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구 본관, 어떤 곳이길래…YS도 철거 후 모형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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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600:1 모형 만들어 효자동 사랑방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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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구 본관. (사진=대통령기록관)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 구 본관 모형을 제작하겠다고 밝히며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 구 본관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기록관에 남아 있는 1993년 10월15일 구 본관 철거 당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가 위치한 터는 1104년 고려조 숙종 9년부터 이궁터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395년 조선조 태조 4년 경복궁이 창건되며 신무문 밖 궁궐의 후원 역할을 했다. 경농당·오운각·융문당·융무당·벽화당·수궁 등의 건물이 있었다.
일제는 수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총독관사를 신축했으며, 그 외에 기존 건물들은 모두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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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고지도에 나온 수궁터. (사진=대통령기록관)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1939년 9월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9명의 총독 중 마지막 3명인 미나미 지로, 고이소 구니아키, 아베 누부유키 등이 이 곳에 살았다. 해방 후인 1945년 12월부터 1948년 3월까지는 미 군정 사령관 존 리드 하지 중장의 관저로 쓰였다.
미나미 지로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다음으로 역대 조선총독 중 가장 악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인들에게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게 했다. 지원병 제도로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고, 창씨개명·한국어 사용 금지 등 조선 민족말살정책을 폈다.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건강을 이유로 1954년 가석방됐고, 이듬해인 1955년 사망했다.고이소 구니아키는 미나미 총독이 만든 지원병제를 학도병제로 강화, 강제 징병·징용, 근로 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등 만행을 저질렀다. 1950년 종신금고 복역 중 죽었다.
아베 누부유키는 재임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는 마지막 조선총독이다. 짧은 재임기간 동안 전임자들 못지않은 강경책을 통해 온갖 물자 수탈과 인력 징집을 강행했다. 국민의용대를 만들어 독립운동가 색출을 벌이기도 했다.
1945년 9월 존 리드 하지 중장이 주도한 항복 조인식장에 나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아베는 철수 과정에서까지 조선의 물자를 쥐어짰다. 한국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비용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조선은행권을 찍어냈고, 이는 해방 후 우리 국민들이 인플레이션 공황을 겪게 했다.
구 본관은 1948년 8월15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경무대(집무실+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어 1991년 9월3일까지 43년간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했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 곳에 살았다. 노태우 대통령 임기 전반기인 1991년 10월 본관이 준공되며, 장소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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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구 본관 철거 지시한 김영삼 전 대통령. (자료=대통령기록관)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1993년 출범한 김영삼정부는 "어둡고 쓰라렸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잡겠다"며 구 본관 철거에 나섰다. 구 본관은 1993년 10월15일 철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시 구 본관 건물의 600대 1 축소 모형을 만들어 효자동 사랑방(청와대 사랑채의 전신)에 전시했다. 건물이 철거된 터에는 지형의 원 상태대로 능선을 복원해 잔디를 입히고 기념 표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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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구 본관 철거 당시 청와대 문서. (자료=대통령기록관)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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