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석열 대통령이 2018년 한국대법원 판결로 불거진 일제 강제징용 갈등을 해소하고자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전시노동자(징용 노동자)의 고통에 공감 표명 ▲히로시마 한국인원폭피해자위령비 공동 참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한국 시찰단 수용 등으로 호응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7일 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지난 3월 정상회담에서보다 더욱 우호적이고 진일보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3월 윤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저는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명확히 말씀드렸다. 이 정부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며 "저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대법원이 2018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반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리자 '제3자 변제안'이라는 절충안을 도출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좌파 진영으로부터 거센 비난의 포화를 맞아온 만큼, 기시다 총리가 이번 방한에서 어떤 호응조치를 내놓을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일본 언론과 일본 내 한일관계 전문가들, 그리고 외신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이 한일 양국에게 '윈윈'이라고 평가하는 한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둔 기시다 총리가 일본의 우경화 추세 속에서 자민당 내 강경파의 구미에 맞는 대한(對韓) 강경노선을 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더욱 성의 있는 호응조치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셔틀외교 복원으로 기시다 지지율 견인"... "기시다 발언, 尹대통령에게 운신의 폭 제공"
일본 영자신문 '재팬타임스'는 8일(현지시간)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한일 정상에게 '윈윈'이라고 사실상 평가했다.
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최근 처음으로 지지율 50%를 넘긴 사실을 언급하며 "한일 셔틀외교의 복원은 지난 몇 달간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을 견인한 일련의 외교적 승리"인 한편, '통렬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언급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이 윤 대통령에게 운신의 폭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8일(현지시간)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를 인용해 일제 식민지배 역사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심각한 국내적 비판에 직면한 윤 대통령의 노고(hard work)를 지지하겠다는 의사"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尹대통령에 대한 바이든의 찬사, 기시다 총리에 대한 압박이기도 해"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외교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찬사는 윤 대통령뿐 아니라 기시다 총리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의 분석을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영향력이 있는 당내 강경파들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만, 미국의 미묘한 압박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빅터 차(Victor Cha)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도 1일(현지시간) CSIS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긴급질의'(Critical Questions)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정치적 용단'(political courage)과 리더십을 발휘한 점을 언급했고, 이에 백악관 당국자들은 한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윤 대통령의 노력에 계속해서 찬사를 보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백악관 당국자들은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일본정부가 미지근한(tepid) 반응을 보인 데 따라 비공식적으로 (behind the scenes) 불만을 표명해왔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5월 초 방한을 계기로 더 많은 노력을 하기를(to do more) 기대(hope)하고 있다"고 밝혔다.
"日 강경파, 韓 '합의 번복 역사' 지적하며 또 다른 '양보'에 촉각"
재팬타임스는 기시다 총리가 "지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단행할 것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한편, "한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취해온 자민당 내 강경파의 우려도 해소해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때 체결돼 문재인 정부 때 파기(이행 중단)한 '2015년 위안부합의'를 한국 정부의 합의 번복 역사(Seoul’s history of backtracking)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면서 자민당 내 강경파들이 "기시다 총리가 화해를 시도하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며 그가 더 많은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직 외교관인 미야케 쿠니히코 캐논 글로벌 전략연구소장도 NYT에 "한일 관계의 90% 이상은 국내 정치"라며 "한국은 일본을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압박할 것이고 계속해서 '골대를 옮김'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길 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日강경파, 한일관계 진전 방해할 수도"… "자민당 의원 80명, 기시다에 '성급한 양보' 반대 표명"
마이니치 신문도 기시다 총리의 취임 이후 첫 방한은 "한일 관계가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수준에서 회복됐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지만, 일본 보수진영이 더 많은 진전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일본 국내정치적 측면에서 기시다 총리는 보수진영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국에 강경노선을 취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며 "보수진영은 1910~1945년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경시하면서 한국이 역사와 영토문제에서 과도하게 반응한다며 비난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자민당 내 온건파인 기시다는 총리가 된 이후 (일본 3대 안보문서 재개정 등) 강경파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펴옴으로써 권력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해왔다"며 한 자민당 의원을 인용해 "한국에 대한 일본 여론이 강경해지면 기시다의 접근법이 향후 변화할 가능성이 있고 추가적인 한일관계 개선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기시다 정부는 일본의 아시아 대륙 침략에 대해 역대 내각이 이미 사과한 만큼 또 다른 공식사과를 꺼려왔는데, 이는 자민당 내 강경파를 고려한 것"이라며 "3월 16일 한일정상회담 바로 전날에 자민당 의원 약 380명 가운데 80명이 기시다 총리에게 한국에 그 어떤 성급한 양보를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日 청년들, 좌파실패로 우경화 추세… 기시다 우경화도 배제 못해"… "극단적인 여론 통제해야"
마이니치신문은 또 "일본과 한국은 서로에 대한 극단적인 여론에 취약한데,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도 문제"라는 켄 짐보 일본 게이오대 교수의 의견과 함께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마련하는 데 실패한 좌파 정당에 실망한 일본 청년들이 점점 우경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가 청년들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한국에 대해 보수적인(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또다른 자민당 의원의 의견을 전했다.
"기시다, 尹에 '성의 있는 사과'로 보답했어야"… "기시다, 한국 우려 완화할지가 관건"
오쿠노조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 "윤 대통령이 보여준 "정치적 용단"에 대한 보답으로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입으로 한국에 대해 '성의 있는 사과'(sincere apology)를 함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가속화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친중 인사로 분류되는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 이끄는 블룸버그 통신은 한일 셔틀외교 복원을 "대북 공조, 중국의 부상을 견제(undercut)하기 위해 동맹국의 단합이 필요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승리"라고 평가하는 한편, 미국 랜드(RAND)연구소의 아오키 나오코 연구원을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제기되는 우려를 완화할 수 있을지가 이번 방한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5/08/20230508001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