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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동무는 레닌-쓰탈린당의 충직한 당원"… 친우들이 증언했다

뉴데일리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과거 홍범도 장군이 레닌의 소련공산당뿐만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공산당에서도 당원으로 활동했다는 신문 기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1943년 10월27일 <레닌긔치>(레닌기치, 현 고려일보) 신문 2면에는 '홍범도 동무를 곡하노라'는 제목의 홍범도 장군 부고기사가 실렸다. <레닌긔치>는 1938년 카자흐스탄 공화국에서 창간한 재소련 고려인 신문이다.

해당 기사는 홍범도 장군의 친우인 강알렉세이, 김블라지미르, 서재욱, 남해룡, 김학권, 김긔순이 작성한 것이다. 친우들은 "홍범도 동무는 여러달 동안 숙환으로 집에서 신음하시다가 고만 75세를 일긔로 하시고 1943년 십월 25일에 세상을 떠나시었다"며 그의 일생을 재조명했다.

신문은 "그(홍범도)는 1868년 조선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출생하시어 부모를 어려서 여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머슴사리로 생을 유지해섯다"며 "쓸아린 생의 학교를 마춘 그는 일즉붙어 착취의 멍에를 대치하여 분투하섯으며 조선빨찌산 운동의 거두가 되어 력필고투하엿다"고 소개했다.

홍범도 장군이 평양에서 출생해 머슴으로 생을 살았고, 조선빨치산 운동에 앞장섰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어 신문은 "홍범도 동무는 레닌-쓰탈린당의 충직한 당원으로서 년치가 이미 높앗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사업에 열성있게 참가하시엇으며 당의 사명을 꾸준히 실행하기에 정력을 앗기시기 않앗다"고 강조했다.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이어지는 소련공산당의 당원으로 홍범도 장군이 나이가 많음에도 열심히 활동했으며, 공산당의 사명을 꾸준히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다.

또한 신문은 "우리 조국에와 볼세의크당에 퍽 충직하신 홍범도 동무는 자긔의 생의 경로를 진실히 맞추고 길이 돌아가시었다"고 회상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결국 홍범도 장군의 소련공산당 이력은 레닌에 이어 스탈린까지 이어진 것이다.

실제 소련의 국가 원수였던 레닌은 1918년 턱과 팔에 총상을 입었고, 수년간 후유증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다가 1924년 사망했다. 스탈린은 레닌이 병석에 누워 정상적인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1920년대 초부터 이미 소련이 실권자였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홍범도 장군의 소련공산당 이력은 레닌 시절의 공산당 이력'은 사실상 틀린 말인 셈이다.

또한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전투(6월)·청산리대첩(10월)을 승전으로 이끈 독립영웅임이 분명하지만, 이후 그의 행적이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그는 우선 자유시 참변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28일 소련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소련군이 한국 독립군을 유인해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은 일본군들의 추격에 소련 영토로 피신하게 된다. 그해 6월2일 440명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자유시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은 '무장 해제 후 진입하라'는 소련의 요구에 응했다. 홍범도부대는 이후 고려혁명군 3개 연대병력 중 제3연대로 편성됐다.

그러나 자유시를 찾은 고려공산당 상해파(사할린부대) 한인 독립군은 무장 해제를 거부했다. 이에 소련 적군(공산군)과 고려혁명군은 이들을 포위하고서 무차별 학살했다.

대한민국 육군 중장, 외무부 장관을 지낸 김홍일은 저서 <대륙의 분노-노병의 회상기>에서 "자유시참변에서 한국 독립군 700~800명 사망, 부상자 수백 명, 벌목 노동장으로 끌려간 인원이 1000여 명을 넘는다"고 기록했다.

대한독립군은 자유시 참변 이후 사실상 '궤멸'됐다. 반면, 홍범도 장군은 1922년 2월 모스크바에서 레닌과 단독면담해 친히 권총을 하사받았고, 소련 정부로부터 복지혜택 인증서를 발급받는 등 특혜를 제공받았다.

특히,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 참변의 생존자이자 사할린부대 출신인 김창수·김오남이 1923년 8월 하바롭스크에서 홍범도에게 참변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불시에 공격하자 레닌에게 받은 권총으로 이들을 사살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이유로 국군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육사 교정에 설치된 홍범도 흉상에 대한 적절성 논의가 있어왔고, 최근 이전 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등에서는 이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9/02/2023090200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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