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강모 이사가 업무 외 사적인 용도(카페 이용비 등)로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사직을 박탈당한 전례가 있는 KBS 이사회에서 또다시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 KBS 이사 한 명이 도마 위에 올랐다면 이번엔 이사장을 포함한 총 3명의 이사가 법인카드 부정 사용 의혹에 휘말려 파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수신료 분리징수 위기를 자초한 KBS 경영진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KBS 이사회가 국민의 수신료로 만들어진 업무추진비를 남용했다는 비판까지 받으면서 KBS 집행부와 함께 현 이사회의 '동반 총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4차례 걸쳐 총 737만원 지출‥ 청탁금지법 위반"
남영진 KBS 이사장은 2021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총 34차례 결제한 737만원가량의 법인카드 지출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소위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KBS노동조합(KBS노조, 위원장 허성권)과 '새로운 KBS를 위한 KBS 직원과 현업 방송인 공동투쟁위원회(새KBS공투위)'에 따르면 남 이사장은 2021년 11월 18일 9명의 언론계 인사를 만나면서 27만6000원을 결제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5월 26일 14명의 학계 인사를 면담하면서 61만5000원을 결제한 것까지, 인당 3만원 이상 업무추진비를 집행해 김영란법을 위반한 횟수가 34회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KBS 홈페이지에 공개된 남 이사장의 법인카드 집행 기록을 전수조사한 KBS노조는 "회사가 공표한 내용의 '대상 인원'으로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를 따져본 결과 총 737만7100원의 집행 금액이 김영란법 위반으로 확인됐다"며 "이 기간 남 이사장은 인당 3만원 초반대부터 많게는 5만원 초반대까지 지출했고, 한 번은 한국방송공사공제회에서 49만1400원어치 기념품을 구매해 7명에게 나눠준 적도 있다"고 거론했다.
KBS노조 관계자는 "남 이사장이 지난해 말 공제회에서 49만원어치의 기념품을 구입해 신원미상의 7명에게 선물한 행위는 청탁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선물 금액의 한도(5만원)를 초과한 것으로 보이나, 만일 농축수산물을 구입한 것이라면 한도가 10만원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나머지 33건의 경우 모든 결제 내역에 '대상 인원'이 명확히 기재돼 있어, 남 이사장이 김영란법을 위반한 사실을 변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업무추진비 집행 목적도 '언론인 면담' '학계 면담' '시청자 면담' 등으로 돼 있는데, 실제로 언론·학계 관계자나 시청자를 만났는지도 의심스럽다"고 이 관계자는 추정했다."외부인과 밥 먹고… 법카 집행 목적, '직원 격려'로 적어"
새KBS공투위에 따르면 남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종로구 한식집(산O)에서 직원을 격려하는 목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했는데, 이날은 평일이 아닌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새KBS공투위 관계자는 "남 이사장은 왜 공휴일에 직원을 시내로까지 불러 격려를 했고, 또 그 직원은 무슨 이유로 토요일에 시내로 나가 이사장을 만났는지 궁금할 뿐"이라며 "이사장이 사적으로 인연이 있는 직원을 공휴일에 불러 밥을 사줬다면 그것이 공적인 비용의 집행 대상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이날 17만4000원을 결제한 남 이사장은 대외인과 식사를 했다고 적어 놓고 '집행 목적'을 '직원 격려'라고 쓰는 이상한 기록을 남겼다"며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가족 대신 언론인 4명을 고급 양식집(라OOO)에서 만나 15만6000원을 집행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지출 내역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남 이사장에게는 더욱 큰 문제가 있다"며 "남 이사장이 지난 한 해 동안 김영란법을 위반한 집행 금액 총액이 409만원에 이른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탁금지법은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년도 합산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남 이상의 지난해 집행 금액 전체가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인정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KBS 1TV '6시 내고향'에 A영농법인 대표 출연
KBS노조에 따르면 남 이사장은 2021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3차례 A영농법인에서 수백만원대 곶감을 선물용으로 구입했는데, 이 영농법인의 대표 이OO 씨는 남 이사장의 고향 후배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2021년 12월 28일 3만3000원짜리 곶감 상자를 이사회 사무국 직원 등 20명에게 보내면서 66만원을 결제했고, 지난해 1월 31일 곶감에 호두가 포함된 5만원짜리 선물세트를 직원 등 25명에게 보내면서 125만원을 결제했다.
또 올해 1월 25일에도 곶감·호두 선물세트를 39명에게 보내면서 183만3000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2일에도 총 20명에게 곶감 선물세트를 보냈는데, 이때에는 A영농법인이 아닌 D통상이라는 곳에서 70만원을 결제했다.
남 이사장은 2019년 1월 당시 자신이 논설고문(상임고문)으로 있던 인터넷신문 B사에 <'향수'를 파는 서울 도심의 영동곶감 물산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올리며 A영농법인이 주최한 곶감 특판 행사를 홍보하기도 했다.
