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가 드러낸 한국식 행정 시스템의 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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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으로 가득한 새만금 잼버리가 조기 철수로 막을 내렸다. ‘개발의 마중물’로 기능한 잼버리는 한국식 지역개발 모형에 경종을 울린다. 유치부터 철수까지, 주요 국면을 톺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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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8일 전북 부안군에 위치한 새만금 잼버리 대회장에 조기 철수하는 대원들을 태우기 위한 버스가 긴 줄을 이루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전국 각지에서 모인 버스는 남은 천막보다 많았다. 8월8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새만금 잼버리)가 조기 철수로 막을 내렸다.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야영지에서 철수한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수도권, 충청권 등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물웅덩이가 들어찬 숙영지, 열악한 의료·위생 시설, 폭염과 해충 문제, 조직위의 파행 운영과 공동위원장을 맡은 정부 고위층의 이해되지 않는 발언, 여기에 철수 직후 벌어진 미숙한 행정까지. 연쇄적으로 터져나온 각종 잼버리 이슈가 한국 행정 시스템의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
잼버리는 당초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국가 단위로 홍보에 열을 올린 이벤트와는 달랐다. 그저 전 세계 4만3000여 스카우트 대원(대다수는 청소년)이 한데 모여 야영하며 본인들끼리 교류하는 행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12일간 예정되어 있던 이 행사를 파국으로 몰고 간 중앙·지방 정부의 무능에 시민들과 전 세계가 큰 충격을 받으면서 잼버리는 이슈의 중심에 섰다. 그제야 사람들은 묻는다. 전혀 눈에 띄지 않던 이 국제행사는 어떻게 단 며칠 만에 한국 사회의 모순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드러내게 되었느냐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달되는 뉴스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잼버리는 지난 9년 동안 세 번의 정권을 거치며 나름의 서사를 쌓아왔다. 개막 직전까지 ‘위기 경보’가 수차례 울렸고, 사태를 수습할 만한 ‘골든타임’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잘못 끼운 단추를 알고도 모른 척했고, 중앙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잼버리 개최 직후까지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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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8일, 홍콩 스카우트 지도자들이 짐을 가지고 대회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 잼버리는 어떻게 새만금에서 열렸나
새만금 잼버리 사태의 핵심 원인은 땅이다. 숙영지에 내린 빗물이 빠지지 않아 웅덩이 위에 플라스틱 팔레트를 깔고 텐트를 설치해야 했다. 그늘 없는 습지에서 참가자 4만여 명은 온열질환과 해충 피해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번 사태의 근원을 쫓아가려면 문제가 된 이 ‘땅’이 어떻게 잼버리 개최지로 결정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세계스카우트연맹(WOSM)이 4년에 한 번씩 주최하는 국제 야영 대회다. 전라북도 지역에서 처음 잼버리 유치 목소리가 나온 것은 2011년이다. 그러나 국내 개최 후보지 선정 절차가 한 차례 취소되면서 이후 4년간 잼버리는 ‘끝난 일’처럼 여겨졌다. 잼버리 유치전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2015년이다. 송하진 당시 전북도지사를 중심으로 잼버리 유치 요구가 지역 정치권에서 대두되었다. 그해 9월, 박근혜 정부는 또 다른 후보지였던 강원도 고성군 대신 전북 새만금 일대를 국내 후보지로 선정했다. 이때부터 최종 개최지가 결정되는 2017년 아제르바이잔 바쿠 세계스카우트총회까지 전 세계 회원국을 대상으로 유치전이 펼쳐졌다.
두 가지 질문에 직면한다. 전북은 왜 하필 잼버리를 원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새만금인가. 잼버리는 여타 국제 메가 이벤트에 비해 ‘저비용 고효율’ 성격을 갖는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는 경기장 건축, 숙박시설 정비, 행사 이후 시설 유지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필요한 예산이 ‘조 단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13조8000억원이 들어갔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도 2조5000억원이 소요됐다. 그러나 잼버리는 이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다. 야영을 하기 때문에 숙박 문제 고민도 덜하고, 행사장 설비 대부분이 임시 시설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잔존 시설물(경기장, 선수촌 시설 등)을 유지하는 비용도 추후에 들지 않는다.
