도 생산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군용 핵 프로그램은 여전히 국가안보전략의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이 '한 줌'의 핵무기만 보유하고 있을 때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 억지할 수 있었지만,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에 필적할 정도로 핵 무력을 증강한 만큼 중국과 러시아와 '조율'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핵 위협 수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각종 국제 규제를 무력화하고 핵 역량 강화를 준비 중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미국과 체결한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이 협정은 2026년 2월 종료된다. 이어 11월에는 모든 핵 실험을 금지하고 검증체계를 강화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철회하기도 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우방국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까지 배치하면서 소련 붕괴 이후 30여년 만에 국외로 핵무기를 처음 이전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이런 상황에서 우주 핵무기와 같은 신무기를 먼저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을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핵무기 체계를 양과 질, 양측면에서 비밀리에 급격히 개선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SIPRI 연감을 보면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은 지난해 410개에서 올해 500개로 늘었다. 이는 미국 3709기, 러시아 4380기보다는 월등히 적은 수치다. 그러나 SIPRI는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사상 처음으로 평시에 소량의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한스 M. 크리스테슨 SIPRI 대량살상무기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 빠르게 핵무기를 확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인도의 핵탄두는 1년새 164기에서 172기로 늘어났고 △프랑스 290기 △영국 225기 △파키스탄 170기 △이스라엘 90기 등은 지난해 1월과 같은 수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핵보유국 군비 확대-국내 아젠다 부상에도 여당만 '안간힘'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반핵단체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은 별도 보고서를 통해 9개 핵보유국이 지난해 핵 무기고에 총 914억달러(약 126조원)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ICAN은 지난해 전세계 핵무기 지출비용이 2022년보다 107억달러(약 14조원)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미국이 지난해 지출한 비용은 모두 515억달러(71조원)로, 다른 모든 핵보유국을 더한 것보다 많다.
ICAN의 정책 및 연구조정자인 알리시아 샌더스-자크레는 "최근 5년간 이런 가장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핵) 무기 개발에 투자된 금액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다음으로 지출이 많은 국가로 중국(118억달러, 16조원)과 러시아(83억달러, 11조원)를 꼽았다. 그러면서 "이 모든 돈이 세계 안보를 향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사실 이 돈은 그들이 사는 곳 어디에 있든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윌프레드 완 SIPRI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국제관계에서 핵무기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만 군불을 때고 있을 뿐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그에 따른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려해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모양새를 비추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국제정세 급변에 따라 독자적 핵무장론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7.23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자체 핵무장론 또는 핵 잠재력 보유론이 고개를 들면서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군사전문기자 출신인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비례)은 지난달 핵무장 잠재력 확보를 위한 토론회 개최에 이어 '원자력진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국회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충남 서산시태안군)도 앞선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독자 핵무장론에 힘을 실었다.
성일종 의원은 "강도가 총을 들고 싸우는데 우리는 맨손으로 싸울 수 없지 않느냐"며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핵무장론이 '현실 가능한' 아젠다로 이미 자리 잡고 있다.
NYT는 "아직 한국 정부가 부인하고는 있지만, 이런 논의(핵무장론)는 갈수록 한국 주류 정치권의 담론 중 한 부분이 되고 있다"면서 각종 여론조사를 근거로 "한국인들은 미국의 핵우산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전했다.
실제 최종현학술원이 지난 2월 한국인 1043명을 대상으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미사일 기술개발을 통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지를 묻자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60.8%에 달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독자적인 핵 개발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72.8%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도 76.8%에 비해 소폭 감소한 것이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4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강력한 확장억제 약속에도 한국 내에서 독자 핵 개발 지지 여론이 높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최근 한국 내 안보단체들이 핵무장을 위한 국민 1000만 서명운동을 펼치겠다고 나선 것도 한국 내 여론 변화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 단체는 "한국의 핵무장은 동맹과 우방의 글로벌 에너지 안보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균형에 유익하며 진정한 핵 동맹으로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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