KBS노조는 "이OO 대표와 A영농법인은 올해 1월 KBS 1TV '6시 내고향'에 출연하기도 했다"며 남 이사장과 동향인 이 대표가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배경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 같은 지적에 6시 내고향 제작진은 "7월 14일 자 KBS노조 게시물에 우리 프로그램이 언급돼 입장을 밝힌다"며 "이 대표라는 인물은 남영진 이사장의 이름도 모르는 4년 차 작가와 피디가 제작 현장에서 섭외했고, 그 외 '6시 내고향' 제작진 누구도 어떠한 청탁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제작진은 "당일 방송된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위축된 국내 농수산물의 소비 진작을 위해 제작됐다"며 "전국의 20여 가지가 넘는 특산물 후보를 추려 제작진의 공정한 내부 의사 결정을 통해 선택돼 소개됐으며, 출연하는 농어민 및 생산관계자 섭외 또한 방송 적합성, 농산물에 대한 설명이 가능한지 여부, 본인의 출연 의지 등 일반적인 프로그램 섭외 원칙을 따랐다. 그 외 다른 고려 사항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다단계용품 업체서 곶감 구입한 것도 이상"
KBS노조는 남 이사장이 한 다단계용품 업체에서 곶감을 산 것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KBS노조는 "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2일 D통상이라는 곳에서 총 20명에게 선물할 곶감 세트를 구입했는데, 이 업체는 다단계용품 업체로 확인됐다"며 "이 업체가 고향 자택의 바로 옆에 위치한 것도 의심스러운 데다가 어떻게 도소매생활용품을 파는 다단계업체에서 곶감을 구입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KBS노조는 "남 이사장이 D통상에서 곶감 세트를 구입한 당일 '언론인 면담' 명목으로 고향 소재 식당에서 법인카드로 밥을 먹었다"며 이 점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명을 하라고 촉구했다.
KBS노조는 앞서 남 이사장이 "지난해 'KBS 정기이사회 후 열린 만찬'과 '이사회와 집행기관, 센터장, 관계 직원들이 함께 한 송년회 자리'에서 좌장 자격으로 결제했다"고 해명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KBS노조는 "남 이사장은 '이사회가 참석했다'고 했는데, 확인 결과 참석 대상인 이사들이 불참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남 이사장이 결백하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참석 인원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KBS노조는 "남 이사장뿐 아니라 다른 이사들도 법인카드를 불법적으로 사용한 정황이 확인됐다"며 "'언론인·교수 면담' 및 간담회를 명목으로 1인당 식사 비용이 최대 9만원에 육박하는 등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서 규정하는 3만원을 훌쩍 넘긴 사례가 속출했다"고 주장했다.
KBS노조에 따르면 C이사의 경우 KBS 인근 유명 백화점에서 20여만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는데, KBS 홈페이지에 해당 업무추진비를 무슨 용도로 사용했는지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이사의 경우 법인카드에 백화점은 물론 건축자재업체나 카드단말기 업체가 기록됐고, 휴일에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 모처에서 법인카드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KBS노조는 "KBS 이사들이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수신료로 만들어진 업무추진비를 불법적으로 사용해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며 남 이사장과 두 명의 이사들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업무 관련 인사들에게 3만~5만원대 곶감 세트 선물"
한편 남 이사장은 지난 12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KBS노조의 주장은 매달 KBS 홈페이지를 통해 1년이 넘도록 공개돼 있는 내용으로, 국회와 감사원에도 제출된 자료"라며 법인카드를 부정하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남 이사장은 "KBS 이사장으로서 한 해 고생한 업무 관련 인사들에게 선물을 보내드리는 것은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2021년 12월 28일 제 고향 충북 영동군의 특산품인 곶감 3만3000원짜리 상자를 이사들과 이사회 사무국 직원 등 20명에게 보내면서 66만원을 결제했다"고 밝혔다.
"곶감에 대한 반응이 좋아 지난해 1월 31일 곶감에 호두가 포함된 5만원짜리 선물세트를 설 선물로 동료 이사들과 직원 등 25명에게 보냈다"며 "당시 125만원을 결제했다"고 밝힌 남 이사장은 "이후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에도 곶감·호두 선물세트를 각각 20명과 39명에게 보내면서 70만원과 183만3000원을 결제했다"고 덧붙였다.
남 이사장은 중식당에서의 지출 내역도 공개했다.
남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155만9000원을 결제했다"며 "이날은 KBS 정기이사회 후 집행부와 함께 20여명이 참석한 만찬으로, 통상 두 달에 한 번은 이사회 후 함께 만찬을 해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불가능했다가 모처럼 자리가 마련돼 좌장으로서 결제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지난해 12월 28일 같은 곳에서 283만원을 결제했다"고 밝힌 남 이사장은 "당일은 이사회와 집행기관, 센터장, 관계 직원들이 함께하는 송년회로 30여명이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남 이사장은 "KBS노조가 이미 모두 공개된 내용을 마치 새로 파헤친 것처럼 호도하고, 이어서 경영평가를 거론한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한다"며 "경영평가 과정은 모두 규정에 정해진 절차를 지켰고,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 진행됐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반박했다.
남 이사장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원래 정기이사회가 끝나면 다같이 식사를 하는데, 한 번씩 제가 결재할 때 인원이 많다 보니 금액이 크게 나온 것"이라며 "또한 굳이 영동까지 내려가 곶감을 샀던 이유는 '고향 살리기 차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곶감이 싸고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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