2016년 국제행사 타당성 조사를 맡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새만금 잼버리가 491억원을 들여 163개국, 5만명을 초청할 수 있다며(실제로는 1171억원, 158개국, 4만3000명) 국내에서 열린 여타 메가 이벤트에 비해 ‘예산 대비 참가자 수가 월등히 많은 국제행사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45개국 1만명), 2013년 충주조정선수권대회(50개국 2000명, 예산 약 1300억원), 2011년 대구육상선수권대회(207개국 6000명, 예산 4600억원)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비용 대비 운집 인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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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잼버리 개최 지역으로 새만금이 확정되자 송하진 당시 전북도지사(가운데 위)를 비롯한 유치단이 환호하고 있다. ©전북도청 제공
당시 전라북도가 집행하겠다고 밝힌 예산 규모도 나름 합리적인 수준에 가까워 보였다. 판단 근거가 된 지표는 2015년 일본 야마구치현 기라라하마 간척지에서 열린 ‘일본 잼버리’였다. 2015년 일본 잼버리는 약 41억7000만 엔(약 381억원)을 들여 3만여 명을 초청했는데, 당시 환율을 고려했을 때 전북도가 주장한 491억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재원 조달 구조도 잼버리 유치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당시 전북은 국비 54억3000만원, 지방비 126억7000만원이 들어가고, 나머지 310억원(63.1%)은 각지 스카우트 대원들의 참가비 등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역시 2015년 잼버리 운영 당시 참가비의 비중이 67.7%에 달했다. 타당성 평가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잼버리의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글로벌 리더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입시 위주인 우리 청소년 정책의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개최가 타당하다고 보고했다.
청사진은 아름다웠다. 비용 문제도 앞선 사례(일본)를 참고할 때 나쁘지 않아 보였고, 행사 개최 이후 골치 아플 일(시설 유지)도 덜해 보였다. 그런데 두 번째 질문, 왜 하필 새만금이냐는 질문이 남는다. 전라북도가 단순히 잼버리라는 행사를 통해 국제 무대에 지역을 알리려고 했다면 새만금 말고도 선택지는 많았다. 이미 1982년 아시아-태평양 잼버리(약 1만2000명 참가)를 열었던 무주군 일대에서 개최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라북도의 핵심 목표는 새만금이었다. 정확하게는 새만금이어야만 했다.
■ 메가 이벤트라는 지렛대
2017년 8월1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한국의 새만금은 폴란드의 그단스크를 누르고 2023년 잼버리 개최 지역으로 선정된다. 이후 전라북도는 여러 보고서와 자료를 통해 새만금 잼버리의 효과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잼버리를 유치하려 했던 진짜 배경도 이때 발간한 자료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잼버리는 사회간접자본(SOC)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에 가까웠다.
2018년 8월 전라북도가 발간한 ‘유치활동 결과보고서’는 ‘유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2010년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된 후 전라북도는 새만금 내부 개발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2020년까지 계획된 SOC 등이 더디게 추진되고 있었다. 이에 전라북도는 국제공항 건설 및 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 필요했다.”
중앙정부의 SOC 투자에 대한 기대감은 전북연구원이 2018년 8월에 발표한 ‘2023 세계 잼버리 유치 기대효과 및 극대화 방향’ 보고서에도 담겨 있다. 이 문건에서 전북연구원은 잼버리 개최 기대효과로 ‘SOC 조기 구축 효과’를 강조한다. “새만금 용지 및 기반시설 조성 완료 시점이 앞당겨지게 될 경우 경제적 파급효과를 조기에 얻을 수 있기에 사회적 할인율을 적용한 조기 구축 효과가 있다.” 이 말을 쉽게 풀자면 이렇다. 잼버리 개최 장소인 새만금은 당초 2030년까지 총 25.3조원(당시 기준)을 들여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잼버리를 유치한 덕분에 매립 등 공사를 앞당겨야 하고, 개발이 앞당겨지는 만큼 이득이라는 의미다. 당시 전북연구원은 SOC 조기 구축을 통한 경제효과가 약 3조6216억원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잼버리를 개최함에 따라 생겨나는 생산유발효과는 약 755억원 수준에 그쳤다. SOC를 통한 간접적 이득이 잼버리 행사를 통한 직접적 이익보다 약 48배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잼버리 유치 확정 직후 중앙 정부의 각종 SOC 특혜가 뒤따랐다. 새만금 국제공항 사업은 2019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고, 새만금 남북축 도로, 새만금-완주 고속도로 등 각종 도로개발 사업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SOC 지원의 정점은 ‘땅 만들기’였다. 아제르바이잔 총회 직후인 2017년 8월25일, 전북연구원은 ‘유치효과와 추진 방향’ 문건에서 “잼버리 야영지인 새만금 관광레저 1지구에 대해 공공 주도 매립을 통한 부지 확보가 필요하며, 전기, 수도, 하수시설 등의 기반시설 조성이 필요하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새만금은 땅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를 유치해냈고, 기반시설 조성 비용은 당초 ‘잼버리 예산’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중앙정부의 ‘잼버리 구하기’가 펼쳐진다.
