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하는 대신, 전술핵 재배치 등 미국의 확장 억제와 한미일 3국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5일 외교가에 따르면,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은 전날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개최한 '아산플래넘 2024' 환영사를 통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기반 마련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며 "오늘날 미국이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주장했다.
정 명예이사장은 "아시아에 대한 많은 예측이 빗나갔는데 북한의 핵 개발은 그 대표적 사례"라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억압 받는 체제인 북한으로서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가 정치적 위협이기에 적화통일을 추구한다. 우리가 이를 저지하려면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北 핵동결은 불가능한 목표 … 韓美 억제 태세, 北 핵강압에 미흡"
북한의 비핵화뿐 아니라 그 전 단계인 핵동결도 불가능하므로 대북 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핵동결을 하려면 핵시설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를 확인할 수 없어 협상이 쉽지 않다"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으므로 협상의 여지도 없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대북 억제"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현재 핵탄두 50~100발분의 핵물질을 확보했는데 핵탄두를 향후 300~500발까지 만들 수 있다"며 "북한이 300~500발의 핵탄두를 가지게 될 경우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북한이 핵을 유지·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므로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최근 미 정보공동체 보고서인 국가정보평가(NIE)는 북한이 강압을 위해 핵을 사용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현재 한미의 억제 태세는 북한의 핵강압에 대응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더 갖도록 기다릴 것이 아니라면 미국은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北, 핵위협 지속하면 주한미군기지 전술핵 저장시설 현대화해야"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날 아산플래넘 계기 개별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10월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연구소가 공동 발표한 '한국에 대한 핵 보장 강화 방안'을 차 언급했다. 이는 ▲주한미군기지 내 전술핵무기 저장시설 현대화 혹은 신축 건립 ▲태평양서 미 전략핵잠수함(SSBN)에 적재된 핵무기가 북한을 겨냥하도록 지정 ▲한국의 비용 부담으로 미 B61 전술핵무기 100기 현대화해 한국 안보 지원용 지정 ▲미 전술핵과 핵투발 이중목적항공기(DCA) 배치 등 북한의 핵 위협에 따라 대북 압박을 4단계로 강화하는 로드맵이다.
1단계는 북한이 핵 위협을 중단하지 않으면 주한미군기지 내 전술핵 저장시설을 현대화하는 방안이다. 북한이 1단계에서 핵동결을 하지 않으면 한미는 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SSBN에 적재된 핵무기의 일부 혹은 전부가 북한을 겨냥하도록 지정하는 2단계로 나아간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SSBN 한 대당 핵탄두를 약 80발 탑재하고 있는데 이것의 반 정도를 한반도 쪽에 지원할 수 있다"며 "충분히 멀리 떨어진 태평양에서 작전을 실시하므로 북한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고, 중국이나 한국으로서도 불만을 터뜨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단계에서도 북한이 핵 동결을 거부하면 미국 B61 핵폭탄 100기를 한국의 부담으로 현대화하는 3단계로 대북 압박을 강화한다. 그는 "미국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략 및 전술핵무기 목적으로 B61을 제작했지만, 예산 제약으로 인해 100억 달러를 들여 480여 기만 B61-12 구성으로 현대화했다"며 "한국의 협조로 나머지의 일부를 현대화하면 언제든 한국 쪽에 배치해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내 전술핵 저장시설을 현대화하면 북한의 재래식 공격뿐 아니라 핵 공격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북한 핵 공격의 목표물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북한이 주한미군 소유의 전술핵 시설을 공격한다면 과거 '진주만 공습'에 비견할 사건이 될 것이다. 미국이 반격하면 김정은은 죽게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반격하지 않는다면 그 대통령이 누구든지 간에 탄핵감"이라고 일축했다.
◆"北, '전쟁 가능' 메시지 발신 … 240㎜ 방사포 개량은 선제적 군사조치"
존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 대사는 "'북한은 이미 전쟁에 대한 전략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는 미 미들베리 국제문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헤커 교수의 지난 1월 기고문에 동의한다"며 "북한은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은 최근 온갖 무기를 시험하며 사실상 한국과 전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버라드 대사는 이어 "북한은 핵 선제 타격을 정권의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삼고 있으며, 최근 북한이 240㎜ 방사포(다연장로켓포) 등 재래식 무기를 강화하고 있는 행동도 이러한 선제적 군사 조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韓 핵 무장은 NPT 체제 저해 … 韓美日 3국 협력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의 독자 핵 무장은 국제 비확산 체제를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를 통해 미국의 확장 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군비 경쟁, 특히 핵무기 확산의 심각성과 핵무기 경쟁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핵무기 비확산을 위한 각국의 노력이 필요하고 군비 통제에 대한 논의를 민간 차원에서 먼저 시작할 것"을 제언했다.
모리모토 사토시 전 일본 방위상은 "한미일은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며 한미일이 중거리탄도미사일 체계 등을 포함한 통합미사일방어체계(IAMD)를 구축하고 조기경보위성 정보공유체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쿠치 히데시 일본 평화안전보장연구소 이사장은 "한국의 핵무장은 핵 확산, 나아가 핵 억제력 상실로 이어진다"며 "주일미군의 주둔, 전투 능력의 강화 등 미국 확장 억제 신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오코 아오키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특히 캠프 데이비드에서 보여준 한미일 3국 정상의 결속이 북한의 행동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북한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계산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간 3국 군사연습이 실질적으로 통합됐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이제 3국의 전투기나 함정들이 동시에 훈련하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어 북한이 3국 통합연습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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