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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수십년 첩보 활동에도 오판 되풀이"
우크라 항전 태세 얕봤나…"푸틴에 차마 보고 못했을 수도"
러시아 정보기관은 수십년 간 우크라이나 첩보 활동에도 침공 직전까지 속전속결 승리를 자신하는 오판을 저질렀다고 미국 매체인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WP는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제거하고 친러시아 괴뢰정권 수립을 맡았던 부서에서 이런 오판을 되풀이했다고 19일(현지시간) 진단했다.
WP는 우크라이나 등 정보기관 자료를 입수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당국자에 따르면 FSB는 침공 전부터 수도 키이우를 곧 장악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게 WP 분석이다.
실제로 FSB는 침공을 며칠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있는 정보원에게 미리 대피하라는 언질을 줬으며,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들어갈 추가 인력에 대비해 여분의 거처를 마련하는 등 사전 준비를 했던 정황이 포착됐다.
통신감청 결과 한 FSB 요원은 러시아의 점령을 지켜보고자 우크라이나로 떠나는 동료에게 "성공적인 출장이 되라"고 미리 자축하듯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FSB 요원은 수도로 진입하지 못했다. 개전 초기 예상보다 거센 우크라이나군의 항전에 러시아군이 후퇴하면서 FSB 계획도 같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FSB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무력화하지 못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강경 대응을 예측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예상했더라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이런 냉정한 판단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문스러운 점은 FSB는 해외 첩보 활동 중에서도 우크라이나에 가장 중점을 두며 수십년간 지속해왔고,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근거가 있었음에도 오판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일례로 작년 4월 한 우크라이나 리서치 업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추가 영토 침범에 대해 우크라이나 국민 84%가 '침공'이라고 간주했고 2%만이 '해방'으로 여겼다.
전쟁 직전 올 1월에 실시된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필요시 우크라이나를 방어할 준비가 됐냐'는 질문에 48%가 긍정으로 답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은 자국민 상당수가 러시아에 대항해 직접 무기를 들고 일어날 마음을 먹었다는 결의를 나타낸다고 평가했다.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를 두 차례 역임한 윌리엄 테일러는 "(러시아) 정보기관이 우크라이나를 이해하는 데 그렇게 높은 우선순위를 뒀고 군사계획이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어떻게 이렇게 틀릴 수가 있느냐"며 "FSB와 (러시아 정부) 고위층 사이 어딘가에 단절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러시아 말고도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나 미국조차도 이번 전쟁을 정확히 예측하진 못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 침공을 경계하는 동시에 전면전으로 치달을 정도로 전선이 확대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한 우크라이나 고위 관료는 "제2차 세계대전 스타일처럼 전차와 포병, 보병을 동원한 고전적인 침공은 상상도 못 했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대규모 지상전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누군가 문을 열어주길 기대했고 저항을 예상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도 러시아 의도를 꿰고는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항전 능력을 과소평가했다고 시인했다. 이 오판 때문에 미국이 일찌감치 중화기 등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길 망설여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FSB의 오판에도 아직 푸틴 대통령이 FSB 내 우크라이나 담당 부서의 책임을 물어 지도부를 경질하는 등 중징계를 내렸다는 징후는 나오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다만 러시아 군대처럼 FSB도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초점을 맞추도록 재편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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