■ 농지를 만드는 바람에 물이 고였다
새만금 잼버리가 열린 전북 부안군 하서면 인근 매립지는 새만금 기본계획상 관광·레저 용지가 될 예정이었다. 새만금 개발의 청사진을 담은 새만금 기본계획은 각 용지를 산업·연구, 국제협력, 농생명, 관광·레저, 환경·생태 등으로 구분해둔다. 문제는 관광·레저 용지의 경우 사업자가 있어야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리조트를 짓겠다는 사업자가 나타나야 해당 용지를 본격적으로 매립하고 땅을 공사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식이다. 그러나 2017년 당시 잼버리 부지는 사업자를 따로 구하기도, 그렇다고 전라북도가 자체 비용을 들여서 매립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우회 경로를 통해 국비를 들이기로 결정한다. 잼버리가 열리는 땅을 일단 농생명 용지(농지)로 매립하기로 한 것이다. 2017년 12월6일,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19차 새만금위원회를 열고 새만금 잼버리 부지 8.84㎢를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리하는 농지관리기금을 활용해 2022년까지 우선 매립하겠다고 밝혔다. 잼버리 이후에는 이 땅을 일정 기간 농지로 활용하고, 추후 다시 관광·레저용으로 매각해 농지관리기금에 돈을 돌려준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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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18일, 새만금 잼버리 예정지인 해창갯벌의 모습. 정부는 농지기금을 활용해 이곳을 농지로 만들었다. ©시사IN 이명익
문제는 산업용지 등과 달리, 농지는 매립의 방식과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새만금은 개발 범위가 워낙 넓어 지역에서도 ‘매립에 투입되는 흙을 어디서 가져올 것이냐’가 십수 년 전부터 논란이었다. 산업용지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재를 가져다 매립에 활용하기도 했다. 일부 구역은 제강 슬래그(철강 생산 후 남는 부산물)를 매립에 사용하기도 해 유해성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농지는 주로 해사토(바다 밑바닥에서 파낸 모래)나 준설토(강 하구에 쌓이는 모래) 등을 퍼다 매립한다. 지역 환경단체들은 잼버리 야영장을 매립하는 데 쓴 흙이 이미 염분을 많이 머금고 있기 때문에 그늘을 만들 만한 조경이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농지의 경우 산업용지와 달리 지대를 높여 단단하게 만들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타 산업용지처럼 지대를 높게 만들더라도, 행사가 끝나면 이 땅을 농지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그 흙을 걷어내야 한다. 지대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추후 용지 개선 비용이 소요되는 셈이다.
농지로 땅을 만드는 바람에 ‘일회성 행사를 위한 각종 시설 공사’가 추가로 필요했다. 애초에 관광·레저 용지로 잼버리 야영장을 매립했다면 전기, 수도, 하수시설 등을 고려하며 땅을 구축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이 전라북도가 롤모델로 삼았던 일본 야마구치현 잼버리와의 차이다. 2015년 잼버리가 열린 일본 야마구치현 기라라하마 간척지는 60여 년 전에 이미 물막이 공사가 끝난 유휴지였다. 이곳 부지에서 2001년 처음으로 박람회를 개최하며 기반 설비를 마련했고, 공원화 작업이 된 부지에서 잼버리를 개최했다. 땅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잼버리를 유치한 새만금과는 시작부터 달랐던 셈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세계스카우트연맹은 ‘아직 있지도 않은 땅’에 잼버리 개최를 허용한 것일까? 2016년 8월, 세계스카우트연맹 실사단은 이틀 동안 부안군을 방문해 잼버리 예정 부지를 살펴보고 갔다. 이 실사 프로그램에서 한국 준비단은 부안 잼버리공원, 야영장 일대 외에도 변산반도 일대에서 각종 ‘영외 활동(야영지를 벗어나 수행하는 활동)’ 후보지를 소개했다. 이때 산악 체험(변산반도 마실길), 갯벌 체험(줄포만), 직소천 수상스포츠 등을 실사단은 살펴봤다. 단순히 새만금 야영지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기보다는 변산반도국립공원 일대에서 진행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실사단은 새만금 일대의 8월 한낮 더위는 체감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가 발간한 ‘유치활동 결과보고서’에는 당시 실사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수차례 실사 리허설을 하면서 더위가 염려되어 (실사단의) 야외 현장(일정)을 비교적 선선한 아침과 저녁 시간대로 조절하고 낮에는 실내 관람 위주로 동선을 보완함.” 한낮에 실사를 했다간 점수가 낮을 것을 우려했다는 얘기다. 실사단 입장에서는 아직 매립하지 못한 ‘야영지의 미래 모습’도 한국 측이 제시한 조감도(아래 그림)에 의존해 예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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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준비 초창기 행사장 조감도. 당초 숲이 우거진 대회장을 약속했지만 모두 공염불이 되었다.
