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별세…향년 78세
입력2023.08.26. 오전 10:40
수정2023.08.26. 오전 10:43
김석원 전 쌍용그룹회장
(서울=뉴스1) 장도민 기자 = 쌍용그룹을 이끌어온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26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성곡언론문화재단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이날 새벽 3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194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아 재계 6위까지 키웠다. 쌍용중공업과 쌍용건설을 만들고 효성증권을 인수했다.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해 설립한 쌍용자동차도 대표적인 사업이다. 그러나 무리한 자동차 사업 확대로 인해 경영이 위기에 빠지면서 결국 그룹은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용평 스키장을 리조트로 개발해 동계 스포츠와 레저산업 발전에 기여했다고도 평가 받는다.
김 전 회장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특1호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 20분. 장지는 강원도 용평 선영이다.
엄청난 자동차 애호가여서 쌍용자동차를 설립함.
아버지이자 쌍용 창업주인 김성곤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이었는데 10.2 항명파동(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내무부장관 오치성의 해임안을 가결)에 얽혀서 남산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정계를 강제로 은퇴당함.(견제세력이 없어져버린 박정희는 이후 유신을 선포하는 등 완전 폭주해버림)
그 뒤로 김성곤은 아들들한테 정치를 절대로 하지 마라고 당부했음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던 그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대구 달성군(아버지의 지역구이기도 했음)에 출마해 당선되어 대구의 유이한 신한국당 의원이었지만(나머지는 서구 을 강재섭)
전두환 비자금 61억을 사과박스 25개에 숨긴 게 발각돼서 결국 의원직에서 사퇴함.(사과박스의 유래가 바로 이 사건)
자기가 직접 설립한 쌍용자동차도 망해버림.(당시 우리나라는 소형차, 준중형차 위주였는데 고급차에만 집착해서 망해버렸음)
결국 쌍용차의 적자를 못 버틴 쌍용그룹(제지, 시멘트, 정유는 흑자였는데 쌍용차의 적자가 다른 계열사 흑자의 몇 배였음.)은 IMF때 해체됨.
재보선으로 당선된 그의 후임이 바로 박근혜
이 때부터 계속 당선된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음(아버지의 후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구에 쌍용자동차 공장도 짓고 있었지. 쌍용이 남아있었음 대구 경제가 여러모로 지금보다 나았을 텐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석원 회장이 쌍용차를 설립한 건 자동차 애호가인게 큰 영향이었는데(13살부터 몰래 운전했고, 미국 유학 시절에는 레이싱 스쿨을 수료할 정도)
고급차에 너무 집착한게 실패의 원인이었음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뒤 제일 먼저 한 게 연구개발 명목으로 포르쉐 959를 수입한 거임
쌍용에서 만든 차 중에서 가장 걸작이 칼리스타
영국 팬더 웨스트윈드를 직접 인수해서 만든 차임
그런데 차는 좋은데 그만큼 아주 비싸서(당시 가격으로 약 3000만원) 사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1994년 단종될 때까지 78대밖에 생산 안 돼서 처참하게 망해버림
아버지 김성곤이 당부한 대로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나마 지금보단 조금 나아졌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