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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父 재평가' 이끈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 별세… "이승만 복권에 가장 큰 역할한 분"

뉴데일리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바로 알리는데 앞장섰던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경남 진주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인문대학원 역사·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휴스턴대 역사학과에서 교편을 잡은 뒤 국내로 귀국해 고려대 사학과 교수, 한림대 사학과 교수,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객원교수, 한림대 부총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역사학회 회장,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창립소장 등을 지냈다. 2013∼2015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하성학술상, 성곡학술문화상, 경암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유 전 위원장은 국내에서 평가절하돼 있던 '국부(國父)' 이승만을 재조명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미국 유학시절인 1964년 하버드대학교 동양학도서관에서 발견한 낡은 표지의 <독립정신>를 읽은 뒤부터 그는 이승만에 푹 빠졌다.

4.19 세대였던 그가 알던 이승만과의 괴리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당시 유 전 위원장은 <독립정신>을 읽고서 이승만에 대해 "그가 20세기 초 한국의 최고 선각자요, 빼어난 문장가임을 깨달았다. 그를 새롭게 평가해야 했다"고 언급했다.

이승만에 대한 그의 연구는 1994년 겨울, 이화장(梨花莊)으로부터 온 갑작스런 연락을 통해 빛을 발했다.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는 유 전 위원장에게 이승만의 일기와 편지·사진 등 문서 등을 건네며 "유 교수가 정리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유 전 위원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한글과 국한문, 한자, 영문으로 작성된 10만여 장에 달하는 문서들을 일일이 살피는 과정에 대해 유 전 위원장은 "내용의 난해함에 어리둥절했다"면서도 "천운이었다"고 밝혔다.

이화장으로부터 방대한 양을 기증받았으나, 혼자 해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연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이승만 연구에 몰입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승만 연구를 전담으로 하는 '현대한국학연구소'를 1997년 설립했다.

당시 이승만을 손가락질했던 역사학계 등으로부터의 방해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회피였다. 이 연구소에서 2011년 '이승만연구원'이 분리 출범하면서 이승만 연구는 또 한 번 날개를 달았다.

이승만연구원 초대 원장을 역임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는 28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유영익 교수가 바로 이승만 재발견의 시작이었다"며 "사람들에게 이승만이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는 큰 흐름을 만든 장본인이자, 이승만 복권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라고 말했다.

유 전 위원장은 <이승만의 삶과 꿈>(1996), <이승만 연구>(2000), <젊은 날의 이승만>(2002),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2006), <건국 대통령 이승만>(2013) 등을 집필했다. 2019년에는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 비전>을 펴내면서 20여년 세월을 바친 이승만 연구에 대한 결산을 발표했다.

400쪽 분량의 이 책에서 그는 "이승만은 동서양 학문에 두루 통달했던 천재였다. 배재학당을 졸업한 1897년부터 호놀룰루에서 서거한 1965년까지 쉬지 않고 조국을 생각한 애국자였다. 고집스럽게 친미외교 독립노선에 집착한 나머지 정견을 달리하는 독립운동가들과 융화화지 못했다. 그들로부터 소외, 배척당하며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적었다.

국내에서 이승만을 연구하는 인물은 유 전 위원장이 사실상 유일했다. 그는 '현대사를 제대로 알고나서 비판할 건 비판하고, 대접할 건 대접해야 한다'는 주의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유 전 위원장은 이승만을 비판해온 주류 역사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위 '왕따'였다고 동료 교수들은 기억하고 있다.

류 교수는 "이승만에 관한 사료를 누구보다 많이 보고, 누구보다 연구를 많이 하셨다"며 "이승만 재평가에 앞장섰는데, 역사학계 안에서는 완전히 왕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류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 국사편찬위원장에 임명됐을 때도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면서 "이승만에 관한 일을 하겠다고 한 저에게 꼭 연구의 계보를 이어달라고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유 전 위원장은 이승만 연구에 일생을 바치면서 그의 업적을 7가지로 정리했다. △미국식 대통령제의 확립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70만 대군의 육성 △농지 개혁 △교육 기적 △양반제도의 근절 및 남녀 평등의 구현 △기독교의 확산 등이다. 유 전 위원장은 "이러한 일들은 이승만이 아니면 실현될 수 없었던 고유한 업적"이라며 "7대 업적은 이승만이 지금의 한국에 남긴 유산"이라고 했다.

평생 이승만을 지켜온 유 전 위원장의 빈소는 오는 29일 서울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발인은 31일 예정이다. 유족은 아들 유승덕 주일미대사관 상무관 등이 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7/28/20230728001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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