■ 경고등과 골든타임
2020년 11월30일, 전라북도는 새만금 잼버리 예산을 기존 491억원에서 846억원으로 증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다. 예산이 1.7배 늘어난 셈이다. 갑자기 필요 예산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전라북도의 예산 증액의 타당성을 검토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20년 12월에 공개한 ‘간이 타당성조사 결과보고서’에 상세 항목이 나와 있다.
예산이 늘어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프레잼버리(Pre-Jamboree)’ 개최다. 세계스카우트연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행사 사전 점검을 위해 ‘리허설 행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유는 ‘시설비 증액’이다. 종전까지만 해도 70억원이면 야영장 설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던 전라북도는 2020년이 되어서야 기반시설(전기 등), 대집회장(공연장), 영외 활동장(직소천) 구축에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증액된 시설비만 317억원에 달한다. 앞서 언급한 전기, 수도, 하수시설 등을 이때 비로소 다급하게 보충하려 한 셈이다.
부지 매립 공사도 2020년 들어서야 본격화되었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당시 잼버리 부지 공사를 이렇게 설명했다. “프레잼버리를 고려하면 2020년부터 2년 안에 땅을 다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물리적으로 힘들다. 땅을 매립하더라도 지반이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지역 환경단체들이 세계스카우트연맹과 여성가족부에도 문제가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대로는 잼버리도 힘드니 차라리 노출지(매립되기 전부터 수면 위로 노출되어 있던 곳)에서 대회를 하는 게 낫다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대회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는 부지 변경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미 잼버리를 지렛대 삼아 각종 SOC 사업을 벌이던 터라, 선뜻 개최 부지를 변경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개최 시점까지 시간은 흐르지만, 기반시설 공사는 여전히 더뎠다. 결국 조직위원회는 2022년 3월, 세계스카우트연맹에 ‘행사를 1년 연기해달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른다. 코로나19로 인해 그해 8월에 개최할 프레잼버리 행사에 외국 참가자를 모집하기가 어렵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해 4월12일 세계스카우트연맹 이사회는 한국의 잼버리 1년 연기 건의를 ‘불허’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대회 준비를 미루는 가능성은 이때 사라졌다. 당시 조직위원회는 당장 눈앞에 다가온 프레잼버리를 성공적으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주장은 3개월 만에 공염불이 되고 만다. 예산 증액의 근거가 되고, 세계스카우트연맹이 ‘꼭 개최해야 한다’고 강조한 프레잼버리는 지난해 7월, 한국 정부의 결정으로 취소되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청소년들이 야영장에서 밀집해 있을 경우 감염병 확산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때 지역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돌았다. 잼버리 부지가 여전히 미완성이라서 프레잼버리를 치르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2022년 10월2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김제·부안)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코로나19는 프레잼버리 취소의) 표면적 이유다. 지난 8월 첫째 주, 둘째 주에 잼버리 대회 예정 부지에 장마가 와서 배수가 안 되고 있는 상황인데 보고 안 받으셨나. 폭염·폭우 대책과 해충 방역·감염 대책 등을 점검해야 한다”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이정현 공동대표 역시 당시 상황에 대해 “프레잼버리가 취소됐을 때가 마지막 골든타임이었다. 개최지를 그때라도 옮겼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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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새만금 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중앙정부의 안일한 대응
잼버리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는 크게 세 축으로 나뉜다. 청소년 정책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전라북도, 그리고 한국스카우트연맹이다. 행사 날짜가 다가올수록 조직위원회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예산이 모자랐다. 기초 부지 공사는 지난해 말에 마무리되었으나 배수 문제가 대회 직전까지 반복됐다. 폭우가 내릴 때마다 물이 고였고, 축조해둔 배수로가 허물어지기 일쑤였다. 행사 직전까지 준비가 얼마나 미흡했는지는 잼버리 현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지상 3층짜리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건물은 당초 운영진과 의료진이 사용하는 건물로 계획되었으나, 실제 준공은 2024년 3월로 예정되어 있다. 잼버리 기간에는 준공도 되지 않은 건물을 임시로 사용한 셈이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이 같은 위기 신호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벼락치기’라도 해야 한다. 지난해 7월 프레잼버리 취소 시점이 개최 부지를 변경할 마지막 골든타임이었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정해진 부지의 땅을 다지고, 인력을 충원하며, 행사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조직위원회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중앙정부는, 잼버리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하고 말았다. 국무위원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이었고, 올해 2월에는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직위에 합류했지만 중앙정부의 ‘벼락치기’ 대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앙정부 핵심 관계자들이 직접 뱉은 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9월21일 여성가족부는 김현숙 장관의 현장 시찰 이후 “공사가 정상 진행 중이다”라고 발표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부지 공사가 끝났어야 했지만 위기를 제때 감지하지 못한 셈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잼버리 개막 직전인 7월29일 현장을 찾아 “기반 시설과 스카우트 대원의 숙영을 지원할 시설 설치를 완료했고, 활동장도 대원들을 맞을 채비를 마쳤다.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잼버리로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물웅덩이가 사방에 널린 숙영지 현장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사태 수습 국면에서도 중앙정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순간이 ‘조기 퇴소’와 ‘케이팝 공연 변경’이다. 정부는 잼버리 참가자들을 전국 지자체에서 마련한 임시 숙소로 분산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오히려 혼란이 계속됐다. 8월8일 충남 홍성군은 충청남도의 요청에 따라 지역에 위치한 혜전대학교에 예멘 참가자들을 위한 숙소와 식사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날 밤 9시가 되어서야 지역 경찰로부터 “예멘 참가자들은 입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홍성군이 역으로 행안부에 확인을 하고 나서야 예멘 참가자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에서도 당초 120명이 묵을 장소를 마련해달라는 요청을 행안부로부터 받았지만, 실제로는 8명밖에 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만금 잼버리의 메인 이벤트로 꼽혔던 케이팝 공연도 주먹구구 행정의 유탄을 맞았다. 조직위원회는 당초 8월6일에 잼버리 행사장 내 대공연장에서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온열질환자가 폭증하자 해당 공연은 8월11일 저녁 전주 월드컵경기장으로, 다시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으로 일정과 장소가 바뀌었다. 공연 날짜가 바뀌자 출연 아티스트들을 새로 섭외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8월11일 예정된 KBS 〈뮤직뱅크〉를 취소시키면서까지 ‘잼버리 마무리 공연’을 강행했다. 공개방송 음악 프로그램이 있는 날에는 아티스트 섭외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공연 연출 역시 〈뮤직뱅크〉 제작진이 담당케 되면서 ‘정부가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강압적으로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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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잼버리를 조기 퇴영한 스카우트 대원들이 8월7일 서울 용산역에서 대기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 한국식 지역개발 모델에 의문 남긴 잼버리
파행을 거듭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정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당은 새만금 잼버리가 문재인 정부 당시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야당은 잼버리 행사를 제대로 수습하지 않은 현 정부의 책임을 따진다. 그러나 새만금 잼버리의 전사를 살펴보면, 지난 9년 동안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모두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성 대신 새만금을 개최 후보지로 선정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농지 매립’ 방식을 동원하며 전라북도가 원했던 SOC를 지원했다. 프레잼버리 개최 실패라는 경고음이 울렸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세 번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잼버리는 본질과 달리 ‘개발의 마중물’로만 기능한 셈이다.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는 한국식 지역개발의 전형을 보여준다. 인구도, 자원도 부족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국제행사를 지렛대로 삼는 것은 2010년대 들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4조원이 넘는 서울-강릉 고속철도를 남겼다. 2010년부터 개최됐던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2013년 충주 세계조정선수권,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그리고 유치 경쟁 중인 2030년 부산 세계박람회까지. 지역에서 추진하는 메가 이벤트에는 항상 중앙정부의 SOC 선행 투자가 목표처럼 제기됐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는 어쩌면 이런 한국식 지역개발 모형에 그저 충실한 결과일지 모른다. 지난 5월16일 〈전북일보〉 수석논설위원의 칼럼에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새만금 활성화를 위해 잼버리를 유치했듯, 이젠 더 비중 있는 매머드급 국제대회 등 초대형 프로젝트를 유치해야만 한다. 그래야 지역발전이 앞당겨지고 새만금 일대의 인프라 확충에 큰 전기가 마련된다.” 이 같은 인식이 비단 전북 지역에만 남아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감사로 아주 탈탈 털어야함
애초에 이곳에서 행사를 할 생각을 하다니
몇년간 이곳 땅 다지는데에만 시간과 비용을 다 썼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